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주체인 여성 선택 우선시하는

정책 패러다임 전환 없이는

초저출산 현상 사라지지 않을 것

 

임신중단 합법화를 요구하는 여성들이 1월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가임거부 시위를 열고 행정자치부의 대한민국 출산지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임신중단 합법화를 요구하는 여성들이 1월 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가임거부 시위를 열고 행정자치부의 대한민국 출산지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016년 조혼인율(인구 1000명 당 혼인 건수)이 5.5를 기록해 197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혼인 건수도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결혼을 해야 아이를 낳는 규범이 확고한 한국사회에서 혼인 감소는 저출산으로 이어진다. 혼인 감소 이유로 만성적 고용·주거 불안이나 결혼 가치관의 변화 등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개발독재시대의 ‘모성 도구화’도 최근 혼인 감소의 주요인이다. 산아 제한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국가가 은밀하면서도 노골적으로 낙태를 용인하거나 주도했다는 의미의 모성 도구화다. 모성 도구화의 부메랑이 혼인 감소라는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평균 초혼 연령을 감안할 때 최근 결혼 세대는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났다. 그런데 1970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한 합계출산율은 1983년 2.06, 1984년에는 사상 처음 대체출산율 2.1 이하인 1.74를 기록했다. 그 후 1990년 1.57까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출생아 수도 1983년 76만9000명에서 1990년 65만명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1991년부터 출산율은 1.71로 반등했고 출생아 수도 70만9000명으로 올라갔다. 이런 점만 본다면 앞으로 몇 년간 혼인은 감소하다 1990년대생이 결혼하는 시기가 됐을 때 다시 증가할 수 있다. 본격적인 저출산 세대인 2000년대생이 결혼하는 시기에 혼인은 다시 감소할 것이다.

그렇다면 1983년 이후 1990년까지 출산율 하락(출산율 2.06→1.57, 출생아 수 76만9000명→65만명)은 왜 나타난 것일까? 여아 낙태를 중심으로 대규모 낙태가 주요인 중 하나다. 1976년부터 양수 검사를 통한 태아 성감별이 가능해졌다. 그러자 1980년 당시 보건사회부는 양수검사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엄포일 뿐이었다. 20~44세 유배우여성의 출생아 수 대비 낙태 건수 비율을 토대로 1978년, 1984년, 1987년 낙태아 수를 계산해 보면 각각 63만2000명, 52만4000명, 42만6000명 정도다. 최근 한 해 출생아 수를 능가하는 규모다.

당시 보건사회부의 낙태 단속은 왜 엄포에 그쳤을까? 1973년 모자보건법 제정을 통해 국가는 ‘낙태 허용 범위 확대를 통한 가족계획사업 활성화’를 시도했다. 가족계획사업 성공의 주요인 중 하나가 낙태였다. 1971년 합계출산율이 4.7일 때 합계 인공임신중절율(낙태율)은 1.7이었다. 가임여성 1인당 4.7명의 아이를 낳으면서 동시에 1.7명의 태아낙태를 했다는 의미다. 1985년과 1988년에는 합계출산율과 인공임신중절율이 각각 2.1과 1.6으로 동일하게 나왔다. 낙태가 없었다면 1980년대에도 여전히 합계출산율은 3명 이상이 됐을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하다. 1974년부터 국가는 이른바 ‘MR(월경조절술) 사업’을 통해 1989년까지 16년 동안 약 115만여 명의 태아낙태를 지원했다. 1980년대에만 연 평균 10만 건이 넘는 태아 낙태를 MR사업으로 지원했다.

인구증가 억제를 위해 은밀하면서도 노골적으로 낙태를 지원해 국가는 여성의 몸을 산아제한정책 대상으로 도구화했다. 이제는 아이 낳는 존재로 여성을 부각시키면서 또 다른 차원의 모성 도구화를 시도하고 있다. 2020년 합계출산율 1.5 달성 목표를 정하고 온갖 정책을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출산 주체인 여성의 선택을 우선시하는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으면 초저출산 현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은밀한 묵인도 강력한 단속도 하지 않는, 그러면서 동시에, 어떠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더라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정책 지원을 동반하는 ‘낙태 합법화’부터 패러다임 전환을 시작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모성도구화의 부메랑을 20~30년 뒤에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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