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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변호사의 이러시면 안됩니다-5] 가해자 A가 있다. 출근하던 여성 B를 사무실까지 쫓아 들어가서는 B를 보면서 자위행위를 했단다. 세상에는 기상천외하리만치 해괴망측한 자들이 이처럼 많다. 가해자 A는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검찰은 A를 강제추행으로 기소했다. 법원의 판단은? 무죄다. 이전 기고문에서도 한 차례 설명한 바 있지만, 법에서 정하는 강제추행죄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추행’과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직접 만졌거나 또는 그에 준하는 신체접촉을 했던 것이 아니어서 가해자 A를 강제추행죄로 처벌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사람들은 때로 이렇게 말한다. ‘검찰에서 불기소처분을 받았는데 무슨 책임이 더 남았다는 건가요?’ ‘법원에서 무죄판결 받았잖아요. 그러면 아무 잘못 없는 거잖아요. 또 무슨 잘못이 있다는 거에요?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아요. 다 끝났잖아요!’ 가해자뿐만 아니라 주변인이나 상급 관리자들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징계나 그 밖의 조치를 하라구요? 아니, 무죄판결까지 받아왔는데 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요? 당신이 법원이나 검찰보다도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는 거요?’ 불기소처분이나 무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런 잘못을 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위 가해자 A에 대해서도 우리는 아무런 책임을 물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가? A가 정말로 무고하고 결백한가? 어떠한 잘못도 범하지 않은 사람인가? 무죄판결이 내려졌으니 A에게 아무 탓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보이거나 제정신이 아닌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범죄 성립이 인정되려면 법에서 정하는 모든 구성요건을 엄격한 증거법리에 따라서 충족하여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나쁜 짓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구성요건 전부에는 해당하지 않아서 범죄로 인정되기 어려운 때도 있고, 구성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증거가 부족해서 범죄가 불성립할 수도 있다. 위의 사례처럼 가끔 우리의 상식에 반하는 듯 보이는 판결이 내려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성희롱과 성폭력범죄는 그 성립요건이 서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사실관계가 범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성희롱 성립만큼은 인정할 수 있는 경우란 분명히 가능하다. 그런 사례가 있느냐고? 첫 머리에서 소개한 사례가 그 예다. A가 저지른 짓이 중대하고 심각한 수준의 성희롱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법원·검찰보다 더 잘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거냐고? 아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재차 강조하지만, 성희롱은 그 판단 기준이 성폭력범죄에 대한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안의 동일한 사실관계에 대해서 법원이나 검찰이 판단한 내용과 완전히 상반되는 판단이나 평가를 할 수 있다는 허튼 소리를 여기서 늘어놓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성폭력범죄라고 주장되었지만 범죄로는 인정되지 않은 어떤 사실관계가, 적어도 성희롱에는 해당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형사법정에서 판단되지 않는다. 판단된 바 없으니,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 될 수도 없다. 왜냐고? 수사기관은 형사범죄 성립여부만을 따진다. 그런데 아동·청소년이나 노인, 장애인에 대한 성희롱이 아닌 이상, 일반적인 성희롱은 형사범죄가 아니다. 그러므로 성희롱 여부는 검찰의 수사대상도 처분판단 대상도 아니다. 검찰이 기소를 할 수 없으므로 처음부터 법원의 판단 대상이 아니다. 불기소처분이나 무죄판결이 내려졌는데 어떻게 법원도 검찰도 아닌 이들이 함부로 그 판단을 뒤집을 수 있느냐고? 뒤집는 것이 아니다. 다른 요건과 관점에 따라서 처음으로 새로이 판단하는 것뿐이다. 혼동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사실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데도 누군가에게 가해 책임을 물을 수 있고, 그에 따라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책임도 없다. 예컨대 A가 B를 쫓아가서 자위행위를 했다는 내용으로 주장되었지만, 실제로는 A가 그런 짓을 한 적 없었음이 밝혀질 수 있다. 이때는 A에게 아무런 잘못도 없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다만, 여기서는 사실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행위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인데 그것이 성폭력범죄는 아니라는 수사기관 또는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졌다고 해서, 다른 기준에 따라서도 아무 책임이 없다고 막연히 단정할 바는 아니라는 뜻이다. 상식은 우리를 그릇된 길로 인도하지 않았다. 여성 B의 사무실로 무단히 쫓아 들어가서 자위행위를 한 A가 큰 잘못을 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안다. 법리에 따라서 그것이 성폭력범죄로 인정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비록 성폭력범죄가 아니지만 여전히 중대하고 심각한 성희롱에 해당할 수 있는 경우는 세상에 많이 있다. 불기소처분이나 무죄판결이 내려졌으니 다 끝난 것 아니냐고? 아무 잘못도 없다는 것이 명명백백하게 입증된 것 아니냐고?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가해자 A는 무죄판결을 받고 나서 진심으로 떳떳했을까? 이 점에 대해서 더는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 외부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