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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VS 호찌민 1000년에 이르는 중국 지배와 연달아 이어진 프랑스와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1945년 마침내 해방된 베트남은, 1954년 체결된 제네바 협정으로 인해 북위 17도를 기점으로 공산주의를 중심으로 한 북베트남과 자본주의를 이념으로 삼은 남베트남으로 갈라지게 됐다. 그 뒤 벌어진 베트남 전쟁에서 승리한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의 수도로 기능했던 사이공(Sài Gòn: 호찌민의 옛 이름)을 점령하고 베트남의 통일을 이룩해냈다. 전쟁이 끝난 뒤 남베트남의 편에 섰던 인사들을 향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뤄졌는데 수십만 명으로 추정되는 보트피플도 이 과정에서 발생했다. 1600km에 달하는 국토 길이를 가진 베트남에서 각각 북쪽과 남쪽 끝에 자리한 하노이와 호찌민은 물리적인 거리와 오랜 세월 적으로 지냈던 역사가 혼합돼 날씨부터 음식, 사람들의 성향까지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흔히들 하노이를 행정 중심의 도시, 호찌민을 경제 중심의 도시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각 도시의 사람들이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는 단순한 지역차이를 넘어 외국인을 마주할 때와 비슷한 수준의 이질감을 전제로 한다. 실제 인터넷에서는 두 도시의 차이를 비교하며 희화화하는 영상이나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자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보수적 하노이, 개방적 호찌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자료 조사가 필요할 만큼 하노이와 호찌민은 많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먼저 적도에 가까운 호찌민이 일 년 내내 여름인 것과 달리 하노이에는 우리나라만큼 뚜렷하진 않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이 있다. 날씨의 영향으로 하노이와 호찌민은 각각 특화된 음식을 갖고 있는데 하노이에서는 소금이 많이 든 쌀국수와 분짜(bún chả, 완자와 면을 함께 먹는 음식)가 유명하고 호찌민은 채소와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쌀국수와 달콤한 음식이 발달했다. 정작 외국인들은 중부 지역인 후에 지방의 음식을 가장 선호하는 데 반해 하노이와 호찌민의 각자의 음식이 베트남을 대표한다고 설전을 벌인다. 행정기관이 모여 있는 하노이와 베트남 경제의 중심인 호찌민은 도시의 색깔과 분위기 역시 크게 다르다. 한 네티즌은 하노이와 호찌민의 차이를 설명하며 밤 11시에 하노이 사람들은 잠자리에 드는 반면 호찌민 사람들은 나이트라이프를 즐기러 나간다고 묘사했는데 직접 겪어본 두 도시의 느낌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노이의 경우 상대적으로 엄격하고 경직돼 있는 데 반해 호찌민은 클럽과 술집에 외국인과 젊은이들이 넘쳐나며 친절하고 자유분방한 분위기다. 언어에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각 지역에서 사용하는 단어나 어감이 조금씩 다르고 발음 또한 적잖이 차이 나는데 수도인 하노이 언어가 표준어인 만큼 호찌민의 언어는 방언으로 취급된다. 하노이가 좀 더 정중하고 딱딱한 느낌이라면 호찌민의 방언은 부드럽고 친절한 느낌이 강하다. 하노이와 호찌민의 지역 갈등 문화의 차이가 큰 만큼 하노이와 호찌민의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지역 간의 차이를 의미하는 꿉 포 디아 픙(cục bộ địa phương:지역감정)은 지역갈등의 문제를 다루는 뉴스 제목으로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고 폐쇄적인 지역주의를 타파하자는 전문가의 칼럼 역시 각종 매체에서 종종 눈에 띈다. 일상에서 하노이 사람들, 혹은 호찌민 사람들이 서로를 험담하는 모습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발견할 수 있다. 베트남 내의 지역감정은 점점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이처럼 극명한 두 지역의 차이에 대해 하노이는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으로 유교 문화의 영향 아래 있어 예의와 신중을 높게 여기는 반면 외국 기업의 진출이 활발한 호찌민의 경우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중요시한다는 평가도 있고, 해방 후 북과 남으로 갈라진 역사가 만들어 낸 간극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통일 후 하노이가 행정 수도로서 발전을 거듭한 반면 호찌민은 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돼 있었다는 피해의식이 작동했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보트피플, 유학, 이민 등으로 베트남을 떠났던 이들이 다시 고국의 품으로 돌아와 베트남의 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기여하고 있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양 지역 간의 갈등 양상도 조금씩 변화가 감지된다. 하노이 사람들은 부를 감추고 내세우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반면 해외파들의 활약이 활발한 호찌민에서는 부와 소비를 당당한 노동의 보상으로 여겨 자랑하는 추세인데 그 모습을 두고 호찌민 사람들은 하노이의 과묵함을 음흉하다고 표현하고 하노이에서는 호찌민의 자유분방함이 천박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사회가 변하고 문화가 달라질수록 다시 또 새로운 갈등이 생겨나는 셈이다. 축구가 지역감정 해결? 이와 같이 오랜 시간 굳어져 온 베트남의 지역감정에 최근 변화의 기미가 포착됐다. 바로 몇 달 전 치러진 아시아 축구연맹 U-23 챔피언십 대회에서의 선전이 그 계기가 된 것이다. 남북의 진정한 통일을 이룩한 것은 축구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우승을 기원하며 각 지역의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응원했던 순간만은 지역감정이 허물어지고 베트남이 하나가 됐다고 많은 베트남인들이 입을 모은다. 이미 몇 달이나 지난 탓에 그 효과가 오래 가지 못할 거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지만 하나가 돼 응원하는 경험이 베트남 국민 모두에게 통합과 단결의 가치를 깨닫는 새로운 기회가 돼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노이와 호찌민의 지역감정은 한국의 그것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이념으로 나뉘었던 과거의 기억, 비행기로도 2시간이 넘게 걸리는 물리적인 거리감 그리고 거기에서 기인한 문화적 간극이 현재까지 견고하게 유지되며 지금의 지역감정으로 단단하게 굳어졌다. 지역 갈등이란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며 지내온 베트남 사람들이 최근 경험한 통합과 화해의 시간을 통해 불필요한 미움과 편견을 없애고 하나 된 베트남으로 성장해가는 날이 빨리 오기를. 그리고 그 과정에 축구를 통한 한국의 역할이 미세하게나마 기여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