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세 박사의 시니어 스토리

 

가수 서유석 씨 ⓒ뉴시스·여성신문
가수 서유석 씨 ⓒ뉴시스·여성신문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는 가수 서유석씨가 2015년 작사 작곡한 노래다. 서유석씨는 1945년 생으로 올해 만72세가 되었다. 고희를 넘긴 서유석씨의 노랫말은 노년의 시니어들에게 많은 공감을 샀다. 유쾌하면서 자못 비장하기도 하다.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마누라가 말리고 자식들이 놀려대도 나는 할 거야. 컴퓨터도 배우고 인터넷도 할 거야. 서양말도 배우고 중국말도 배우고 아랍말도 배워서, 이 넓은 세상 구경 떠나나 볼 거야.”

서유석씨는 1983년에 김광정씨가 만든 ‘가는 세월’이라는 곡을 불러 당시 크게 유행했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로 시작하여 “이내 몸이 늙어가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 라는 후렴구로 마무리 하고 있다. “이내 몸이 늙어가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 라고 늙어감에 대해 서정적인 가사 말의 노래를 불렀을 때 서유석씨는 아직 젊음이 한창인 38세였다. 그 이후로 32년이 지나 “이내 몸이 늙어가도” 가 가정이 아닌 “이내 몸이 늙었다” 라고 현실적으로 이야기 할 수도 있는 70세가 돼 부른 것이다. 이 노래는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사실적이고 나이 듦에 대비해 향후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노인관련 사업과 정책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모두 은퇴 이전이기에 비노인(非老人)이다. 그러다 보니 늙음을 경험해 보지 않은 상황에서 “노인은 이러이러할 것이다”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기획을 수립하게 된다. 따라서 잘못하면 서유석씨가 젊었을 때 부른 “이내 몸이 늙어가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 노랫말에서 보여주듯 노인문제에 대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제시에 취약할 수 있다.

몇 년 전 실버로봇을 개발하는 업체로부터 컨설팅 의뢰가 왔다. 젊고 능력 있는 연구개발자들이 실버로봇이 노인들에게 필요할 것이라고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후 제품을 개발하여 출시하여 왔다. 그런데 출시하는 제품마다 여지없이 실패 했다고 하면서 그 원인을 분석해 달라는 것이다. 분석결과 개발자들이 경쟁력으로 여기는 자기위주의 똑똑함에 함정이 있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연구개발자라 하더라도 막상 노인이 되어 본 적이 없다 보니 정작 노인이 필요로 하는 단순한 점을 간과하고 기술적인 면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노인전용 콤팩트 리모컨을 개발했는데 크기가 작아서 집안 어디에 두었는지 찾기가 어렵다든지, 360도 어느 방향으로든 갈 수 있는 이동보조로봇을 만들었는데 막상 노인이 타려고 하니 안장 높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든지 하는 경우였다. 노인에게 리모컨은 기능보다 크기가 중요하며, 이동보조로봇이 첨단기능을 탑재하고 있어도 노인성 관절경직으로 탑승 자체를 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 된다. 

마찬가지로 현역에서 일하고 있어 아직 노인이 되어보지 않은 비노인(非老人)이 노인복지를 위한 세부정책, 프로그램개발, 맞춤형서비스 등을 수립하고자 할 때에는 많은 고민이 따라야 한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간접경험을 통해서라도 노인의 입장과 상황을 최대한도로 반영하지 않는다면 많은 정책들이 탁상공론이 될 수도 있다. 더욱이 요양원이나 재가복지서비스 같은 노인복지관련 사업을 일종의 돈 벌기 위한 비즈니스로만 여긴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 진다. 탁상공론을 넘어 운영하거나 실행중인 사업이 어려워져 노인들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노인관련 정책을 세우는 정부 부서나 노인복지 및 의료서비스에서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어려움이 “노인이 되어보지 않음”에 있을지도 모른다.  애석하게도 비노인(非老人)이 노인이 되어 보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노인문제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열린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간접경험이 가능할 것이다. 노인관련 전문가와 종사자는 무엇보다 노인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갖는 것이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신앙심 없이 신을 경험하기 어렵듯, 노인에 대한 가슴 깊은 애정 없이는 진정한 간접경험이 불가능할 것이다.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를 부르는 서유석씨가 머지않아 “너, 나, 그리고 우리 함께”라는 신곡을 발표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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