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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양수화 글로리아오페라단 단장 한국 오페라 70주년 맞아 ‘라 트라비아타’ 무대 올려 “관객 없는 오페라는 죽은 예술” 달라진 관객 눈높이에 맞춰 무대·미술·무용 등 변화해야 오페라 스토리만 알고 봐도 어렵다는 편견 사라질 것 1948년 1월 16일. 서울 명동에 위치한 시공관(현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춘희)가 올랐다. 우리나라 첫 ‘오페라’ 공연이었다. 5일간 이어진 열 번의 공연은 모두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모든 물자가 부족했던 광복 직후였지만 오페라는 엄청난 인기를 모았고, 3개월 후 재공연을 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한국 오페라의 효시였던 ‘라 트라비아타’는 오는 5월 25~27일 문화예술 1번지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다시 오른다. 한국 오페라 70주년을 기념해 양수화(70) 사단법인 글로리아오페라단 단장이 선택한 공연이다. 막바지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는 양 단장을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이탈리아와 공동제작한 이번 공연에서 예술총감독을 맡아 출연진 캐스팅부터 포스터에 들어갈 알폰스 무하의 그림까지 꼼꼼히 준비했다. “제 손끝에서 시작해 제 손끝에서 끝났다”는 양 단장의 말에서 세심한 성격과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는 “오페라는 삶의 의미”라며 쉽지 않은 제작 과정조차 즐겁고 보람을 느끼면서 무대에 올린 작품을 보며 행복하다고 했다. 양 단장은 1991년 민간 오페라단인 글로리아오페라단을 창단하고 27년간 오페라 29개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120여차례에 달하는 공연을 진행했다. 한국 오페라 70주년을 맞은 올해 공연이 수백 차례 작품을 무대에 올린 그에게도 특별하다. “70년 전 한국에서 최초로 공연한 이 오페라를 올해 대한민국 오페라 70주년 기념으로 현시대에 맞게 재현하고자 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오페라 70년사는 420년이 넘는 오페라의 역사에 비하면 짧지만, 본고장인 유럽 오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외연은 많은 발전을 이뤘다. 민간오페라단연합체인 (사)대한민국오페라단연합회에는 2018년 현재 130개의 민간오페라단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고,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빠짐없이 입상하며 유럽 오페라극장에서 활약하는 성악가도 상당하다. 한국 오페라의 성장에 양 단장도 일조했다. 글로리아오페라단은 1995년 일본 도쿄 히도미홀에서 한국 오페라로는 최초로 창작 오페라 ‘춘향전’을 공연했으며, 이듬해인 1996년 미국 애틀랜타 클레이턴 아트센터, 2004년에는 프랑스 파리 모가도르 극장에서도 한국의 오페라를 유럽 무대에 최초로 알렸다. 양 단장은 2011년 글로리아오페라단 창단 20주년 기념으로 신진 음악가 발굴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양수화성악콩쿠르’를 열고 입상자들에게 주역을 맡기는 등 길을 터주는 선배 노릇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는 “우리 선배들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 우리가 걸어왔듯, 선배로서 후배들이 더 많은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길을 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양 단장은 경제가 성장하면서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한국인의 문화 DNA가 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케이팝(K-Pop) 그룹 ‘방탄소년단’ 이야기를 꺼냈다. “방탄소년단이 한국어와 영어로 노래를 부르지만, 세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방탄소년단의 세계적 인기는 훌륭한 기획과 가수들의 노력과 함께 한국인이 가진 뛰어난 문화 DNA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문화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문화가 곧 국력이죠.” 오페라는 종합예술장르다. 음악, 연극, 문학, 미술, 무용 등 다양한 장르가 섞여 정점을 이루는 게 오페라다. 각 분야의 250~300명 스태프들이 함께 작품을 만든다. 오페라 한 편에서 한국예술이 가진 역량을 보여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 뮤지컬이나 연극 등 다른 무대예술에 비해 오페라의 대중화는 더딘 편이다. ‘어렵다’는 편견과 ‘비싸다’는 인식 때문에 아직 대중과는 거리감이 있어서다. 오페라를 공연할 수 있는 전용극장도 모자라지만, 한 편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필요한 비용과 시간도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양 단장은 “관객 없는 오페라는 죽은 예술”이라며 “관객의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시도를 통해 관객과 호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 트라비아타’를 한국 오페라 70주년 기념 작품으로 선택하신 이유는. “한국 오페라의 역사를 시작한 작품이라 의미가 깊어요. 48년생인 저는 한국 오페라의 성장과 함께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래서 한국 오페라의 시작을 알리고, 세계에서 가장 ㄴㄴㄴㄴㄴㄴㄴ많이 공연되는 ‘라 트라비아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2년 전부터 계획했어요. 캐릭터 분석부터 음악, 무용,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무대 등을 총 감독하며 ‘올인’ 하는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고, 내 삶의 의미를 찾아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캐스팅에 가장 고심을 했어요. 유명하고 실력이 좋다고 해서 누구나 ‘비올레타’(여주인공)를 맡을 순 없거든요. 성악가마다 자신의 소리에 맞는 작품과 역할이 있어요. 소프라노 김지현씨가 실력도 뛰어나지만 목소리가 비올레타 역에 제격이었죠.” -‘일흔 살’이 된 한국 오페라는 420년이 넘는 유럽 오페라에 비해 역사는 짧습니다. “역사는 짧지만 70년 동안 압축 성장했다고 할 수 있어요. 420년 전 무역의 도시였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했습니다. 