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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꽃은 자태로 벌과 나비를 유혹하지만 소박하고 작은 꽃들은 향기로 존재를 알린다 나는 무슨 꽃이든 다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유독 향기 나는 꽃을 특히 좋아한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산책길에는 아카시아꽃이 향기를 선사하고 대문 앞에 놓아둔 자스민의 향기는 대문을 들락날락할 때마다 행복하게 해준다. 뒷마당의 인동초꽃 향기는 밤이 되면 진하게 풍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향기 하면 천리향과 라일락과 치자를 빼놓을 수 없다. 천리향과 라일락은 어릴 때 살던 집의 내 방 창문 앞에 있었던 나무였고, 치자는 우리 집 마당의 제일 중앙을 떡 차지하고 있던 나무다. 치자는 열매까지 맺어 추석이 되면 아버지는 치자 열매를 열 개씩 실로 매달아 이웃들에게 선물로 보냈는데 나는 그 선물 배달원이었다. 치자는 계란이 귀하던 시절 전을 노랗게 물들여 보기 좋게 하는 귀한 재료였다. 마당에 나무를 심으면서 남편은 우선 과실나무를 종류별로 심는데 주력했다. 매실나무, 복숭아나무, 사과나무, 호두나무, 배나무, 무화과나무, 감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 앵두나무, 모과나무, 포도나무, 대추나무 등을 한두 그루씩 심었다. 그런데 나의 과업은 라일락과 천리향과 치자나무를 우리 마당에 심어 어린 시절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라일락은 종류도 많다. 온라인으로 ‘미스 김’ 라일락을 비롯해 6종류를 구매했다. 미스 김 라일락은 우리나라가 원산지인데 미국으로 가져가 이름을 미스 김 라일락으로 붙였다고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다. 남편이 꽃을 심는 방식은 여기저기에 한그루씩 심자는 것으로 이 구석에 한그루 저 구석에 한그루씩 심어놓았다. 나는 꽃도 이웃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어야 잘 자란다고 몇 달 며칠에 걸쳐 목청 돋워 주장해 남편의 항복을 받고 대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곳에 라일락을 일렬로 죽 옮겨 심었다. 천리향이 질 때쯤에 미스 김 라일락이 먼저 보라색 꽃을 피우고 향기를 선사한다. 미스 김 라일락 등 보라색 꽃이 지고 나면, 나머지 라일락이 하얀 꽃을 풍성하게 피우고 향기를 뿌린다. 5~6년이 지나자 이제 키가 3m나 되게 자라났다. 치자나무와 야래향 치자나무는 해마다 한 그루씩 샀지만 겨울을 나지 못했다. 일산 꽃시장에 나의 키만 한 치자나무가 꽃이 주렁주렁 달려 탐이 나 서울 집으로 가지고 와서, 어느 비 오는 날 한 손에는 캐리어를 끌고 한 손에는 치자나무를 들고 비를 죽죽 맞으면서 동서울터미널에 당도해 시골집으로 가져와서 심었으나 이 나무도 죽어버렸다. 우리 집 마당에서 치자나무가 6~7그루나 죽었다. 온실에서 키운 것이어서 적응을 못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아예 화분에 키우는데, 날씨가 따뜻해지면 마당에 내놓고 겨울에는 목욕탕에 둔다. 치자나무는 습기를 좋아해서 목욕물에서 나는 김을 쬐고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을 맞으며 겨울을 견뎠다. 그런데 봄에 마당에 내놓으면 그때부터 잎이 말라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여기저기 옮겨보기도 하고 물을 주기도 하고 목욕탕에 다시 들여놓기도 해봤지만 계속 떨어져 포기하는 심정으로 마당 귀퉁이에 그냥 뒀더니 잎 떨어지기를 그치고 새잎이 나고 있다. 작년에도 그러더니 올해도 그런다. 아직도 사태 파악이 잘 되지 않아 대책을 잘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이웃집에는 마당에 치자나무가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다. 열매 치자나무인데, 이 치자나무는 빈집을 지키고 있다. 이 집의 주인 아지매는 아들이 이혼하고 어린아이 둘을 홀로 키우게 돼 손자를 봐주러 가고 없다. 