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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성 변호사의 이러시면 안됩니다 - 17] 변호사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서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권리의식’이 전반적으로 많이 높아져서인지, 성희롱·성폭력 사안의 징계 등 조치를 위한 조사가 개시되자마자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곧바로 변호사부터 선임해서 첫 조사 시점부터 함께 들어오겠다고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아무리 진짜 나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지은 잘못만큼의 적정한 책임을 지려면 본인 소명 기회를 포함한 방어권의 충분한 보장은 필수적이니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것 자체를 탓할 이유는 없겠다. 또, 이를 막을 근거도 없다. 누구든지 변호사의 도움을 손쉽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게다가 필자가 변론했던 사안 중에는 어느 사기업체에서 성희롱으로 판단되기 어려운 내용을 성희롱으로 함부로 단정 짓고는 징계를 하려고 했던 예도 있었다.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누구에게나 변호사의 법적 자문을 구할 수 있는 기회는 있어야 한다. 그렇기는 한데 필자도 변호사이기는 하지만, ‘솔까말’ 조사자로서 사건에 관여하고 있는 중인데 피혐의자가 변호사와 같이 들어오겠다고 통보해 오면, 저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십 년쯤 묵은 듯한 생래적인 짜증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많지는 않지만, 정말이지 아주 가끔씩은 피혐의자와 동석한 대리인이 변호사임을 마치 세상 만방에라도 과시하려는 것 같은 태도로 들어와서는 이것저것 꼬투리를 잡으면서 ‘법도 모르면서 뭘 안다고 함부로···’ 라는 식의 기고만장함이 뚝뚝 떨어지는 언사를 ‘주구장창’ 늘어놓는 때도 전혀 없지는 않아서 더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본디부터 절차적 정의를 보장한다는 것은 이런 자연스러운 거부감을 의식적으로 억누르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희롱 사안의 경우에는 대부분 기관 내의 자체적인 조사와 심의를 거쳐 징계 등 조치를 내리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법률전문가도 아니고 사건 조사 경험이 많지도 않은 일반 직원 고충상담원들이 기관 내 조사수행을 전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변호사나 그 밖의 전문가 등 조사수행 경험이 있는 사람이 기관 내 조사절차에도 반드시 함께 참여하도록 의무화된다면 훨씬 바람직하겠지만 아직까지는 제도와 여건 모두 미흡한 점이 크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피혐의자의 변호사가 입회해서 무어라 무어라 라고 몇 마디씩 던지면서 강하게 주장하고 들어오면 그 공격에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는 경우가 꽤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쫄 필요는 없다. 이럴 때 일수록 당황하지 말고 몇 가지만 잘 기억하자. 기관이 조사권을 발동하는 것은 양성평등기본법 또는 남녀고용평등법 등의 법령과 그에 따라 마련된 기관 내 제반 규정에 명확한 근거를 갖는 적법·정당한 권한의 행사다. 때때로 변호사 또는 피혐의자 본인이 무리한 요구를 해 올 때조차도 이게 과도한 요구인지 아닌지 감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는, 이걸 다 받아들여 주어야 하는지 어떤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들을 본다. 명심하시라. 기관의 조사자는 조사를 진행함에 있어서 피혐의자와 단순히 협의나 논의 또는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만큼 요청이나 요구가 있다고 이를 무조건 다 받아들여 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세세한 부분에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수도 있다. 당연하다. 알파고도 아니고 심지어 경험도 많지 않은데, 어찌 그 자리에서 제깍제깍 자동판매기처럼 답을 찾아낼 수 있겠는가. 잘 모르겠으면 또 다른 변호사 등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여 차분하게 결정하면 된다. 경험 있는 외부 전문가로부터 자문을 구하는 것에 주저할 이유 또한 없다. 당장에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피혐의자 측의 요구에 그대로 따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 피혐의자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출석을 요구했더니 변호사와 함께 와서는, 정작 본인은 가만히 앉아만 있고 변호사 혼자 다 떠들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두고만 보지 마시라. 이럴 때라면 적극적으로 제지시키시라. 동석한 대리인, 즉 변호사에게는 출석진술 첫 단계 및 출석진술 마지막 단계에서 조사자의 세부적인 질의사항에 대한 개별적 의견과 함께 전반적·종합적인 의견을 충분히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된다. 물론, 조사 도중이라도 피혐의자가 원하는 때라면 답변을 하기 전에 변호사와 상의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대리인에게도 원하는 만큼의 의견개진 기회는 마땅히 부여되어야 하겠지만, 이처럼 의견진술을 허용한다는 것 그리고 본인 진술 도중에 잠깐씩 조언을 해 줄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것이, 변호사가 말을 먼저 끊고 들어와서 피혐의자 본인진술을 사실상 완전히 대신하는 것까지 다 그대로 놔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조사 도중에 변호사가 툭툭 치고 들어오면서 조사자의 말을 가로막고서는 피혐의자 본인을 대신해서 적극적인 주장을 펼치는 모습을 많이 보셨을지 모르겠다. 걱정 마시라. 이건 오로지 영화나 드라마일 뿐이다. 제일 중요한 것. 위에서 이미 말했다. 피혐의자라 하더라도 충분한 소명과 방어의 기회를 반드시 부여받아야 한다는 것. 명문 규정이 기관 내에 마련되어 있든 있지 않든 진술거부권도 조사 시작 단계에서 고지하고, 원한다면 이를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시라. 피혐의자도 조사에 나름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조사개시 통보와 실제 면담조사 사이에 적정한 시간을 주어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원하는 방법으로 원하는 만큼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가 피혐의자 본인과 변호사에게 충분히 주어졌다면 그 다음에는 변호사가 아무리 무어라 무어라 주장하든 나중에 절차적으로 문제될 것은 거의 없다. 이러한 기본 원칙만 처음부터 끝까지 잘 준수한다면 변호사가 오든 변호사 할아버지가 오든 겁낼 것은 없다. 오해는 마시라. 이 글 때문에 마치 세상에 ‘악덕 변호사들’만 득시글득시글한 것 같은 잘못된 인상을 가지게 되실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세상에는 정말 좋은 변호사들이 많이 계신다. 선하고 예의 바르며 기품 있는 변호사들이 절대 다수라고 믿는다. 또한 오해 마시길. 피혐의자에게 충분한 방어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실체적 진실 발견을 포기하자는 뜻이 될 수는 없다. 여러 진술들과 증거들을 종합해 나가는 속에서 허점과 모순을 발견해 내는 것은 조사자의 역할이자 의무이다. 주의하자. 아주 가끔씩은 상대방이 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점을 악용해서 이것저것 무리한 주장과 요구를 늘어놓는 변호사도 세상에 없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잘못이 정말 있었다면 과잉하지 않은 선에서 그 잘못한 만큼의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일 뿐, 잘못이 실제로 있었음에도 요리조리 꼼수를 쓰면서 마치 없었던 일인 양 마법을 부리려 하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일 수는 없다. 우리 법의 배심재판제도(국민참여재판)에서도 볼 수 있듯, 사실 여부의 인정 문제는 법률전문가만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다. 법률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상식과 합리성에 입각하여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인다면 무엇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는지를 따져볼 수 있다. 편견을 배제하고 최선의 주의를 성심성의껏 기울인다면 말이다. 그러니 조사자님, 절대 미리부터 쫄지 마시길! 당신은 법령과 관계 규정이 부여한 적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힘을 내요, 슈퍼파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