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전체메뉴 보기
  • SNS 기사 공유카카오톡으로 보내기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 2018 여성신문 30주년,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

  •  
  • SINCE 1988 : 여성운동 · 페미니즘 · 젠더민주주의

    성평등 사회로 가는 디딤돌,
    ‘여성신문’과 함께 해주세요.

수의대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입학하고 1년이 지나면 소위 ‘개박사’가 돼있을 줄 알았다. 학과에 대한 순수한 동경 탓이었겠지만, 수의대를 다니면 강아지의 눈만 봐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학교를 4년째 다니고 있는 지금, 나는 여전히 무지하고 부족하다. 수의대생들이 공통적으로 난감한 순간은 바로 주변 사람들이 강아지에 대해 물어볼 때다. 이 무지한 수의대생이 새로운 지식을 하나씩 배울 때마다 희생당하는 어린 영혼이 한 마리 있으니, 바로 순돌이다. 조류, 어류, 반추류 등 다양한 동물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지만 아무래도 개와 고양이에 대한 학습 내용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개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익히고 나면, 어딘가 실제로 적용을 시켜봐야 더욱 이해가 잘됐다. 가령, ‘반려동물학’이라는 과목을 통해 강아지 품종별로 취약한 질병이나 강아지라는 개체가 쉽게 노출되는 질환 등을 배웠다. 요크셔테리어는 기관지 협착증에 취약하며, 소형견이기 때문에 슬개골 탈구에 노출이 쉽다고 한다. 그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온 후, 순돌이가 조금이라도 기침을 하는 것 같으면 틈을 놓치지 않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순돌이가 큰 병에 걸린 건 아닐까 신경이 쓰였다. 어떤 날에는 순돌이가 걷는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곤 했다. 틈만 나면 “엄마, 순돌이 다리가 좀 이상하지 않아? 슬개골 탈구인 것 같아!”라는 질문을 해댔다. 오죽했으면, 어느 순간 엄마는 “적당히 좀 해라”라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동물행동학’ 수업을 들은 뒤에는 순돌이의 행동 하나, 눈빛 하나에 온갖 감정을 이입하며 우리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곤 했다. ‘분리불안인가? 사회성 부족인가? 우울증인가?’ 1년 내내 생각했다. 수업이 끝나면 교수님이 좋다고 추천해주시는 건 다 해보겠다고 동기들과 대형마트에서 쇼핑하기도 했다. 새로운 물건이 손에 들려있는 날에 엄마는 웃음 섞인 작은 한숨을 내쉬기도 하셨다. 본과에 들어와서는 ‘해부학’을 배우기 시작했고, 강아지의 뼈 구조가 어떻게 돼있는지 자세히 외워야 했다. 역시 집에 돌아와서 나는 순돌이 발을 주물럭대며 ‘상완뼈, 견갑골, 척추 1번, 2번…’을 더듬거렸다. 조금은 귀찮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던 순돌이는 어느새 몸을 내주고 나의 쓰다듬을 나름대로 즐기기도 했다. 4년이란 시간 동안 처음 배우는 지식을 어떻게든 적용해보고 싶어 순돌이를 더 많이 관찰하고, 더 많이 만져보곤 했다. 그러나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다. “졸업할 때까지도 너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병아리일 뿐이야.” 어떤 선배님께서 해주신 말씀이었다. 처음에는 6년씩이나 학교에 다니는데 그럴 리가 있나 라는 생각에 크게 믿지 않은 말이었다. 하지만 6년 동안 공부하는 양만으로 수의학의 모든 내용을 파악하기에 그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동물병원을 운영하시는 원장님들도 매일 밤 병원 셔터를 내린 후에 다같이 모여 스터디를 한단다. 그 열정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정말 그래야만 실수 없이 진료하는 수의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공부에는 끝이 없고, 수의사가 되기 위한 길도 험난해 보인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아가다 보면, 순돌이를 만지고 괴롭히면서 기억했던 그 내용이 좋은 거름이 돼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갈 길이 한참 멀지만, 좋은 수의사를 넘어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순돌이를 반갑게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