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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여명숙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 국정농단 청문회 소신 발언으로 유명세 과학기술·인문학 넘나드는 융합·통섭 전문가 “지금 게임업계엔 여성 파워 필요” 거침없고 다부진 말투. 꼿꼿한 자세. 여명숙(51)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은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지녔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의 전모를 밝히는 과정에서 ‘청문회 사이다’란 별명을 얻었다. “가는 첫날부터 오늘만 살자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나가면 됩니다” “재갈을 물려도 알아서 뱉어내야 할 때” 발언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여명숙 이 년’이라는 누리꾼의 욕설에 ‘제가 그 년 맞습니다. 근거를 가져오세요’라며 침착하게 대응한 일화도 유명하다. 눈에 띄는 패션 감각,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도 화제에 올랐다. 역대 여성 공공기관장 중 ‘걸크러시’라는 수식어가 이토록 많이 붙은 인물은 없었다. ‘이대 나온 여자’가 남초 이공계 사회를 거쳐 공공기관장에 오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별과 태클에 지지 않으려면 ‘쎈 여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각개격파’엔 한계가 있음을 여 위원장은 잘 알고 있었다. 이젠 여성들이 힘을 합쳐 일상 속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공론화하고 바꿀 때라고 했다. “불판을 바꿉시다. 우리의 ‘보스몹’이 뭔지, 뭘 해야 할지 함께 고민합시다. 아예 정책, 법안을 만듭시다.” 그와 대화해 보니 ‘융합·통섭 전문가’라는 수식어도 잘 어울렸다. 과학기술 아이디어와 인문학적 아이디어를 엮어 새로운 비전을 설계하기를 즐긴다고 했다. ‘인간’과 ‘행복’이 그 중심에 있다. “기계가 다 해 주는 세상인데 인간은 놀아야지. 우린 다치고, 병들고, 늙어 죽으면 리셋 안 되잖아요. 이런 인간이 최대한 재미있게 살게 하는 게 과학기술의 중요한 가치죠.” 그의 얘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이유가 아닐까. ‘안 팔리는 철학’ 하다 찾은 제3의 길 가상현실이라니, 너무 섹시하잖아 여 위원장은 가상현실과 인간 존재의 관계 연구에 천착해온 “인문학자”다. 게임 규제 얘기를 하다가도 가상현실에 관한 인식론·존재론적 개념을 줄줄 열거해 기자를 당황케 했다. 1985년 이화여대 철학과에 입학해 가상현실 존재론에 대한 논문으로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남는 시간엔 다른 수업을 청강하고, 친구들, 교수님들 만나 얘기하고, 책 읽고 죽은 천재들과 대화하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움베르토 에코가 이런 말을 했지, 그 오빠가 기술을 알았더라면.... 상상 속에서 천재 철학자들을 소환해요. 낭만적이잖아요?” 공부에만 빠져 있진 않았다. “제일 안 팔리는 게 철학이잖아. 나처럼 학교 다니면서 앞으로 뭘 하지 고민했던 사람은 없을 거예요.” ‘여자가 직장을 가지려면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게 당시 통념이었지만, 그는 틈틈이 로스쿨, 건축 등 “실용적인 진로”를 탐색했다. 철학과 기술의 조합에 꽂힌 건 1993년 즈음이었다. 영화 ‘토탈리콜’이 계기였다. 기억 이식 기술이 존재하는 미래를 그린 영화다. “가상현실이라는 개념이 너무 섹시하잖아요. 가상성(virtuality)과 현실성(actuality)은 철학의 오랜 주제이기도 하죠.” 대학 때부터 가상현실 기술 관련 저널을 찾아 읽고 해당 분야 연구자들과 함께 토론했다. 철학 석사과정 중엔 인지과학 연구회 간사도 맡았다. 국내에 인지과학 학과가 생기기도 전이었다. 미국 스탠퍼드대 언어정보연구소에서 박사후과정을 밟으며 연구를 계속했다. 그는 인문학도에게 이 분야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왜 공학 분야에 인문학적 접근이 필요한지 거듭 강조했다. “뭘 하건 인간관, 세계관, 가치관에 대한 분석 없이는 멀리 못 갑니다. 특히 인공지능·가상현실 분야는 인간의 욕구, 욕망 등 육체적 부분부터 마음, 정신까지 아우르는 분야로, 철학 연구가 가장 필요한 공학 분야죠.” 여성에게 ‘탄탄대로’는 없다...한번도 정규직인 적 없어 여 위원장의 첫 직장은 KAIST 전산학과 내 가상현실센터였다. 4년간 문화기술로드맵을 짜다가 서울대학교 융합기술연구원 연구개발본부로 옮겨 융합기술로드맵을 짰다. 2011년 POSTECH으로 가 인문사회학부·창의IT융합공학과 교수가 됐다.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를 붕어빵처럼 찍어내는 프로젝트”를 맡았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이듬해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한 주범, 차은택 씨의 뒤를 이어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문화창조융합본부 본부장을 겸직했다. 전임자의 운영방식에 여러 번 문제를 제기하고 감사를 요구했다가 “다행히 한 달 반 만에 쫓겨났다.” 그는 임기가 끝나는 내년 4월까지 게임위에서 일할 예정이다. 언뜻 탄탄대로를 밟아온 듯하다. 그러나 ‘여성’에게 탄탄대로란 없다. “대학에서 똑같이 일해도 남자 공학박사만 임용되고 정년트랙 교수가 되고.... 더러운, 그들만의 리그였지.” ‘인문학이 공학 분야에 왜 필요하냐’며 푸대접하는 이들도 있었다. “누가 진로 상담을 원해도 해줄 말이 없어. 난 비정년 트랙만 달렸으니까. 한 번도 정규직인 적 없었지. ‘늘공(늘 공무원)’ ‘어공(어쩌다 공무원)’ 하는데 난 ‘놀공’이예요. 놀다 보니 공중부양(웃음).” ▶ ② “여성혐오·게임 내 성폭력은 범죄...여성 인권은 공공의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