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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이든 사회주의 사회이든 높은 생산력을 신봉하는 산업문명사회에서 환경오염·파괴는 어느 체제가 더 심각한가 견줄 수 없을 만큼 보편적이고 치명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 양상이 위험과 파국의 수준에 이르는 것을 막고 다시 확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환경오염·파괴가 어떤 이유로 어떤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는가를 진실되게 규명하고 폭로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얼마나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얼마나 행사하고 있는가이다. 다시 말하자면 환경파괴·오염이 다시 되풀이되거나 확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민들이 감시·체크하고 저항할 힘을 그 사회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미국이나 유럽 등과 같이 활발한 환경·생태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선진자본주의 사회는, 시민에 의한 감시와 저항이 부단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건이나 발칸호 대오염과 같은 파국에 이르기까지 시민들로부터 어떤 감시나 저항도 받지 않도록 정보접근권을 봉쇄했던 구소련과 동구사회주의 국가보다는 나은 상황이었다는 데 쉽게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환경선진국 사회로부터 한번 고개를 돌려 유나이트카바이트 화학공장 폭발사건으로 신음하는 인도의 민중들을, 다국적 기업들의 이윤을 위한 단일품목(커피, 면화 등) 경작 때문에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땅을 망치고 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아프리카 난민들을, 그리고 평화의 군 미국의 군대들이 폭격과 살상 연습을 한 그 자리에 터잡고 살면서 화학오염이 가져다준 온갖 병에 신음하는 베트남과 필리핀 민중들의 고통스런 얼굴들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나서 한번 심호흡을 하고, 내가 서있는 이 콘크리트땅 밑에 파묻힌 주한미군의 송유관에서 뿜어져나온 시커먼 기름들이 우리의 강과 땅 속으로 몰래몰래 스며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바라다본다.

과연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선진환경정책과, 환경으로 인한 수익과 부담은 공평해야 한다는 선진자본주의의 환경정의 원리가 제3세계와 해외 군사 주둔지에서도 여전히 그대로 작동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답은 역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가난한 나라들과 군사적으로 주둔이 용인된 나라들은 그 환경오염 금지와 환경정화·복구의 부담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최적의 탈출구이다.

원자력발전소를 더 이상 짓지 않는 선진국들은 동남아시아나 중국으로 발전소를 수출하려 하고, 화학공장 같은 공해시설들도 노동력 싸고 반대운동마저 없는 가난한 나라들로 이전한다. 그리고 그 ‘부담 전가’는 군사적 부문에서 절정을 이룬다.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했을 때 클라크 공군기지가 철수한 자리에 이주했던 난민들은 지금도 그 기지가 남기고 간 오염물질로 인한 백혈병, 피부염, 암 등으로 죽어가고 있고, 미군 폭격 장소였던 푸에르토리코 비에케스섬과 하와이 카홀라비섬의 주민들도 수은, 비소, 납 중독 등 온갖 화학유독물질로 인한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지난번 한강에 포름알데히드를 방출했던 사건이나 이번에 원주 섬강 상수원보호구역에 기름을 유출한 사건 등 전국각지에서 주한미군이 저지른 환경오염·파괴 범죄가 조금씩 폭로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는, 단지 그들이 우리가 모르게 이 땅을 오염시켜 왔다는 사실 자체에만 있지는 않다. 더욱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주한미군 측이 온화한 미소를 짓는 ‘여성’ 대변인을 내세워 ‘그런 사실이 없다’고 말하면 그저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만다는 사실이다. 주둔군 지위협정(SOFA)으로는 미군에게 우리나라 환경법과 동등한 적용을 요구하지도 못할뿐더러 환경오염·파괴가 어떻게, 어떤 양상으로 얼마만큼 심각하게 저질러지고 있는지 제대로 조사조차 할 수 없고 정보를 공개하도록 요구할 수도 없다.

평화와 인권 보장이 주한미군의 주둔 이유라면, 한국민중의 생명과 관련되어 있는 환경오염·파괴 상황이 공개되어야 하고, 그에 대한 자국에서의 원칙이 공평하고 정의롭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도 주한미군의 환경파괴를 쉬지 않고 감시·체크하며, 그 전횡에 단호하게 저항한다는 것을 똑똑히 알게 해야 한다.

이윤숙/ rachamim@dreamwiz.com

에코페미니즘 세미나팀 ‘꿈지모’(꿈을 꾸는 지렁이들의 모임) 여성환경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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