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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라믹 아티스트 도화 김소영 작가 산티아고 가기 위해 도자기 카네이션 제작 SNS 활용해 홍보·마케팅·판매까지 한번에 도자기 대중화 위해 길거리 퍼포먼스도 “강원도에 새 보금자리… 치열하게 작업할 것”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받은 영감을 작품에 담는 작가가 있다. 세라믹 아티스트 도화(陶花) 김소영 작가의 이야기다.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인 ‘조개’ 문양을 활용한 도자기 브로치부터 목걸이, 팔찌, 달력, 다이어리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이 작품들은 관광객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세 번의 산티아고 방문을 통해 그가 깨우친 것은 바로 ‘비우는 힘’이다. 배낭을 짊어지고 내리쬐는 햇볕 아래 약 한 달 간 800km를 걸었다. 이 과정은 마치 인생의 축소판 같다. 비울수록 더 큰 삶의 원동력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소영 작가는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며 “분주하던 삶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느꼈고, 이 정신을 작품으로 표현해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총 3번의 산티아고를 갔다 왔어요. 다녀올 때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배운 건 욕심을 비우고 내려놓는 것이었어요. 처음 산티아고에 다녀온 뒤 4년간 쉴 새 없이 달렸거든요. 이젠 생활 속에서 조금씩 여유를 찾고 있어요.” 김소영 작가는 스무 살 때 파울로 코엘료의 ‘오 자히르’를 읽고 산티아고를 알게 됐다. 이후 가슴 속 깊이 언젠간 그곳을 가고야 말겠다는 꿈을 품었다. 품고 있던 꿈을 실현한 건 대학 졸업 이후였다. 학생 때조차도 마음 놓고 쉰 적이 없었다는 그는 과 학생회장, 미대 학생회장 등을 도맡아 적극적으로 대학생활에 참여했다. 방학 땐 미술학원, 방과 후 교실, 카페 등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 졸업 후엔 온라인 쇼핑몰에 취직한 사회초년생으로 새로운 일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여행 기간으로만 최소 한 달, 이대론 영영 산티아고에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을 뒤로하고 과감한 결심이 필요했다. 김 작가는 “결국 도예 작가의 길을 걷게 해준 것도 산티아고 순례길 덕분”이라고 했다. “무작정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었던 게 지금의 저의 대표작인 ‘도자기 카네이션’이었어요. 당시 트위터를 통해 도자기 카네이션을 홍보했는데 반응이 뜨거웠어요. 메시지로 문의도 많이 받았고요. 그렇게 여행비용을 모아 2011년도에 처음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를 수 있었어요.” 8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됐다. 여행에서 돌아와 같은 해 수제품 전문샵인 비쥬앤을 창업했고, 도자기를 판매한 자금을 모아 1년 뒤엔 개인 작업실을 오픈했다. 지난 2012년 개인 작업실을 연 이후로는 도자기 카네이션과 ‘우주별’이라는 브랜드에 이어 반려동물과 꽃으로 테마를 확장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예술가다. 블로그·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을 활용해 홍보, 판매를 진행하고 대중과 친밀히 소통한다. 종일 작업실에 있어야 하는 그에겐 SNS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기 때문이다. 인기는 연예인 못지않다. 블로그 구독자 수 2만명,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팔로워 수는 1만명을 넘는다. SNS를 활용한 사람들과의 소통은 때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산티아고 달력’ 제작도 댓글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였다. 제작 전 블로그에 글을 올려 구매할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50명이 사겠다는 댓글을 달았고, 달력이 완성되기 전 500부가 팔렸다. “SNS마다 특징이 다르긴 하지만 자주 사용하고 꾸준히 이용하는 게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마케팅을 따로 배운 적이 없어요. 다 부딪히면서 배운 과정입니다. 제 작품이니까 직접 홍보해야죠. 제가 알리지 않으면 누가 알겠어요. 가까운 친구조차 SNS를 통해 무엇을 하는지 확인하는 세상인걸요.” 그는 제작 과정을 오픈하는 게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학생 때 열심히 만든 컵을 1만5000원에 팔았는데 다들 비싸다고 하는 거예요. 속상하긴 했지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과정을 모르니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했어요. 제 경우에도 만드는 과정을 쭉 지켜봐 오다가 사시는 고객분들이 많아요. 노하우를 전부 공개하지 않고 공정 정도만 오픈해도 충분해요.” 작품에 대한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길거리로 나가 도자기 작품과 패션을 콜라보해 대중들에게 선보이는 퍼포먼스 행위예술가로도 활동했다. 기존의 도자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없애고 새로운 시각에서 도자기를 쉽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자기 카네이션으로 온몸을 장식하고 거리에서 진행하는 일명 ‘파이오니어 퍼포먼스’를 2013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그는 지난 6년간의 추억이 있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작업실을 떠나 올 6월부턴 강원도에서 새 삶을 시작할 예정이다. “작업실을 옮겨야 할 시점에 강원도 홍천 작은 수도원에 공간을 얻게 돼 주저하지 않고 결정을 내렸어요. 이곳에서 지금까지 먹고사느라 하지 못했던 작업을 치열하게 해볼 생각입니다. 다양한 상품 개발을 할 수도 있겠죠. 그리고 내년쯤 다시 산티아고로 떠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