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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개울은 합천에 있는 큰 강인 황강으로 이어지는 물줄기다. 농부들은 이 물줄기에 기대어 농사를 짓는다. 이 개울에서 물을 끌어다 논과 밭에 물을 공급해서 가뭄이 심했던 작년에도 그럭저럭 농사를 지었다. 물을 끌어 들이느라 힘들고 물 때문에 농부들 끼리 다툼은 있어도 개울이 삶을 이어주는 중요한 자원으로 역할을 톡톡히 한다. 고니 농부들만 이 개울에 기대어 사는 것은 아니다. 우리 집 앞의 개울에는 여러 야생동물이 산다. 상주하는 고니가 3~4마리가 있다. 고니는 날개 끝에는 검정색을 띄고 날개 전체는 회색빛을 띄는 놈과 흰색의 두 종류가 보인다. 전통 청자 항아리에 흔히 보이는 소나무에 앉아 있는 모습의 새이다. 나는 도자기에 그려 놓은 새를 그전에는 실제로 본적이 없어 상상의 새 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개울이나 개울가에 있는 큰 나무 위에 앉아 있는 고니를 실제로 보고서야 옛 조상들이 그려 넣은 도자기 그림이 현실의 모습이었구나 하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 집에서 2km쯤 떨어진 정양 늪에는 여름이면 연꽃이 가득 피지만 겨울이면 우리 집 앞의 개울에서 사계절 살아가는 고니와 똑같이 생긴 새가 청둥오리와 함께 늪을 가득 메우고 앉아 먹이를 찾고 있다. 그런데 이 몇 마리는 날아가지 않고 우리 마을 개울에서 살아간다. 재작년 겨울에 야생동물 사냥을 허가한다는 플랑카드가 여기 저기 나붙고, 사냥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도 왔다 갔다 했다. 이 고니들을 죽일까봐 걱정이 되어 노심초사하고 이 개울을 지켜보고 있어야하는지 걱정하던 차에 사냥꾼과 마주치게 됐다. 사냥꾼에게 고니를 죽이지 말라고 당부를 했더니 자신들은 고니는 죽이지 않고 멧돼지만 잡는다고 해서 안도했다. 고니는 내가 이웃집 강아지 뭉치를 데리고 산책을 갈 때 마다 만나는데, 만날 때마다 마주치면 겁먹고 날아가 버린다. 내가 자기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물고기와 자라 개울에는 물고기와 자라가 산다. 잉어는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거나 때로는 물 위로 뛰어오르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낮에 개울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커다란 잉어의 자태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했다. 그런데 지난해는 유래 없는 가뭄으로 개울이 거의 바닥을 드러낼 지경으로 물이 말라가자 그 동안 가끔 보이던 잉어가 떼로 노니는 것이 확연하게 보였다. 의자를 개울가 큰 나무 밑에 가져다 놓고 망원경으로 잉어 떼를 자세히 관찰하면서 즐거워했다. 그런데 바로 이 잉어 떼를 잡겠다고 낚시꾼들이 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낚시꾼들 때문에 동네사람들이 화가 나 있었다. 낚시꾼들은 쓰레기를 버리고 가고, 농사 도구를 빌려가서는 돌려주지 않고 아무데나 던져놓고, 차를 공회전으로 세워놓기도 하고, 심지어 용변을 아무데나 보고 휴지까지 던져놓고 가서 낚시를 금지해달라고 군에 민원을 넣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낚시꾼들은 밤에 십여 명이 떼로 모여들어 그물망을 치고 물고기를 잡아갔다. 이웃 안금댁(가명)은 낚시꾼들에게 그물망으로 물고기 잡는 것은 불법이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혼자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 때 나를 부르라고 하니까, 그렇지 않아도 혼자서 감당이 안 되면 나를 부르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무엇이라고 하면서 이 낚시꾼들을 물리쳐야할까? 조만간 바닥까지 물이 다마르고, 낚시꾼들이 물고기를 다 잡아가 씨가 마르겠다고 한탄하고 있는데 갑자기 예보 없이 저녁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 조금만 더 오라고 기원했더니 밤새도록 비가 내려 물고기에 대한 나의 걱정은 끝이 났다. 