한번 만났을 때 치자나무를 얻고 싶다고 부탁했더니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묘목이 없다. 늦여름이 되면 산책길에 동네 이웃들과 함께 주렁주렁 달린 치자열매를 딴다. 더 이상 전 부치는 데는 쓰이지 않지만 민화 그리는데 물감이 된다고 해서 손이 닿는 데 있는 치자를 따서 민화를 그리는 친구 정강자에게 보낸다. 치자나무를 가장 많이 본 곳은 통영의 동피랑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길가에 죽 늘어선 치자나무는 여름에 어찌해서 그리도 잘 살아 향기로운 꽃을 무성하게 피우는지. 치자나무가 무성하게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며 그 향기를 취하도록 마시고 싶다. 그러면 어린 시절로 잠시 돌아간 듯하다. 야래향은 우리 집에서는 8월 중순에 피어서 약 10일간, 그리고 9월 말에 다시 피는데, 그 이름과 같이 밤에만 향기를 내뿜고, 낮에는 감쪽같이 사라진다. 야래향의 꽃향기는 진하다 못해 감각적이기까지 하다. 야래향 화분을 잠자는 방 근처 창에 세 그루를 배치하고 여름밤 향기에 취해본다. 이 향기는 한밤에 더 진하게 나서, 잠자는 것은 소중한 것을 놓치게 되는 셈이다. 그래도 여름밤이면 밤마다 잠들어버리는 바보 같은 짓을 되풀이하면서 야래향 꽃이 지는 것을 아쉬워한다. 야래향은 가지를 꺾어 흙에 심기만 하면 잘 큰다. 여러 개의 화분에 키워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이른 여름에 피었다고 소식을 전해온다.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가지가 너무 크게 자란다고 걱정인데 가지를 전지를 해도 다시 잘 큰다. 우리의 경우, 겨울에 온실에 보관할 때 가지를 거의 전지를 해버리지만 다음 해에 다시 가지를 키워 꽃을 피운다. 야래향은 한여름에 물주기를 조금만 소홀히 하면 잎이 시들시들하다. 하루에 한 번은 물을 듬뿍 줘야 한다. 5월말부터 6월까지 온 집안을 감싸는 향기는 백합이다. 흰색과 붉은색 백합이 활짝 피면 열어놓은 창문으로 향기가 집안으로 스며든다. 그런데 작년에는 하얀 백합과 붉은 백합은 한 그루만 꽃을 피웠다. 하얀 백합이 피기 전에 살구색 백합이 여러 그루에서 꽃을 피웠다. 백합의 구근을 캐서 겨울 동안 스티로폼 박스에 보관했다가 다시 심었으나 근처 다른 곳에서 그냥 마당에 두어도 꽃이 잘 핀다고 해서 재작년에는 마당에 두고 부직포를 덮어 그냥 보관했더니 변종색이 등장한 것이다. 꽃 기르기 책에 보면 같은 곳에 계속 심지 말고 옮겨 심으라고 권고하고 있는데, 그 권고를 무시하고 계속 같은 곳에 심고 있는데 꽃은 계속 잘 피고 있으나 꽃 색깔이 변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은목서와 금목서 통영에서 일하던 딸이 은목서 꽃을 작은 유리그릇에 담아 향기를 맡아보라고 건네준 것이 은목서와 처음 만난 계기였다. 꽃이 누렇게 될 때까지 향기를 맡았다. 그런데 어느 해 10월 봉하의 노무현 대통령 사저를 방문했을 때 그 향기가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다. 사저뿐만 아니라 봉화 마을 전체를 뒤덮는 향기가 바로 은목서 향기이다. 제주도민들이 노 대통령이 4·3사태에서 양민들이 학살당한 것을 사과하고 기념관을 건립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노 대통령이 귀향하자 선물한 것이다. 잔잔한 흰 꽃들이 향기를 내뿜는다. 화려한 꽃은 그 자태로 벌과 나비를 유혹하지만 소박하고 작은 꽃들은 그 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은목서가 부러워서 꽃집에서 구입하려다 보니 금목서라는 나무도 있는 것이었다. 꽃 모양은 같고 향기도 비슷하지만 꽃이 황금색을 띤 나무가 바로 금목서이다. 금목서와 은목서 묘목을 사서 마당에 심었다. 몇 해 자라지 않고 꽃도 피우지 않아서 노심초사했으나 재작년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하더니 키도 훌쩍 컸다. 금목서가 지난겨울 추위에 죽은 줄 알았더니 새잎을 틔워서 ‘휴’ 안도한다. 장미나 인동초꽃같이 화려한 꽃들도 향기를 뿌리지만, 야래향이나 은목서와 금목서 그리고 자스민과 같이 조촐한 꽃들이 더 진한 향기를 뿌린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나는 꽃과 같이 향기가 나는 사람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