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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결혼을 통해 결합한 이성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만을 ‘정상가족’이라는 틀에 가둬왔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가족(the family)은 가족들(families)로 존재해 왔습니다. 한부모 가족, 동성애 가족, 다문화 가족, 1인 가족 등 ‘정상가족’의 틀을 넘어 다양한 형태로 우리 이웃에 존재하는 ‘가족들’을 소개합니다. 람이는 ‘야옹’하고 울지 않는다. 곁에 있으면 눈을 가늘게 떴다 감으며 새애-액 하고 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에헤! 짧게 울기도 하고, 헤오오옹! 헤오오옹! 큰 소리로 한참을 울기도 한다. 모두 분명한 의사 표현이니 흘려 들어선 안 된다. 우리가 함께 산 지 2년, 말이 좀 통하게 된 지 1년 반이 지났다. 이젠 ‘가족’ 이외의 말로 람이와 나의 관계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3년 전 이야기를 해야 한다. 고양이 다섯 식구를 만난 건 비가 세차게 퍼붓던 여름밤이었다. 새끼들은 고름과 눈곱이 끼어 벌겋게 부은 눈을 뜨지 못하고 버둥거렸다. 마른 몸으로 젖을 물리던 어미는 애처롭게 울었다. 구충제며 안약을 챙겨준 동네 캣맘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실명하거나, 단명하거나. 가슴이 철렁했지만 한 마리당 수십만원이 든다는 동물병원엔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밥그릇만 꼬박꼬박 챙겼다. 이거라도 많이 먹고 힘내라. 살아야지. 세 달이 흘렀다. 녀석들은 여름 숲처럼 무럭무럭 자라났다. 큰 털뭉치, 작은 털뭉치 넷이 모두 살아서 새 계절을 맞았다. 그 무렵엔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퇴근하자마자 동네로 달려갔다. 까불고 찧고 뒹구고 노는 길냥이 가족을 한참 들여다보고 놀아주다 보면 하루가 금세 갔다. 고양이 가족은 생명이란 얼마나 경이롭고 감동적인 사건인지 미천한 인간에게 몸소 가르쳐주러 온 듯했다.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끼 하나가 꼼짝 않고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다음 날 어미가 쓰러졌다. ‘범백’이라는 무서운 바이러스가 돌았다. 허둥지둥 어미와 새끼들을 붙잡아 병원에 데려갔지만 이미 늦었다. 일주일 동안 한 달 월급을 썼지만 누구도 구하지 못했다. 생명은 아름다운 만큼 쉽게 스러지기도 한다는 걸 그 때 알았다. 포획틀을 용케 벗어난 새끼가 하나 있었다. 유독 겁이 많아 사람이 사라질 때까지 숨었다가 남은 밥을 먹는 녀석이었다. 나를 보면 바람같이 달아나길래 ‘바람’이라고 불렀다. 홀로 남은 바람이는 시름시름 앓지도 않고 계속 자랐다. 덩치 큰 고양이들에게 영역을 빼앗긴 뒤로는 따로 불러내 밥을 줬다. 우리가 조금씩 거리를 좁히는 사이 겨울이 왔다. 추운 밤 바람이가 우리 집 현관에 들어왔다. 온기에 잠시 홀렸을 것이다. 제가 어디 있는지 깨닫자 온 몸의 털을 힘껏 부풀리고 포악하게 울어댔지만, 따뜻한 방에서 밥을 먹이고 담요를 둘러 주자 누워 배를 드러낸 채 잠들었다. 도저히 다른 곳으로 보낼 수가 없었다. 일단 ‘바람’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또 나를 바람처럼 떠나갈까 싶어서다. 바람이란 이름은 좋은데 말이다. 그럼 이제부터 네 이름은 ‘람’이다. 람이는 올해 세 살이다. 나는 한 달에 적게는 수만원에서 수십만원이 드는 고양이 약값과 사료값 걱정에 연봉협상을 시도해야 하나 고민하고, 왜 합리적인 가격과 조건의 반려동물 보험은 나오지 않는지 한탄하고, 반려묘가 있으면 세를 올려 받거나 보여줄 방이 없다는 부동산을 돌며 한숨을 쉬고, 치주염이 있는 주제에 양치질을 싫어하는 람이와 매일 밤 실랑이를 벌이고, 쉴새없이 날리는 고양이 털 때문에 비염 증세가 심해져 알레르기 치료약에 의존하는 날이 늘어도, 람이와 오랫동안 아픈 데 없이 함께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한 친구가 말했다. “고양이 덕분에 니가 어른이 된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