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주의 계열 작가인 점이

빌미가 돼 인신공격 당하며

문단 남성 작가들에게 매장 당해

 

올해가 김명순 탄생 121돌

“‘근대적 주체는 남성’이라는

도식에 균열” 문학 재평가를

 

누구나 김명순의 불행한 삶을 알고 나선 그의 문학보다 불행한 삶에 사로잡힌다. 온갖 폭력에 노출돼 층층으로 쌓인 김명순의 피해는 다 적기 힘에 겨울 정도다. 그렇다 보니 김명순의 문학은 그의 피해자로서의 삶을 들여다보는 자료에 그쳐 온 감이 있다.

김명순의 기준작 ‘선례’

김명순의 문학은 이러한 오해와 저주와 고통과 비탄을 넘어선 곳에 있음에도 문학과 불행한 삶을 동일시한 우를 범해 온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한국 근대 최초의 여성소설가 김명순의 문학은 어떤 것이 알려져 있는가. 가장 알려진 작품이 ‘의심의 소녀’일까? 아마도『생명의 과실』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을 게다.

그러나 『생명의 과실』은 작품 제목이 아니며 창작집 제목일 뿐이다. 김명순의 단편소설 ‘선례’ 전편을 발굴해 후편과 이어 맞춰 온전한 한편의 작품으로 만나자,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김명순의 문학이 살아날 수 있겠다는 기대였다. 마치 미술에서 화가의 기준작을 찾게 된 것과도 같은 안도였다. 기준작은 다른 작품의 진위를 가리는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김명순의 작품을 놓고 진위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라 이제 김명순의 다른 작품들도 이 ‘선례’를 기준으로 작가의식이나 문체 등을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는 말이다.

김명순의 소설은 표절 의심의 처녀작에, 미완의 작품이 연달은 형국이어서 초기의 작품을 논하는 일이 글자 그대로 난감한 형편이었다. 초기작이 그렇다 보니 후기의 작품 역시 ‘마음 놓고’ 평가하기가 애매했다.

김명순은 1917년 11월 『청춘』특별대현상 소설부문에서 ‘의심의 소녀’가 3등으로 입상, 소설가로 등단했다. 춘원이 자기 작품과 나란히 놓고 고평한 작품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발표도 소설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소설을 쓰는 틈틈이 수필도 시도 쓰기 시작했다. 희곡도 썼다. 번역시와 번역소설도 발표했다. 불과 4∼5년 사이였다. 그러나 김명순은 ‘선례’ 전편이 발굴돼 후편과 합쳐 온전한 작품으로 다시 나타나기까지 초기소설 다섯 편 중 미완의 소설이 세편이나 됐다. 김명순 문학에 접근하는데 이는 큰 장애가 아닐 수 없었다. ‘의심의 소녀’(1917년 11월), ‘조모의 묘전에’(1920년 3월), ‘영희의 일생’(1929‧미완), ‘칠면조’(1921년 12~1922년 1월‧미완) ‘선례’(1923년 미정고)…. ‘선례’가 후편이라는 부기가 없이 실려 있다 보니 그 짧은 길이며 오리무중인 내용까지 미완의 소설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우리는 김명순의 작품으로 ‘선례’를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선례’가 있으므로 미완의 소설도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발표한 ‘꿈 묻는 날 밤’(1925년 5월)이나 ‘손님’(1926년 4월)도 믿음을 가지고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단편 ‘선례’는 김명순의 자의식의 그늘이 없이 밝고 깊고 완결성을 지닌 소설이다.

 

도서출판 솔뫼가 낸 『김탄실 나는 사랑한다』 화보에 실린 김명순의 사진. ⓒ도서출판 솔뫼
도서출판 솔뫼가 낸 『김탄실 나는 사랑한다』 화보에 실린 김명순의 사진. ⓒ도서출판 솔뫼

스캔들에 가려진 문학

‘선례’의 전편을 발굴해 보고한 ‘김명순 탄생 기념 라운드세미나’는 작가 박화성의 고향에서 열리는 문학페스티벌 기획의 하나로 열렸다. 2016년 나혜석, 김명순, 김일엽 세 작가가 함께 탄생 120년을 맞았는데 김명순만 기념행사가 열리지 못한다는 소식에 특별초대로 마련한 것이다. 시, 소설, 희곡 세 분야로 나눠 발표하고 세 사람의 토론자가 세 분야 발표에 모두 질의를 했다. 분위기가 뜨거웠다.

특히 새 소설 발굴에 관심이 모아진 것은 김명순의 소설 중 가장 현대소설 구조와 문체를 지녔고 길이와 주제 역시 등단때의 소설보다 뚜렷한 발전을 보였으며 완결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또 이 소설과 관련해 김기진 등의 김명순 죽이기가 의도적인 것이며 문예의 방향을 바로잡는 기획에 여성작가가 희생이 되었다는 점에 놀랐던 때문이기도 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김명순의 ‘의심의 소녀’를 심사해 3등에 당선시킨 춘원 이광수는 김명순의 소설이 “교훈적이라는 구투를 완전히 탈각한 소설로는 외람하나마 내 『무정』과 진순성군의 ‘부르지짐’과 그 다음에는 이 ‘의심의 소녀’ 뿐인가 합니다”라고 문예의 방향을 분명히 했고, 김명순은 이후 그의 문학을 춘원의 지침에 어그러짐이 없이(?) 예술성을 지향해 온 셈인데 유미주의 계열의 작가라는 것이 빌미가 돼 인신공격을 당하며 매장당한 것이다.

