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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 방송·영화·연극 종횡무진하고 장애인합창단 ‘에반젤리’ 이끌어 사제 서품 받은 지 28년 괴짜·날라리 신부 소리 들어도 ‘척’하지 않는 삶 통해 행복 얻어 “내 안의 욕망덩어리부터 인정해보세요” 하얀 로만 칼라가 달린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 수단. 가톨릭 신부를 떠올리면 흔히 눈앞에 그려지는 차림이다. 그런데 광명성당 2층 사제관에서 마주한 홍창진(57) 주임신부는 빨간 등산복 셔츠에 면바지 차림이었다. 전날 감기가 들어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딱 언젠가 동네에서 마주친 듯한 낯익은 아저씨 패션이다. 공적인 자리가 아니면 편한 차림이 일상이라고 했다. 이날도 사진 기자가 촬영을 위해 수단을 입을 것을 권하자, 그가 조용히 “불편한데”라고 중얼거려 빵 터졌다. 30년 가까이 입은 사제복이 불편하다는 ‘신부 같지 않은 신부’, 그래서 ‘괴짜 신부’로도 불리는 것 같았다. 인사를 하자마자 사제관 식당으로 취재진을 이끌었다. 따끈한 곰탕과 먹음직스런 고등어조림으로 차려진 식탁은 소박하면서 따뜻한 ‘집밥’ 그대로다. 밥을 게눈 감추듯 해치우고 금방 볶은 커피 향이 가득한 옆 사제관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그의 웃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었다. “그림이 좋다”고 하자, 홍 신부는 “취미로 그림 그리는 아이가 그려왔더라. 그런데 선물이 아니라 잠시 맡겨 놓은 거다. 맡긴 지 10년쯤 됐다”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었다. 홍 신부는 사제서품을 받은 지 올해로 28년이 됐다. 그는 미사때 뿐만 아니라 TV 프로그램과 대학 강단, 심지어 술자리에서까지 ‘홍창진 식’ 강론을 펼친다. 타고난 끼로 오페라 ‘토스카’에서 추기경 역을, 연극 ‘레미제라블’에서 주교 역을 맡아 무대에 올랐다. 스님·목사·신부의 세상살이 응답소 tvN ‘오마이갓’의 고정 패널로 1년 넘게 출연하며 개그맨 못지않은 입담도 과시했다. 속세를 벗 삼은 ‘괴짜 신부’, ‘날라리 신부’로도 불리지만, 그는 어두운 곳에 가장 먼저 빛을 비추는 ‘착한 오지랖’도 수준급이다. 2005년 배우 손현주와 함께 장애 어린이 합창단 ‘에반젤리’를 창단해 17년째 공동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자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를 돕는 서울해바라기센터 운영위원, 법무법인 온세상이 운영하는 문화예술인 인권지원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연 관람 캠페인, 종교 간 대화 운동, 클린 마운틴(등산하며 청소하기) 운동 등 다른 종교인들이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운동에도 앞장선다. 그가 사회 곳곳을 종횡무진 누비며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로 관철된다. 바로 ‘행복’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물으면, 그는 단 네 글자로 답한다. “현실 파악.” “아주 리얼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 현실파악부터 해야죠. 전 제가 못생겼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20년이 걸렸어요. 그 전까진 거울을 보면서 눈을 크게 뜨기도 하고 (양손으로 턱을 가리면서) 요렇게 가려보기도 하고 별 짓 다했어요. 그런데 그 짓을 뭐하러 해. 못생겼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이렇게 편한데요.” 홍 신부의 이야기에 뜨끔했다. “내 얘긴데.” 거울을 보며 눈을 치켜뜨고 휴대전화로 셀카를 찍을 땐 45도 각도를 유지하고 예쁘게 보이고 싶어 포토샵 보정까지 하던 기자의 모습이 스쳐 갔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역시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라는 게 그가 주위에 전하는 ‘행복론’이다. 모르는데 아는 척, 싫은데 좋은 척 하지 말고 창피해도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행복하게 사는 비법이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욕망 덩어리에요. ‘욕망 게이지(지수)’가 저마다 다를 뿐인 거죠. 누군가는 95%가 욕망으로 가득 차 있고, 성인으로 불리는 이들은 그 게이지가 낮을 테고요. 이번 사태(최순실 게이트) 터지기 전까지 우병우(전 민정수석)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어요.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고 처가도 잘 살고 권력까지 쥐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요즘 청문회에 나오는 사람들도 보세요. 아닌 척, 모르는 척하느라 참 힘들 거에요. 이실직고하면 누가 다칠 거로 생각하고 책임지고 싶지 않아 그러는 거잖아요. 솔직하게 ‘나 하자에요’ 인정하고 손들고 털어버리면 얼마나 자유로워지는 데요.”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사회적 죽음’을 당한다는 생각에 청문회 증인들은 함부로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다는 얘기다. 생물학적 생명과 영적인 생명도 내 안에 있지만 욕망 게이지가 높은 그들에겐 사회적 생명이 전부인 까닭이다. 홍 신부는 “솔직해지는 것에도 타이밍이 있다”고 했다. 이번 사태처럼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영향을 주는 상황이 있을 때 이게 곪아서 터지는 순간이 바로 그 타이밍이라고 했다. 이 ‘타이밍’을 놓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좀 모자라고 부족한 구석이 있어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의 말을 계속 듣다 보니 속에서 은근한 반항심이 올라왔다. 있는 그대로의 부족한 자신을 인정하는 일이 어디 쉬운가. 매일 명상과 묵상을 하고 욕심을 버려야 하는 성직자니까 가능할 것이란 생각에서 였다. 