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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 목소리 높이던 젊은 정치인의 몰락 성폭력은 특수한 자의 악행 아닌 보편적 남성의 문제로 인식하는 계기로 구조적 성차별 끊어내고 진보가 쇄신하는 기회로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던 안희정(53) 전 충남지사가 수행비서를 성폭행 했다는 폭로에 많은 여성들이 충격에 빠졌다. 평소 페미니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며 기존 정치인들과 ‘다른’ 모습을 보인 젊은 정치인이었기에 ‘안희정 쇼크’는 더 크다. ‘차라리 잘 됐다’며 이번 일을 위계와 성별관계에 의한 권력형 성폭력을 뿌리 뽑고 진보의 가치에 결핍된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반가운 자성의 소리도 잇따른다. 안 전 지사가 자신의 수행비서를 8개월 간 네 차례 성폭행했다는 폭로가 나오자, 지지자들 뿐 아니라 시민들도 분노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안 전 지사와 관련한 청원이 이틀 만에 231건이 올라왔다. 대부분 “사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안희정 쇼크’를 호소하며 철저한 조사와 처벌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안 전 지사를 지지하는 트위터 이용자 그룹 ‘팀스틸버드’도 사건이 알려진 직후인 5일 “성폭력 가해자의 정치철학은 더 이상 우리에게 의미가 없다”며 계정 폐쇄를 선언했다. 팀스틸버드는 “뒤늦으나 피해자에게 연대와 지지를 전하며 향후 2차 가해에 함께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팬클럽인 다음 카페 ‘아나요(안희정과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나눠요)’도 비공개로 전환됐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은 “당사자 인터뷰를 보고 마음 많이 아팠고 페미니즘 책을 추천하던 자의 이중적인 모습에 경악스럽고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허 조사관은 “(안희정도) 전형적으로 성폭력 피해자를 고른 것으로 보인다”며 “남성들은 성폭력 피해 대상을 고를 때 탈이 안 날 사람으로 고른다. 배우 조민기도 만약 유명 연출가들의 자제들이 다니는 대학 교수였다면 함부로 성추행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또 자신의 말을 (피해자의 말보다) 더 신뢰할 것이 명확한 상황이고, 드러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충남 인권조례 폐지 반대에 나섰던 정욜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대표도 “배신감이 들고 충격이 크다”고 말했다. 정욜 대표는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서 분명한 목소리를 내온 정치인은 거의 없다보니 많은 이들이 (인권조례 재의를 요구한) 안 전 지사를 지지하고 긍정적으로 봐 왔다”며 “이번 사건으로 그가 말해온 인권이 무엇이었나, 굉장히 위선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 정치인의 잘못으로 충남 인권조례 자체가 호도되는 현실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며 “안희정 사퇴와는 별개로 인권은 지지되고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은 이번 안 전 지사의 성폭행 논란에 대해 “명백한 위계와 성별관계에 의한 권력형 성폭력”이라고 규정했다. 젠더 자체가 권력관계를 의미하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폭력 피해를 입는 동시에 사회적 지위와 중첩되면 차별이 더 심화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여성연합은 안 전 지사가 정치활동 중단 등의 도의적 책임 수준으로 면피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안 전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과글을 올리며 가해 사실을 적시하지 않았다. ‘사실상’ 성폭행을 인정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안 전 지사는 글에서 “제 어리석은 행동에 용서를 구한다”는 이야기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특정 행위에 대해 법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말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추상적인 사과만 있을 뿐, 사실을 적시하고 인정하며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의 공식 사과는 아니다”라며 “법적으로 문제되면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 법률적 자문을 받았을 것으로 의심된다”고 했다. 정치권과 진보진영이 이번 일을 계기로 쇄신해야 한다는 지적도 빗발친다. 정치와 진보가 지향하는 가치에 결핍돼 있었던 것은 무엇인지 자성해야 한다는 요구다. 더불어민주당은 6일 윤리심판원을 열어 안 전 지사를 출당·제명 조치했다. 즉각적이고 강력한 조치다. 하지만 한편에선 “정치인에 의한 성폭력은 한 개인의 축출로 마무리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차별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자성의 움직임과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적 가치에 무엇이 결핍됐고 무엇을 채워야하는지 인지하는 시민들이 결국 세상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물결을 타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도태되고 심지어 대한민국이 후퇴할 것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반동 세력이 될 것인지, 진정한 진보로 거듭날 것인지가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 속에서 침묵 당해야 했던 피해자들이 ‘침묵의 시대’는 끝났다고 외치고 있다. 한국사회 전반을 흔드는 미투가 성차별 구조에 균열을 내고 있다. 이 미투가 그동안 민주주의의 성과에 대해 성찰하고 ‘모두’가 꿈꾸는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변곡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