경제가 풍족하니 귀족들이 새로운 문화예술을 찾았고 오페라가 탄생한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광복 직후 배고프던 시절을 지나 현재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면서 오페라도 점점 발전하고 공연장을 찾는 인구도 늘고 있습니다. 과거엔 우리가 영국의 비틀즈를 좋아했지만 이젠 전 세계에서 방탄소년단에 열광하잖아요. 경제가 성장하면서 문화예술도 함께 빛을 발하고, 세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문화가 곧 권력인 세상이죠. 케이팝(K-Pop) 뿐만 아니라 한국은 성악 강국이기도 합니다. 세계 콩쿠르를 휩쓸고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는 성악가도 상당하고요. 한국인의 뛰어난 문화 DNA를 엿볼 수 있어요.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페라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아직 한국 대중과는 거리감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뮤지컬 등 다른 공연예술에 비해 문턱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중년층 이상 관객이 많은 오페라와 달리 뮤지컬을 즐기는 사람들 상당수가 젊은 층입니다. 저는 이들이 미래 오페라의 관객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노래와 춤과 연기가 어우러진 뮤지컬의 매력을 알면 오페라에도 관심을 갖게 될 거에요. 음식에 비유하면, 맛집을 찾는 미식가들이 한식만 고집하는 경우는 많지 않잖아요. 양식, 중식, 일식도 맛집이라면 찾아가는 미식가처럼 뮤지컬을 즐기는 분들도 곧 오페라 공ㄴㄴㄴㄴㄴㄴㄴㄴㄴ연장도 찾게 될 겁니다. 더 많은 대중이 공연장을 찾을 수 있도록 오페라 제작자들도 달라져야 합니다. 음악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무용과 조명, 무대 연출, 의상은 현실에 맞게 접목하고 관객 요구에 맞춰 변화해 나가야 해요. 문화는 누구나 즐기며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해요. 관객이 없는 무대예술은 죽은 예술이에요. 관객 없이 성악가 혼자 무대에 오르면 뭐할까요. 더 많은 분들이 공연장을 찾아올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합니다. 이건 제작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라 트라비아타’ 무대도 지금 시대에 맞는 시도를 했습니다. 기대해주세요.” -무대에 올린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다 내 자식 같은 작품이라 한 작품을 꼽는 게 쉽진 않아요. 그래도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춘향전’을 꼽습니다. 한국 최초의 창작 오페라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23년 전인 1995년 일본에서 최초로 무대에 오른 한국 오페라 작품이기 때문이에요. 광복 50주년이자 한일 수교 30주년 기념으로 도쿄 히도미홀 무대에 이 작품을 올렸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어요. 다음 해에는 미국에서 애틀랜타 올림픽이 한창이던 시기에 애틀랜타 클레이튼 아트센터에서 ‘춘향전’을 공연했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었고, 어려운 길이었기에 기억에 많이 남지요. 세계인에게 우리 창작 오페라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었어요.” -2011년부터 매년 열리는 ‘양수화성악쿠르’는 신인 등용문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훌륭한 성악가들은 많지만 한국에는 이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그리 많지 않아요. 콩쿠르는 후배들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길을 내주기 위해 시작했지요. 벌써 7년이 됐네요. 저부터 콩쿠르에서 입상하면 과감하게 주역을 맡기기도 해요. 콩쿠르에서 입상한 김종표, 이형석, 김보혜에게 주역을 맡겼고, 지난달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투란도트 역을 맡았던 김라희도 콩쿠르 출신이죠. 앞선 선배들이 길을 내어 저희가 그 길을 따라 올 수 있었던 것처럼 저도 선배로서 후배들의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해야죠.” -70주년을 맞은 한국 오페라와 단장님은 70세, 동갑입니다. 성악을 시작해 교육과 제작, 경영까지 오페라 한 길을 걸으셨는데, 오페라는 단장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오페라는 제게 삶의 의미이자 보람이죠. 중학교 때부터 성악을 했으니 60년 가까이 오페라와 함께했지요. 처음에는 성악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크지 않았어요. 네 자매가 모두 성악, 현대무용, 서양화, 연극영화를 전공하다보니 자연스레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하면서 오페라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30년 가까이 작품을 만들면서 많은 제작비와 시간이 들었지만 단 한 번도 아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당연히 내 몫이라고 생각하고 해왔어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기쁨도 크지만, 그만큼 책임을 가지고 해왔어요. 후배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무대에 오르고 공연할 수 있도록 작품을 제작하고 콩쿠르를 개최하는 것이 제 역할이니까요.” -언제까지 오페라 제작을 하실 계획이신가요. “그건 저도 퀘스천(question, 의문)이에요.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요즘 몸이 조금씩 힘들지만 그래도 해야죠. 벌써 내년에 무슨 작품할지 기대가 돼요.” -오페라를 조금 더 쉽게 즐기는 방법이 있나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죠. 스토리만 알고 봐도 오페라가 한층 더 쉽게 느껴질 거에요. 온라인에서 제목만 검색해도 바로 스토리를 알 수 있지요.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봐도 좋고요. 들어보면 생각보다 친근한 음악이 많다는 걸 알게 되실 겁니다. 요즘엔 영화관에서 유명 오페라 공연 실황을 상영하고 있어 더욱 쉽게 접할 수 있어요. 사전 정보를 갖고 공연장에 오시면 안 보이고 안 들렸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할 겁니다. 그러다 보면 오페라의 매력에 푹 빠지실 거예요.” 양수화 글로리아오페라단 단장 △1971년 이화여대 음악대학 졸업, 74년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졸업 △86년 뉴욕 브루클린 음악원 석사과정 졸업, 쥴리아드 음악학교 수료 △87년 뉴욕 카네기 리사이틀홀 독창회 △88년 경희대 음악대학 강사 △91년 글로리아오페라단 창단 △98년 평택대 부총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