홍 신부는 “성직자는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에 익숙해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을 때가 있는 게 한계”라면서도 성경 속 일화를 꺼내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기저기서 민원을 많이 받아요. 실력은 있지만 판로가 없는 사람한텐 제 인맥을 동원해 연결해주기도 하고요. 매일 민원을 해결하는 게 제 직무를 이행하는 것이죠. 신부니까. 그런데 간혹 정말 열심히 도와줘도 고맙다는 인사도 못 받을 땐 ‘내가 이만큼 해줬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저도 사람인지라. 그럴 땐 하루이틀 ‘끙’하고 훌훌 털어버리죠. 그런데 성경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나와요. 예수님이 10명의 나병환자를 치료해줬는데 딱 한 명만 예수님을 찾아와 감사해 해요. 9명은 아무 생각도 없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거죠. 이게 현실이고 이게 세상인 거에요.” 홍 신부는 고등학교 시절 다니던 성당 신부의 권유로 성직자의 길에 들어섰다. 어머니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지만 7남매의 다섯째인 그가 성직자가 되리라고는 가족 누구도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광주가톨릭대에 입학해 1989년 사제품을 받은 뒤 경기 수원에서 사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처음 8년간은 그도 근엄한 신부로 살았다. 체면에 얽매여 거룩한 척, 착한 척 살았던 그 시간 동안 그는 한 번도 진정한 평화를 느끼지 못했다. 조금 모자라고 부족한 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지금의 삶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했다. “그땐 그렇게 불편하게 사는 게 내 안의 욕망 때문이라는 걸 몰랐어요. 생각해보면 종교인이 가지고 있는 명예, 권력에 기대 살았죠. 그러니 얼마나 불행하고 만족도가 떨어지겠어요. 용기를 내서 나를 솔직하게 인정해보니 지금은 해방감을 느끼고 참 편안하죠.”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며 바쁘게 지내는 그가 가장 정성을 쏟는 활동은 장애인 어린이 합창단 ‘에반젤리’다. 배우 손현주씨와 의기투합해 만든 이 합창단의 목표는 하나, 바로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합창단복을 입고 노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거다. 창단 첫해 19명으로 시작한 합창단원은 이제 100여명을 늘었다. 그 사이 아이들도 성장해 청소년부와 청년부도 생겼다. 단원은 매년 봄 오디션을 통해 모집한다. 홍 신부는 “노래를 잘하나 못하냐를 보는게 아니라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 오디션에 합격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오디션 보고 합격했다’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어 오디션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합창단은 매주 한 번씩 모여 노래 연습을 한다. 한 곡을 완전히 익히기 위해서는 6개월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사이 가족들도 여유를 갖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 한시도 자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발달장애아동 부모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어 심리적 여유와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기쁨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이다. 최근엔 여러 기관에서 공연 요청도 많다. 그는 “에반젤리가 15년 넘게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손현주 덕분”이라고 했다. “처음 시작할 땐 아니었지만. 지금은 손현주가 대배우로 성공하면서 재원 마련이 쉬워졌죠. 후원의 밤 행사에 주위 연예인들 30여명을 초청하고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선 덕택에 에반젤리 활동을 할 수 있었어요.” 홍 신부는 자신의 책 『홍창진 신부의 유쾌한 인생 탐구』에서 “당장 내일 죽어도 괜찮은 삶, 나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도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고 있을까. “아유, 나는 내일 죽으면 안돼요. 곧 안식년을 가질 계획인데, 안데스부터 히말라야, 티베트, 알프스까지 고산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이렇게 그림을 멋있게 그려놨는데 죽으라고 한다면 아쉽죠. 왜 하필이면 이때야, 이러면서요. 그럼 제가 거짓말을 하고 산 건데, 사실은 저도 당장 내일 죽어도 괜찮은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인 거죠.” 요즘 많은 사람이 ‘희망이 없다’고들 말한다. 경기가 안좋아 먹고 살기 힘들고, 흙수저는 금수저가 될 수 없어 괴롭다고. 홍 신부는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희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우울할 때 화가 날 때 두려울 때 영성 생활을 시작해요.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할 때가 아니라요. 희망도 마찬가지예요. 신기루 같은 생각으로 희망을 바라보기보단 절망 한가운데서 진실이 보이거든요. 물론 의지만으론 안돼요. 시스템이 바뀌어야겠죠.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여기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인류는 배턴터치로 계속 이어져 왔어요. 내가 오늘 한 일이 쌓이고 쌓이는 거예요. 그래서 과정이 중요합니다. 절망에서 다시 희망을 꽃피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