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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결혼을 통해 결합한 이성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만을 ‘정상가족’이라는 틀에 가둬왔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가족(the family)은 가족들(families)로 존재해 왔습니다. 한부모 가족, 동성애 가족, 다문화 가족, 1인 가족 등 ‘정상가족’의 틀을 넘어 다양한 형태로 우리 이웃에 존재하는 ‘가족들’을 소개합니다. “빈집은 여러 가치가 동등한 무게로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단 ‘혐오’만 빼고요.” 남산 밑의 언덕에 형성된 서울 용산구 해방촌. 이 동네엔 올해로 10년째 청년들의 주거공동체인 ‘빈집’이 운영되고 있다. 빈집은 ‘만인에게 열려 있는 집, 만인과 공유하는 집’을 뜻한다. 구성원들은 빈집을 “언제나 비어 있는 집이며, 가난한(貧) 사람들이 또한 가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라고 표현한다. ‘빈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장기 투숙객과 단기 투숙객으로 나뉜다. 빈집의 경제시스템은 구성원들이 직접 돈을 모아 공동주거비를 충당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월세, 보증금에 대한 이자, 공과금, 식비 등을 포함해 한 달에 최소 25만원을 지불한다. 공동체 생활을 위한 보증금 등이 필요할 때는 공동체 은행 ‘빈고’에서 돈을 빌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총 8채의 빈집이 운영되고 있었지만, 최근 해방촌 일대의 집값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이락이네’ ‘소담이네’ 등 2채밖에 남지 않았다. 몇 년 전만 해도 파리 날리던 동네엔 유명 연예인이 운영하는 책방이, 시장 상인들이 떠난 자리엔 카페와 술집이 들어섰다. 구성원들은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빈집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20일 찾은 ‘이락이네’에는 7명의 청년과 고양이 이락이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이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빈집에서 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들이 경제적 이유로 빈집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 가온은 “원래 살던 집이 재개발되면서 지낼 곳이 필요해 빈집에 오게 됐다”고 했다. 사씨는 “서울에 일이 있을 때마다 단기투숙을 했다. 이후 서울에서 정기적으로 지내야 할 일이 생기면서 ‘빈집’에서 살게 됐다”고 말했다. 공동체에 대한 욕구로 빈집을 찾은 이도 있었다. 오디는 “인터넷에 공동체라는 것을 찾아봤다. 우리나라엔 없을 줄 알았는데 빈집이 나왔다”고 했다. 빈집 구성원들은 서로의 이름과 나이를 모른다. 다만 서로의 별명을 부를 뿐이다. 자연스레 나이, 성별로 인해 생기는 사회 속의 권력 관계가 사라진다. 이들은 매주 식탁 앞에 둘러앉아 회의를 연다. 회의를 통해선 함께 살아가는 방식과 집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 회의 결과는 함께 공유한다. 같이 모여 보드게임을 하고, 영화도 본다. 같은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시간도 갖는다. 우더(남)는 “빈집은 게스트하우스처럼 시작됐지만, 따로 호스트가 없는 공간이다. 여행자나 급하게 잘 곳이 필요한 탈가족청소년 분들이 와서 지내기도 한다. 하루든 평생 살 곳이 필요하든 ‘일단 오시라’고 한다. 다만 들어 와서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빈집 구성원들은 서로를 ‘식구’(食口)라고 표현했다. 일주일에 몇 번 식사를 같이하냐고 물었더니 “거의 매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돌아가면서 반찬 당번을 하고, 요리와 뒷정리는 모두가 함께 한다. 이들은 결혼, 입양, 혈연 등 기존의 가족 체제만이 당연한 선택지라고 보지 않았다. 모호는 “우리는 함께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며 “주변에 빈집 사람들을 ‘식구’ ‘집사람’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오디는 “누군가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아이를 낳으면 같이 살 수도 있을까 빈집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했다”며 “이는 빈집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사회협동조합인 ‘빈둥’ 설립을 통해 풀어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