바로 김기진의 ‘김명순씨에 대한 공개장’ 사건의 진실이자 ‘김명순 죽이기’의 실상이다. 춘원 등의 예술지상주의에 대한 비판과 멸절 주장은 톨스토이의 예술론에서 촉발된 것이자 일본 문단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 흐름을 김명순도 알아채 김기진의 공개장 기획으로 매장당하게 된 대항으로 낸 창작집 『생명의 과실』에도 이 작품 ‘선례’가 실리지 않아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의심의 소녀’의 아름다움

김명순의 ‘의심의 소녀’는 ‘조모의 묘전에’와 구성이나 문체, 주제가 비슷하다. 만일 ‘의심의 소녀’가 표절이라면 ‘조모의 묘전에’는 ‘의심의 소녀’와 상당히 달라야 옳을 것이다. 두 작품이 비슷한 문장과 구성, 주제로 전개됐다면 이는 ‘의심의 소녀’ 표절설을 불식시키는 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의심의 소녀’가 비록 23장 정도의 짧은 길이의 단편이지만 압축된 문장 속에 탁월한 문학적 완결성을 지녔으므로 널리 읽힐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최근 시나 소설의 길이가 짧아지는 흐름에도 부합된다. 김윤식 교수는 이 ‘의심의 소녀’를 두고 “차라리 김동인이 지적한 노인과 범네가 빚는 신비적 분위기를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소녀적인 꿈의 청신함은 우리 소설에는 일찍이 없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평양 대동강 동안을 2리쯤 들어가면 새마을이라는 동리가 있다. 그 동리는 그리 적지는 않다. 그리고 동리의 인물이든지 가옥이 결코 비루치도 않으며 업은 대개 농사다. 이 동리에는 「범네」라 하는 꽃인가 의심할만하게 몹시 어여쁘고 범이라는 그 이름과는 정반대로 지극히 온순한 8,9세의 소녀가 있다. 그 소녀가 이 동리로 온 것은 두어 해 전이니 황진사라는 60여세 되는 점잖은 백발 옹과 어디로서인지 표연히 이사하여 와 거한다. 그 후 몇 달을 지나서 범네의 집에는 30세가량 된 여인이 왔으나 역시 타향 인이었다. 업은 없으나 생활은 흡족한 듯이 보이며 내객이라고는 일 년에 일차도 없고 동리사람들과 사귀지도 않는다. 그런고로 이 동리에는 이 범네의 집 일이 한 의심거리가 되어 하절 장마 때와 동절 긴 밤에 담배 재떨이 사이의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도입부 한 단락 안에 배경, 인물 분위기가 요약돼 잘 그려 있다. 한 글자도 더 들어갈 틈이 없을 긴장이 소설 마지막 문장까지 팽팽하게, 그러나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추리소설기법이라 할 범네와 백발옹의 사연이 밝혀지는 이야기는 이 짧은 길이 속에 신비를 유지하며 전개된다. 평양 교외며 대동강의 경치와 추석의 성묘 광경 등의 실감나는 묘사와 범네의 아름다움을 그린 풋남 순인치마에 담황색 겹저고리, 분홍신, 백설 같은 담요를 두르고 오슬오슬 떠는 모양 등 100년 전의 소설공간은 아름답고 신비하다. 더구나 이 소설의 문장은 구어투를 거의 완전히 벗어난 현대문이다. 김동인보다 앞섰다. 김명순 문학의 재평가가 시급하다.

 

김명순의 두 번째 창작집 『애인의 선물』 표지.
2002년 말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창작집으로, 회동서관에서 나왔으나 뒷부분이 훼손돼 발행 시기를 알 수 없다.
김명순의 두 번째 창작집 『애인의 선물』 표지. 2002년 말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창작집으로, 회동서관에서 나왔으나 뒷부분이 훼손돼 발행 시기를 알 수 없다.

김명순 문학의 재평가 시급

김명순의 소설에서 유미주의 요소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제2작 소설 ‘조묘의 묘전에’(1920년 3월) 주인공 춘채는 반도의 유일인인 묵화가 운계여사의 손녀이며 시도 쓰는 등 예술적 감성이 풍부한 처녀다. 이 소설에 나오는 춘채가 깊이 병들어 지은 시는 한시투이기는 하나 중독성이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전통적 형식과 근대적 감수성의 만남이다. 김명순의 시에는 명편이 많다. 이 시가 1920년의 시임을 감안하며 읽어보자.

