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세 박사의 시니어 스토리 - 1

우리는 부모님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당연하지만 잊고 있었던 사실, 어머니도 여자고 아버지도 남자였다

 

사람들은 부모님을 독립된 ‘인격체’로 인지하기보다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로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다. 부모님마다 개인적인 특징과 생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경험했던 ‘아버지’ 와 ‘어머니’라는 틀 안에서만 보려고 한다. 이렇게 ‘부모님’ 이라는 틀 안에 가두다 보니 부모님이 고이 간직하고 있는 속마음을 알 도리가 없다.

얼마 전 필자는 부모님이 가장 필요로 하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다음과 같은 연구조사를 한 적이 있다. 40대 주부 16명에게 30개의 질문지를 주고 따로 떨어져 사는 친정 부모님을 방문하여 하룻밤을 묵으면서 30개 질문에 상세히 답을 적도록 하였다. 물론 30개의 질문에는 ‘매번 혼자서 식사는 어떻게 하시는지?, ‘엄마의 어렸을 적 꿈과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등 다소 사적인 질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주일 뒤 16명의 주부가 다시 모여서 그 답변을 가지고 서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상당수의 사람이 그동안 부모님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몇몇 참가자는 40이 넘어서도 친정엄마 속마음도 모르고 무심했다는 자책감에 울먹이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는 부모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 가장 커다란 이유 중의 하나는 앞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부모님을 남성과 여성의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중성인 ‘부모’의 틀 안에 가두어서 바라보는데 있다. 

부모님이라고 해도 어머니는 생물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여자다. 여자는 언제나 예쁘게 보이고 싶고, 보호받고 싶어하며, 질투심이 강하고, 논리적이기 보다 감성적이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져도 어머니도 여자이다. 잔주름 얼굴 뒤로 발그레한 소녀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를 단순히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로서가 아닌 한 명의 ‘여자’로 바라보게 되면 이제까지 의아스러웠던 많은 일이 설명된다. 

아들의 사랑을 놓고 며느리를 질투하면서 일어나는 고부갈등이나, 은퇴 후 경제력이 약해진 아버지를 은근히 구박하는 것, 노인들을 대상으로 물건을 파는 소위 떠돌이 ‘홍보관’에 관심을 두는 것 등은 모두 이런 ‘여성성’에 기인한다. 어머니는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예쁜 옷에 관심이 많고, 화장품을 고르고, 누군가로부터 젊고 예뻐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밝게 웃는 여자이다.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이러한 여성성을 자극할 수 있는 칭찬 한마디가 필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요즘 얼굴이 더 밝아지고 예뻐지셨다’ ‘입고 있는 옷이 잘 어울리신다’ 같은 말만으로도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다. 아들이라면 어머니가 가끔 이해 못할 투정을 부리시면 질투심 많고 변덕도 좀 있는 여자친구를 대하듯 배려해 보자. 어머니도 한때 아버지의 여자친구였으며, 우리를 양육하기 위해 잠시 그 여성성을 모성애에 양보했을 뿐이다. 다시 여성성을 되찾은 어머니와 함께 가끔은 영화도 보고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커피도 마셔보자. 금방 기분이 좋아지신 어머니는 이런저런 속마음을 아들에게 모두 털어놓을 것이다. 

어머니가 여자인 것처럼 아버지도 남자다. 은퇴하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남성성을 과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전히 남자임을 나타내고 싶어 한다.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경쟁적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정치에 필요이상으로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야스쿠니 신사참배’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항일투사가 되며, 요즘 젊은 세대의 세태에 대해서는 완고한 유학자가 되기도 한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이러한 남성성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싶어한다. 성인자녀들이 사회에서 나름대로 전문직에 있어도 그 분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조언이나 비판을 하기도 하고, 정치문제 같은 것에는 마치 십대에게 훈계하듯이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 ‘ 아! 또 매일 하시는 말도 안 되는 잔소리’ 라고 귀띔으로 듣기보다 ‘아버지가 얼마나 남성성을 과시하고 싶으면 저러실까’ 하고 진지하게 듣고 긍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남자임을 인정받았다는 만족감에 기분이 좋아지실 수 있다. 더구나 한집에 모시고 살고 있지 않다면 매일 듣는 잔소리도 아닌데 가끔 아버지를 뵐 때 그 어떤 하찮아 보이는 이야기를 하시더라도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아버님 말씀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라고 치켜세운다면 아버지는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느끼고 행복하실 수 있다. 

부모님도 결혼 전 두 분이 여자친구, 남자친구 사이로 여자와 남자였듯이 자녀들을 다 키웠다고 해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자녀들이 부모님을 여성성과 남성성을 모성애와 부성애의 그늘 밑에서 보지 못하고 있었다. 부모님을 하나의 독립된 ‘개인’으로 보는순간 지구에 사는 자녀가 화성에서 온 부모님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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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세 박사의 시니어 스토리는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이한세 박사는... 

1994년 서부호주국립대 생명공학과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1995년 주한호주대사관 상무관을 역임했다. 그 후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호주의 사회와 문화’를 가르쳤으며, 2002년 글로벌 리서치 기관인 스파이어 리서치 & 컨설팅사의 한국지사를 설립해 현재까지 대표를 맡고 있다. 15년간 리서치회사 대표를 역임하면서 노인복지관련 연구를 통해 전문성을 입증 받고 다수의 리서치 보고서를 작성했다. 2014년에는 전국의 실버타운 전수조사를 통해 ‘실버타운 간 시어머니 양로원 간 친정엄마’ 책자를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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