낚시꾼은 여전히 오지만 그래서 살아남는 물고기가 더 많을 것이다. 뉴스를 보니 재래종 물고기를 먹어치우는 외래종인 베스는 잡아 없애야한다고 했다. 우리 동네 낚시꾼들이 물고기를 잡았다 도로 물속에 던지는 것을 종종 보는데, 이들은 살아있는 생물을 죽이지 않으려는 착한 낚시꾼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베스는 잡아도 먹지 않아 처치 곤란이어서 도로 물속으로 던진다는 것이다. 이제 나의 할 일이 또 하나 생겼다. 그동안 낚시꾼들과 마주치면 쓰레기 버리지 말라고 일렀는데, 이제 낚시꾼이 물고기를 잡아서 도로 물속에 던지기라도 하면 불법행위라고 따지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타고 온 차량 번호를 외우면서 고발이라도 할 태세다. 그리고 비가 흠뻑 와서 개울물이 차고 난 며칠 후 남편은 나보고 조용히 속삭였다. 자라가 떠있다는 것이다. 검은 물체가 잠시 떠 있다가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 가뭄에도 살아남은 자라가 대견해서 우리 개울에 자라가 있다고 좋아하면서 이웃 사람들에게 말했더니, 자라가 비싸다고 하면서 잡아야하는데 어떻게 잡아야할까 하고 궁리했다. 가뭄에도 용케 살아남은 자라들이 있었고 동네사람들은 그 자라를 잡지 못했다. 수달 우리 마을 개울에 작년 겨울부터 수달 한 가족이 이사 와서 살고 있다. 나도 물속에서 노는 몇 놈과 개울가를 뛰어다니던 한 마리를 목격했다. 어찌나 빨리 움직여 사진을 찍지 못해서 산책 갈 때 마다 열심히 찾아본다. 그런데 이웃사람들 말에 의하면 수달이 마을로 올라와서 길에 뛰어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이웃들은 모여서 수달이 천연기념물이라고 TV에서 보았다고 하면서 이빨이 길게 난 놈이 멋있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그런데 우리 마을 이웃이 닭 두 마리를 철창이 있는 우리에 넣어 길렀는데, 철창을 뚫고 한 마리를 무엇인가가 물고 갔다고 했다. 무엇이 물고 갔는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며칠 있다 마저 한 마리가 사투를 벌렸는지 닭털을 우리에 가득 남겨둔 채 사라졌다. 모두 족제비나 너구리가 물고 갔을 것 같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수달이 그 날카롭고 긴 이빨로 철창을 뚫고 닭을 잡아갔음이 분명하다. 그래도 함구하고 있다. 수달을 이웃들이 미워할까봐 걱정이 되어서이다. 족제비와 너구리는 이미 땅콩 밭에서 땅콩을 먹어치운다고 미움을 받던 차이고 때로는 잡혀서 죽음을 맞기도 한다. 그래도 천연기념물 수달이 미움을 받지 않게 보호해야하겠기에 함구하고 있다. 청둥오리와 야생오리 겨울이 되면 서울 한강에 청둥오리가 떼로 몰려와 여기저기 산다.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강가에 내려가면 겁이 많아 멀리 도망가 버렸다. 우리 마을 개울에서 비로소 청둥오리들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암놈은 몸 전체가 갈색 빛을 띄우는데 수놈은 머리 부분이 반짝이는 초록빛으로 아름답다. 열대에는 색깔이 아름다운 새들이 많은데 비해, 우리나라 새들의 색깔은 그리 다채롭지 못한데, 청둥오리 수놈은 그렇지 않다. 하루는 산책 갔다 오는 길에 길가에 커다란 검은 새가 앉아 있으면서 우리가 옆으로 지나가도 날아가지 않고 뒤뚱거리고 있었다. 아프나 싶어 동물보호센터에 신고를 해야하나하고 걱정하다 아침 일찍 다시 그 자리에 가보니 없어졌다. 개울 속 작은 섬에 앉아있는 그 놈을 다시 발견하고 어떻게 저기까지 갔을까하고 궁리하고 있는 순간, 나의 걱정을 뒤로 하고 물속으로 유유히 헤엄쳐갔다. 야생 오리였던 것이다. 농부들만 개울물을 끌어다 가뭄에도 탈 없이 농사를 짓고 수확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많은 생물들이 개울에 기대어 산다. 농사를 짓지 않는 나는 개울에 사는 생물들로 큰 기쁨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