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의리’에 산다

만화에 ‘남자 만화’ ‘여자 만화’라는 장르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분명히 존재해서 말랑말랑한 순정만화는 여성이, 의리와 쟁취가 있는 액션물은 남성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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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취향에 따라 어느 순간부터 갈려온 것이리라. 석연찮은 점은 이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취향이 절대적인 편견을 형성해서 작가와 독자 모두를 상투적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 두 개의 성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시선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는 ‘만화같다’는 지적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 역대 최고 인기만화’로 뽑힌 바나나 피쉬(요시다 아키미, 시공사)는 독특한 구성을 가졌다. 우선 여성작가가 쓴 순정만화(작가 자신도 순정이라고 하고 순정만화 잡지에 연재되었다)로는 극히 드물게 대도시 뒷골목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액션물이다. 여자라고는 단역이라고 할 만한 사람 두엇, 그것도 잠시 나올 뿐이다. 빠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도 애틋한 스킨십 하나 그럴싸하게 보여주질 않는 소년의 그것이 전부이다. 언뜻 생각하면 남녀 모두에게 외면당하기 딱 좋은 이 만화가 반대로 그 모두를 아우르는 인기를 얻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갱들이 난무하는 액션이라고 해도 주인공 애쉬는 근육의 힘으로 승부하는 폭력적인 캐릭터가 아닌 200이 넘는 지능과 고도의 사격술, 냉철한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다. 동시에 아름다운 외모와 그로 인해 성적으로 유린당한 고통스런 과거를 가지고 있어 여성 독자의 모성애를 자극시킨다. 애쉬의 옆에 ‘보호받는 여자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한 에이지라는 소년이 있다. 두 사람의 모습은 동성애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세간의 편견처럼 성적인 것은 아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안전을 걱정하는 모습은 남자들이 홀딱 넘어가는 ‘의리’의 변형이며, 남녀 사이에 ‘닭살돋는 뻔한 애정’보다 가슴을 두드린다.

‘강간은 최소의 폭력으로 가장 많은 정신적 상처를 줄 수 있는 범죄’라는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만화는 강간을 어떤 범죄보다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어릴 때 강한 어른들로부터 강간당한 애쉬는 늘 치욕스런 기억에 시달린다. 그는 등장인물중 누구보다 강하지만 그것은 상처난 짐승의 표효일 뿐이다. 여성을 배제하고 남자들만 가득한 만화기 때문에 여성만의 고통으로 알려진 강간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범죄로 보인다는 것이 이 작품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이다.

바나나 피쉬가 인기와 작품성을 차지한 까닭은 작가의 성차별 없는 중성적 시각 때문이다. 남자들의 싸움판에 여성들의 캐릭터를 집어넣고 여성들이 원하는 달콤한 러브스토리 대신 남성들의 의리를 변주하여 모두의 감수성을 흔들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굳이 가르고 각각의 비위를 맞추지 않아도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공통의 심장을 찾은 것이다.

이미선 객원기자 ogocici@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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