 

보리이삭의 봄바람이여 내 가슴에까지 불어

갔던 봄철 돌아옴을 마음껏 느끼게 하도다

지난 봄철과 같이 영원에 돌아간

나의 자랑 나의 행복 모든 과거의 환영들이

연못가의 청자색 이끼로 몽롱히 나타나도다

오오 나의 유시(幼時)는 꽃이면 저 심홍의 우미인초였지

보리이삭의 봄바람이여 불어 불어 와서

연잎의 백로를 진주같이 영원한 허무의 세상에

괴로움 애달픔 다 같이 고요히 구을려라

 

 

다음 작 ‘영희의 일생’ 주인공 영희도 밤을 새워 글을 쓰는 여자이고, 그의 상대역은 수도원부속고등과 도화선생 최의형이라는 청년화가다. ‘선례’에서 화가를 지망하는 소설 속 화자인 ‘나’는 음률과 곡조를 이미지로 나타내고자 고심하는 예술가다. 소설에서 작가는 주인공의 발화를 통해 당시 일본의 문예 동향을 요약해놓는다.

 

“…지금까지 자연주의라든지 진실주의라든지 사실주의에 염증을 깨닫던 사람들은 걸어가려하던 신낭만주의의 중도에서 온몸의 윗동아리를 돌리고 미처 발을 내딛지 못해서 큰 혼돈 가운데 몸을 빠쳐 애쓸 때였습니다. 또 인상파에서 후기인상파로 미래파로 표현파로 가다가 길을 만나지 못하고 밀려졌다 헤쳐졌다 할 때이었습니다.”

 

김명순의 첫 번째 창작집 『생명의 과실』 표지.
김명순의 첫 번째 창작집 『생명의 과실』 표지.

일본의 대정 데모크라시에 화려하게 꽃피었던 예술 사조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며 자신이 나아갈 예술의 길을 모색하던 김명순의 모습이 드러난 대목이다. 이처럼 김명순의 소설에서 예술지상주의를 지향해 온 증거는 시뿐만 아니라 소설에도 이처럼 많다. 그런 김명순을 김기진은 임노월의 맹목적 추종자로 매도하고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도록 모욕했다. 이 기획에 춘원과 방정환 등의 당시 도덕주의 문학권력이 함께 했다는 사실은 김명순 문학을 대할 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대목이다. 김명순의 문학을 피해자의 문학으로서만이 아니라 근대초의 소중한 대항문학으로 되살려야 할 필요가 그래서 절실하다.

전영택은 ‘내가 아는 김명순’에서 “김명순은 변변한 작품 한 편을 남기지 못하고 마지막에 정신을 잃어버리고 구걸을 해서 연명하다가” 간 불행한 시인이라 했다. 변변한 작품 한 편을 남기지 못했다고 했지만 전영택만이 아니라 김동인이나 『흘러간 여인상』을 쓴 이명온도 김명순의 작품을 읽기나 했을까?

일제 말부터 육이오 전쟁기의 혼란 속에서 지난 작품을 찾아 읽는다는 것은 기대난일 것이다. 아니다. 찾아져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문학은 그런 대접을 받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문학사에서 언급이 되지 않은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광복 이후 수없이 나온 문학전집에 좋은 시를 110여 편 쓴 김명순의 이름은 찾을 수 없고 『한국여류문학전집』에서도 빠진 것은 아쉬운 일이다. 김명순의 스캔들이 문학을 가린 탓일 것이다.

이제 김명순의 문학에, 그의 작품에 관심을 모으고자 하는 이유다. 김명순의 작품으로 재수록돼 남은 것은 단편 ‘손님’과 ‘꿈 묻는 날 밤’ 두 편이다. ‘선례’가 있고 나서 ‘손님’이 제대로 읽힌다. 미완이지만 ‘칠면조’도, ‘꿈 묻는 날 밤’도 마찬가지다. ‘선례’가 있고 나서 우리는 김명순의 작품을 평가하고 즐길 수 있게 됐다. 김명순의 재능과 열정에 공감하고 그의 세계에 들어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피해자 김명순이 아니라 시인이자 작가인 김명순을 만나보자. 세미나에서 송명희 교수는 김명순의 시는 피해자의 시가 아니라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문학으로 표출해 여성을 혐오하는 가부장제의 권력에 도전하는 여성주체를 반복해서 보여줬다고 했다. 유진월 교수는 김명순의 희곡은 한국근대희곡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으며 희곡 『의붓자식』이나 『두 애인』은 피아노를 치는 예술 공간과 2000권의 책이 있는 서재라는 새로운 여성 공간을 창조했고 현실의 제도 안에 존재하면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을 썼다고 했다.

한편 토론에서 김은하 교수는 김명순의 소설 속 선례는 단지 타고난 천재인 것만이 아니라 근대적 개인주의의 이상을 실현한 인물로 볼 수 있으며, 선례가 화가(근대적 주체)의 예술에 대한 욕망을 일으키는 ‘오브제’에 머물지 않고(일반적으로 여성은 창작자가 아니라 예술가의 오브제로 존재해 왔다) 비평적 안목을 갖춘 천재예술가로 등장한다는 점에 근대적 주체는 곧 남성이라는 도식에 균열을 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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