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암환자는 ‘셀프 간병’, 남성 암환자는 ‘배우자 간병’

암에 걸린 여성 10명 중 7명 “내손으로 살림살이”

남자는 암에 걸려도 고작 7.7%뿐만 “집안일해”

 

여자가 아프면 직장‧가정서 동시에 ‘토사구팽’

“아내 아파서 제 역할 못해” 헌신짝처럼 버리는 못된 남편들도

 

종합병원 내부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종합병원 내부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외부강연을 마치고 나면 가끔 사인을 해달라는 분들이 있다. 좋아하는 기생충인 편충을 그리고 거기다 내 이름과 날짜를 쓴다. 그렇게만 하면 좀 심심하니, 원하는 바를 물어서 “이러이러한 소원 꼭 이루세요”라는 글을 추가해 준다.

소원도 남녀 차이 있더라

그런데 이 소원에 남녀 차이가 있다. 중년남성의 경우 자신이 직장에서 잘 되기를 비는데, 여성은 한결같이 자녀의 건강이나 집안의 행복 같은, 개인적이지 않은 소원을 말한다. 이게 안타까운 이유는 두 가지다. 여성들이 평소 가정을 위해 개인의 즐거움을 희생시키다보니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잊어버린다는 게 첫 번째고,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면 가족이 여성의 희생을 당연시 여긴다는 게 두 번째다. 오늘은 이 두 번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문제. 늘 희생만 하던 어머니가 아프면 누가 간병을 할까?

본인이 하는 셀프 간병이 1순위다. 간병인을 쓰는 게 자식들이 더 편하겠지만, 많은 어머니들이 돈이 아깝다며 간병인을 마다한다. 다행히(?) 며느리가 있다면 며느리가 하는 경우도 만만치 않을 거다. 장인을 간병하는 사위는 본 적이 없지만, 시어머니를 간병하는 며느리는 수없이 보지 않았던가.

그럼 며느리가 없는 집은 어떻게 할까. 아들이 잠시 왔다갈 수는 있지만, 주로 일하는 건 딸의 몫이리라. 죄다 여성이라는 게 불편한 남자분들은 이렇게 항변할 법하다. “어머니니까 그러는 것 아니냐?” 어머니도 여성이니 화장실에 모시고 가고 옷도 갈아입혀드리려면 같은 여자가 하는 게 나을 것이다.

아픈 주체를 ‘아버지’로 바꾸면 어떨까. 답은 좀 달라져서 1순위는 당연히 아내가 된다. 직장 때문에, 혹은 애를 돌보느라 남편을 혼자 병원에 방치한다면 아내를 보는 눈은 그리 곱지 않을 것 같다. 다행히(?) 며느리가 있다면 며느리에게 맡길 수 있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딸이 간병한다. 그분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보자.

“저 지금 시어머니 모시고 응급실 왔는데…. 밤 12시에 끝난다고 남편은 퇴근해서 피곤하다고 자네요.”

“시아버지 수술하실 때 며느리인 저만 있었는데요. 의사가 수술 시작 전에 수술 방법을 바꿔야 한다며 아들 중 하나라도 빨리 오라고 했어요. 결정권이 없었어요. 저도 집에 가고 싶었어요.”(이상은 인터넷 커뮤니티 ‘82cook’에 실린 글)

물론 많은 남성들은 항변할 것이다. 남성 대부분은 직장에 나가지 않느냐고. 하지만 여성들은 직장이 있어도 퇴근 후 병원을 지킨다는 점에서 남성들이 간병을 잘 안하려드는 건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내가 생각하는 답은 ‘귀찮아서’다. 멀쩡한 사람 수발을 드는 것도 싫어하는 남성들이 아픈 사람의 수발을 드는 걸 좋아할 리가 없으니까. 여기에 예외가 없는 건 아니다. 나랑 친한 친구는 부인이 난소암으로 입원해 있는 동안 퇴근 후 시간을 모두 병원에서 보냈다. 조정래 작가님도 서울대병원에서 부인을 손수 간병해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일 뿐, 대부분의 남편들은 이러지 않는다. 모 언론사가 2013년 12월 국립암센터와 삼성병원을 비롯해 병원 네 곳의 암환자 251명을 면접조사했다. 상태가 훨씬 위중한 암환자이니만큼 결과가 다를 것으로 생각하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성 암환자는 본인이 셀프간병하는 경우가 36.9%로 가장 많았다. 반면 남성 암환자는 배우자가 간병하는 경우가 무려 96.7%에 달했다.

“우리 아들 밥은 어떻게 하냐?”

이어지는 통계도 충격적이긴 마찬가지다. 여성은 암에 걸렸다고 해도 집안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여성의 경우 암환자인 본인이 살림살이를 하는 비율이 68.1%, 남자는 겨우 7.7%였다. 다시 말해서 여성은 스스로 자기 몸을 돌봐야 하며, 그 와중에 집안일까지 해야 한다!

게다가 일부 남성들은 돌봄노동을 수행해야 할 여성이 아파서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아내를 헌신짝처럼 버린다는 뜻이다. 통계에 따르면 암에 걸렸다고 이혼 혹은 별거를 당하는 여성은 남성보다 1.6배 많았는데, 연령과 소득, 학력 등의 조건을 같게 보정해 분석한 결과 “여성 암환자의 별거 또는 이혼율이 남성 암환자의 3.94배인 것으로 나타났다.”(YTN 2014년 4월 14일 보도)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여성들, 좀 서글프지 않은가?

이게 더 슬픈 이유는 여성의 경우 몸이 좋지 않으면 직장에서 잘릴 확률이 남성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자궁경부암 환자 홍모(44)씨는 지난해 4~8월 항암·방사선 치료를 받느라 비정규직 일자리(홈쇼핑 상담)를 그만뒀다. 한 달짜리 병가도 휴직도 회사에서 허용하지 않았다.”(중앙일보 2014년 4월 14일 보도) 통계에 따르면 원래 직장이 있던 여성이 암에 걸려 치료를 받는 경우 45.1%가 일자리를 잃었다. 평소 가족을 위해 헌신하다 몸이 아프면 남편과 직장에게 버림받는 여성이라니, 토사구팽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시어머니들의 평소 태도도 문제다. 너무 아들을 오냐오냐 키우니까 나중에 아들이 돌봄은 으레 남의 몫이라 생각하지 않는가. 내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10년간 병원에 입원 중이었는데, 내가 갈 때마다 힘든데 그냥 밥만 먹고 가라고 하면서 혼자 그 힘든 일을 다 하셨다.

내가 아프면 중한 병이 아니어도 땅이 꺼져라 걱정하셨지만, 내 아내가 아프면 아내를 걱정하는 대신 “우리 아들 밥은 어떻게 하냐?”를 더 걱정하셨다. 비단 내 어머니뿐 아니라 많은 시어머니가 이런 마음을 갖고 계시는데, 며느리한테 “시부모도 부모다”라며 간병을 요구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장차 병원 서비스가 나아져 보호자가 필요 없는 세상이 열려야겠지만, 아들이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도록 어려서부터 혹독한 교육을 시키는 게 더 시급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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