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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의 상징 ‘국민의 집’ 만들어낸 페르알빈 한손 생존 넘어 비상의 기로에 선 한국 한손 총리 같은 국부적 지도자 절실 스웨덴에서 국민의 아버지라 불리는 정치인이 있다. 페르알빈 한손이다. 한손 총리는 1931년 단독집권에 성공한 이후 1946년 타계할 때까지 정권을 지켰다. 15년 간 4번의 선거를 이끌면서 모두 집권에 성공했고, 1939년 선거에서는 5개 정당 체제 속에서도 51%를 얻어 과반을 이뤘다. 의회 과반인 상황에서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자 우파 3개 정당들과 함께 거국내각을 꾸려 2차대전 기간 동안 내각을 안정적으로 운영한 결과 전쟁의 국민들의 전쟁공포를 불식시키는 정치력을 발휘한 주인공이다. 사민당 소속 총리였지만 좌파와 우파 지지자를 막론하고 국민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네 가지 이유에서다. 대표적 이유 중 하나는 1928년 의회연설을 통해 ‘국민의 집’ (또는 ‘시민의 집’)이라는 스웨덴의 대표적 브랜드를 만들어 낸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자식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귀중하듯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두 따듯한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국민의 사회적 권리를 갈파했다. 국민의 집은 지금까지도 스웨덴 복지국가의 상징적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두 번째는 2차대전 기간 동안 국가를 나치독일의 침공 위협으로부터 막아낸 그의 외교적 능력과 수완 때문이다. 1940년 1월 의회연설에서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위는 최고의 가치이고, 이를 위해 독일이 무력으로 스웨덴 땅에 발을 들여 놓는 것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 국민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1941년 6월 독일의 군수물자를 스웨덴 철도시설을 이용해 운송하는 것을 허가한다는 조건으로 영토 침략을 않겠다는 확약을 받아내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평화를 지켜냈다. 스위스를 제외한 유럽 모든 국가들이 독일과 소련의 침공을 받았던 상황을 감안해 본다면 한손 총리의 외교적 수완과 능력은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는다. 세 번째는 노동시장의 평화를 이뤄낸 그의 업적 때문이다. 1931년 사민당 집권 후 노조 측에서는 급진적 친노동자정책을 요구하면서 수시로 파업에 들어 갔고, 사측에서는 직장폐쇄로 맞서면서 세계공황 당시 경제위기가 가속화 되었다. 당시 재계의 거두였던 크로이거 회장이 자살하면서 재정 시장도 마비돼 한손 총리의 위상은 양면 공격을 받는 상황이 됐다. 돌파구는 좌우연정의 협치에서 찾아냈다. 사민당이 소수내각으로는 노사에게 힘이 부치자 우파농민당 (지금의 중앙당)에 손을 내밀어 농산물 보조금지원이라는 타협안을 통해 과반정부를 만들어 놓고 노사평화협약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38년 살트쉐바덴 조약이 맺어져 적대관계였던 노사관계를 상호존중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노사중앙협의기구를 통해 고용 및 해고, 재교육, 중앙임금협상 등 정부의 개입 없이 양자가 노사문제를 해결한다는데 합의를 봤다. 한손 총리의 좌우연정을 통한 정치적 협치능력이 없었다면 살트쉐바덴조약은 사실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조약으로 스웨덴 경제는 안정적 성장을 구가했다. 네 번째는 서민적 정치인이었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시절 때부터 전철로 매일같이 의회로 출근을 했다. 이 관행은 국방장관을 거쳐 총리가 되면서까지 한번도 깨지지 않았다. 출퇴근 때마다 시민들과 정책 대화를 이어나갔다. 1946년 그가 서거할 때도 밤늦게까지 외국국빈과 만찬을 하고 집에 들어가면서 과로로 인한 심장병으로 전철플랫폼에서 숨을 거뒀다. 진정성 있는 정치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좌우를 초월한 국민이 그를 애도한 이유다.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은 1940년대 스웨덴과 너무도 흡사하다. 독일의 폭격 위협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사드경제보복과 너무나 닮았고, 노사관계의 대립과 갈등은 스웨덴의 1930년대 중반 시기와 너무 유사하다. 당시 사회 양극화와 노사 갈등은 새로운 돌파구가 없으면 국가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 상황도 지금의 우리나라 사회 그리고 경제와 거의 유사하다. 한 나라의 운명을 최고통치권자가 혼자서 다 지고 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 보전을 위한 외교와 국방능력 확보, 사회적 갈등 봉합과 화합, 정치적 협치, 평화적 노사관계 정립, 미래성장엔진과 고용 창출을 위해 더 큰 책무를 떠 안고 있는 사람은 없다. 한국이 이대로 쇠망하느냐, 생존을 넘어 비상할 수 있느냐의 기로에 있다. 대한민국에도 지금 한손 총리와 같은 국부적 지도자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