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전체메뉴 보기
  • SNS 기사 공유카카오톡으로 보내기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 2018 여성신문 30주년,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

  •  
  • SINCE 1988 : 여성운동 · 페미니즘 · 젠더민주주의

    성평등 사회로 가는 디딤돌,
    ‘여성신문’과 함께 해주세요.

▶ ① 살아남으려 ‘쎈 여자’가 됐다 [인터뷰] 여명숙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 뒤숭숭한 조직 정상화, ‘갑질 금지·소통’이 열쇠 “22세기 상상케 하는 아이템 만드는데 19세기 식으로 일하면 안 돼” 여명숙 위원장 취임 당시 게임위 내부는 뒤숭숭했다. 성추행과 뇌물 수수 파문으로 내부 인사가 구속됐고 전임 위원장은 사퇴했다. 파벌 다툼도 심했다. 여성 리더를 불편해하는 이도 있었다. 직원 80여명 중 여성은 10여명뿐인 조직이다. 2017년 5월 현재 정부부처 산하 공공기관장 중 여성은 7.2%(24명) 뿐이다. 여성이라서 수차례 공격도 받았다. 부산 게임위 민원실에는 불법 사행성 게임 단속에 항의한답시고 찾아와 아침부터 소주와 족발을 시켜놓고 행패를 부리는 조폭들이 있다. 하루는 그들이 여 위원장 사무실 문을 쾅쾅 두드리며 난동을 피웠다. “여기 위원장이 여자라며? XXX년 얼굴이나 한번 보자, 자고 싶다고 전해라!” “임기 3년이니 좀 있으면 가겠지, 뭐가 바뀔까? 이런 인식이 있어요. 그렇다고 그냥 주저앉아 버리면 너무 자존심 상할 것 같았죠.” 취임날 여 위원장은 직원들에게 말했다. “제 원칙은 ‘갑질금지’입니다. 투명하고 공정하고 전문적인 기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세요.” 마이크를 끈 지 3분 만에 직원들이 몰려와 고충을 털어놨다. 취임 첫 달은 한 직원마다 세 차례씩 면담했다. 필요하다면 감사를 실시했고, 소송 시 조직 예산을 사용하게 했다. “한 최장기 근무자(남성)가 ‘누나 리더십’을 주문했어요. 직원들과 소통하는, 탈권위적인 따뜻한 리더십을 보여 달라는 거죠.” 그는 요즘도 직원들과 매일 밥을 먹으며 대화한다. “술도 안 먹고, 룸살롱도 안 가는” 그가 취임한 이래로 ‘부어라 마셔라’ 식 회식 문화, 접대와 향응 문화는 발붙일 곳이 없다. 비정규직 40여명이 무기계약직이 된 것도 그의 노력 덕이다. 과거 ‘게임물등급위원회’에서 현 체제로 바뀌면서 전 직원을 재채용했는데, 불법 게임물 단속 담당 직원들은 무기계약직에서 계약직으로 바뀌었다. 억울한 일이었다. 여 위원장은 즉시 기획재정부 차관과 문화부 장관을 만나 고용 개선을 요청했다. “조직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고용불안부터 해소해야 한다고 봤어요. 내게 권한이 없으니 윗선을 찾아갔지. 마침 기재부에서 부산 지역 공공기관 대상 간담회를 열고 5분씩 자유발언 시간을 줬어요. VR 스키점프 기기 한 대를 들고 갔죠. 기재부 차관에게 씌워드리고, ‘게임이 이렇게 재미있는 거다. 이런 걸 잘 관리해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게임위가 고용불안 등 문제에 발목을 잡혔다’고 잘 말씀드렸죠. 바로 해결됐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물었더니, 그는 “법대로 했을 뿐이다. 법이 있어도 습관적으로 내버려 두는 거, 그게 공공기관 적폐 아니냐”고 되물었다. 우문현답이다. “조직을 정상화해야 기업과의 관계도, 정책도 정상화할 수 있어요. 압력이 두려워서 현상 유지할 사람을 찾았다면 날 잘못 뽑은 거지. 21세기 유저들이 22세기를 상상하게 하는 아이템(게임)을 만드는데, 19세기 식으로 일하면 안 되죠.” 