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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성 변호사의 이러시면 안됩니다 - 16] 드디어 우리에게도 새 법이 생겼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더라도 다음 개정에 있어서는 조금 더 공백 없이 꼼꼼하고 촘촘하게 규율하는 법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지난 해 우리 대법원은 사업주의 성희롱 2차 피해 유발에 관한 아주 중요한 판결을 내놓았다(대법원 2017. 12. 22. 선고 2016다202947 판결). 세상에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은 참으로 다종다양하게 많아서, 이번에는 사업주가 피해자나 그 피해를 신고한 근로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도와준 동료 근로자를 괴롭혔단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식으로 사람에게 교묘하게도 해를 끼치는 일은 어디서든 수면 아래 숨은 곳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일이다. 사건 발생 초기에 그 신고나 진정을 도와주었던 것은 아니지만 절차가 진행되고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된 후에 도움을 주어야겠다고 마음먹는 동료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옳거니! 제대로 걸려들었다!’ 라고 하면서 그 동료에게 해코지 하고 있다면 이것이 피해자의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피해자의 용기를 ‘확실하게’ 꺾어버리고 절차진행 의사를 단념케 하는 데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는 두 말할 나위조차 없다. 사실은 이거야말로 ‘2차 피해 중의 2차 피해’ 아닌가! 이 정도 급이라면 가히 신묘하다고 해야 마땅할 듯하다. 정말 지독하게도 악질적이라고 밖에는 달리 할 말도 없다. 대법원은 이렇게 판단했다. 구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그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 본인은 아니며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한 적도 없었지만, 주변인으로서 피해자의 곁에서 도움을 주었던 동료 근로자에게 사업주가 불리한 조치를 했던 경우라면 이를 구 남녀고용평등법 관련 조항을 직접 위반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잠깐만! 여기까지 읽다가 행여 화가 났더라도 일단 마음을 진정하고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여기서 끝이 아니다. 법원은 더 나아가 이렇게 판시했다. 사업주가 피해근로자 등을 가까이에서 도와준 동료 근로자에게 불리한 조치를 한 경우에, 그 조치의 내용이 부당하고 그로 말미암아 피해근로자 등에게 정신적 고통을 입혔다면 피해근로자 등은 사업주가 내린 불리한 조치의 직접 상대방은 아니더라도, 그러니까 여기서 불리한 조치를 당한 것이 피해자 본인이 설령 아니라 하더라도, 다름 아닌 그 피해자 자신이 그 사업주에게 불법행위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사업주는 신속하고 적정한 방법으로 피해자나 신고한 사람 등이 후속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마땅하지만, 이 의무에 위배하여 피해자를 도와준 동료 근로자에게 부당한 징계 등을 했다면 이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업주가 피해자 등에 대한 보호 의무를 위반한 것이 맞다고. 중요한 내용은 더 있다. 피해자에게 도움을 주었던 동료가 누구였는지를 사업주가 알게 된 이후, 그 동료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차별적으로 부당한 징계 등을 하였다면 사업주로서는 그 부당한 행태로 말미암아 피해자 본인에게도 정신적 고통이 발생하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당연하다. 그리고 지극히 정당한 판단이다. 조금 늦은 감도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 걸음씩 우리는 달라지고 있고 나아지고 있다. 자, 그러면 이제 우리 새 법은 이와 같은 문제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한 번 보자. 새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2항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근로자”를 “피해근로자등”이라고 약칭하는 것으로 정한다. 이어서 제6항에서는 “성희롱 발생 사실을 신고한 근로자 및 피해근로자등”에게 여러 가지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밝힌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피해자 본인은 아니지만 성희롱 발생 사실을 신고한 제3자인 근로자, 피해자 또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근로자는 모두 이 조항에 근거하여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가? 피해사실을 대신 신고해 준 것은 아니었지만 절차 진행 도중에 피해자를 도와주었던 동료 근로자의 경우는 새 법에서도 여전히 빠져 있다. 세상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새로 만들었다더니 무슨 새 법에 이렇게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말인가! 너무 흥분하지는 말자. 법 규정에서 직접 명시해 두지는 않았지만 법원의 판례를 통하여 메워질 수 있는 부분, 메워져야 하는 부분은 꼭 이 법뿐만 아니라 다른 법의 경우에도 많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이제 남녀고용평등법 각 조항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대법원 판례도 이미 있다. 다만, 그렇더라도 다음 개정에서 법 규정 자체만으로도 모든 가능한 경우의 수를 철저하게 규율할 수 있는 법이 만들어지게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듯하다. 이왕 쓴 소리를 시작했으니 하나만 더 해보자. 남녀고용평등법과 함께, 또 다른 법에서도 성폭력 사안에 관한 불이익조치 또는 2차 피해에 대한 예시 규정을 새롭게 마련해 둔 바가 있다. 올해 6월 20일부터 시행될 예정인 장애인복지법 제59조의5는 누구든지 장애인학대 및 장애인 대상 성범죄 신고인에게 불이익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명시한다. 첫째, 파면, 해임, 해고,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신분상실의 조치. 둘째, 징계, 정직, 감봉, 강등, 승진 제한, 그 밖에 이에 준하는 부당한 인사조치. 셋째, 전보, 전근, 직무 미부여, 직무 재배치,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인사조치. 넷째, 성과평가 또는 동료평가 등을 통한 임금, 상여금 등의 차별적 지급. 다섯째, 교육·훈련 등 자기계발 기회의 박탈 및 예산·인력 등에 대한 업무상 제한,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근무 조건의 차별적 조치. 여섯째, 요주의 대상자 명단의 작성·공개, 집단 따돌림 및 폭행·폭언,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정신적·신체적 위해 행위. 일곱째, 직무에 대한 부당한 감사, 조사 및 그 결과의 공표. 어떤가?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6항과 거의 유사한 취지에서 마련된 조문임에도 그 내용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요주의 대상자 명단의 작성·공개나 직무에 대한 부당한 감사·조사 및 그 결과의 공표 등을 금지하는 내용은 장애인복지법에만 있다. 반대로 남녀고용평등법은 집단 따돌림 등 정신적·신체적 손상을 가져오는 행위를 그대로 방치하는 행위도 포함하지만 장애인복지법에서는 이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일반적 규정으로서 ‘그 밖에 신고를 한 근로자 및 피해근로자등의 의사에 반하는 불리한 처우’라는 내용은 남녀고용평등법에 있으되, 장애인복지법에서는 빠져 있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한편으로 생각하면, 예컨대 근로자인 장애인은 위의 두 법을 중첩적으로 적용받을 것이니 그만큼 내용이 더 풍부해지는 점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비슷한 취지에서, 그것도 거의 비슷한 시점에 새로 입안된 두 조문이 이처럼 차이를 보인다는 것은 아무래도 조금 어색한 면이 있다. 혹시 각 법률이 유기적으로 심도 깊게 검토되었다기보다는,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제각기 만들어지다 보니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 사건을 접하다보면 늘 느끼는 바이지만, 현실은 머릿속에서 상상 가능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다기하고 기상천외하다. 그렇기에 법이 현실을 한 치의 예외도 없이 완벽하게 규율해낼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최대한의 노력은 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우리에게는 새 법이 있다. 이 법이 법전 속에만 숨어 있지 말고, 진정으로 우리 모두를 정의롭게 보호해 줄 튼튼한 방패막이 되어주기를.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다시금 가지게 될 새 법은 지금 이 법보다도 더욱 더 치밀하고도 상호 정합적으로 잘 짜여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