여성 인권 회복은 공공의 가치...여성들이 연대해 여성차별·혐오 문제 더 알려야 게임 속 언어·성폭력과 살인도 엄연한 범죄 게임계 개혁 위해선 ‘여성파워’ 늘려야 그러나 “새 세상을 설계해야 할” 게임업계의 인권·젠더 감수성은 점점 퇴보하는 듯하다. 넥슨의 김자연 성우 부당교체 사건에 이어 여성을 노골적으로 상품화한 ‘서든어택2’, 여성 캐릭터의 팬티를 훔쳐보는 VR 게임 플레이 파문 등이 잇따랐다. “너무 화나는 일이 많아요. ‘여성혐오에 반대한다’ 발언이 왜 다른 게이머와 게임 산업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됩니까? (기업은) 그런 사태를 왜 방치합니까? 여성은 인구의 절반이고, 육아·출산이 국가경쟁력인 시대 아닙니까. 여성 인권 회복은 공공의 가치죠. (여성혐오 문제는) 전방위적으로 이슈화할 필요가 있어요. ‘표현의 자유’ 운운하는 건 궁색한 논리일 뿐이죠.” 게임 속 캐릭터를 대상으로 언어폭력, 성폭력을 저지르거나 살해하는 경우도 범죄로 보고 제재해야 한다고 했다. “게임은 일탈의 해방구가 아니죠. 새 기술로 새 경험을 할 뿐, 그 뒤엔 사람이 있어요. 캐릭터 폭력·살인은 윤리적으로 책임질 문젭니다. 필요하다면 아예 가상세계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등 물리적 제재를 가해야죠.” 그는 “과거 인간의 기본 덕목이었던 배려, 소통, 존중, 연대가 이제는 능력이 됐다”며 “교육 과정에서부터 타인을 배려·존중하는 가치관을 강조해야 한다. 기업도, 게임 정책도 ‘윤리적 감수성’을 놓치면 안 된다”고 했다. 4차 산업 혁명으로 닥칠 ‘기계의 지능화’, ‘가상의 현실화·현실의 가상화’ 시대엔 인간만이 지닌 창의적 생각, 복잡한 상황을 진단하고 해결하는 융합적 능력이 더욱 중요해진다. “게임계에 여성 파워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이유다. “융합적 마인드와 멀티태스킹 능력은 여성이 더 강해요. 여성의 통찰력은 비효율적인 현 게임 등급분류 정책, 셧다운제를 포함한 일괄적·이분법적 게임 정책 전반을 개혁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나 아직 게임계 내 여성의 입지는 작다. 게임물 심의를 담당하는 게임위 위원 총 9명 중 여성은 여 위원장 포함 2명뿐이다. 더 다양한 시각과 통찰을 얻을 수 있도록, 엄마들, 여성 게이머들, 전문가 등을 초빙해 심의 회의를 열고 싶다고 했다. 여성들이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불평등을 ‘각개격파’하기엔 한계가 있다. 살아남기 위해 ‘센 언니’가 돼야 했던 여 위원장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여성 연대가 중요해요. 여성들이 힘을 합쳐 일상 속 성차별 문제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하고 바꿔야죠. 불판을 바꿉시다. 우리의 ‘보스몹’이 뭔지, 그에 맞서려면 뭘 해야 할지 함께 고민합시다. 아예 정책을 제안하고 법안을 만들어 봅시다.” 여명숙 위원장 약력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 (2015년 4월 - 현재) 미래창조과학부 문화창조융합본부 본부장 (2016년 4월 – 2016년 5월) 포항공과대학교 창의IT융합공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융합기술연구원 연구개발본부 책임연구원 BK21 선임연구원 (KAIST 전산학과)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언어정보연구소(CSLI) 박사후과정(Post Doc) 이화여대 대학원 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