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 봉축표어 ‘차별없는 세상’ 내세운 조계종

봉축법요식서 주요 의식은 모두 남성이 맡아...여성은 보조

 

부처님오신날인 3일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스님이 아기 부처를 향해 합장하고 있다. 여성들은 주요 행사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뉴시스·여성신문
부처님오신날인 3일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스님이 아기 부처를 향해 합장하고 있다. 여성들은 주요 행사를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뉴시스·여성신문

‘차별없는 세상, 우리가 주인공’. 대한불교 조계종이 올해 불기2561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선정한 봉축표어다. 조계종의 올해 부처님오신날 법요식 풍경은 어땠을까. 여성은 이날도 ‘들러리’로 존재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법요식엔 조계종 스님들을 포함해 사부대중 1만여 명이 참석했다. 주요 대선 후보들과 정·관계 인사도 참석했다. 조계종은 ‘차별로부터의 해방’을 강조하며, 이날 행사에 성소수자, 세월호 희생자·미수습자 가족, 이주노동자, 장기해고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다수 초대했다. 

그러나 주요 의식은 모두 남성이 맡거나 주도했다. 남성들이 경전 봉독과 축원, 불자대상 시상, 봉축사, 발원문 낭독 등을 진행하는 동안, 고운 한복 차림의 여성들은 무대 한편으로 물러나 있다가, 식에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거나 참석자들을 단상 위로 안내하는 일 등만을 맡았다. 조계종의 주요 참석자인 종정 진제스님, 총무원장 자승스님, 원로의장 직무대행 세민스님, 사회를 맡은 일감스님, 집전을 맡은 진상스님 등도 모두 남성이다. 

 

지난해 부처님오신날인 5월 14일,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 중 관불의식. 여기서도 여성은 보조적 역할에 머무른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해 부처님오신날인 5월 14일, 조계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 중 관불의식. 여기서도 여성은 보조적 역할에 머무른다. ⓒ뉴시스·여성신문

‘평등과 해방의 종교’라는 불교에서도 여성의 지위는 낮다. 의례를 집전하고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들은 대개 남성이다. 지난달 6일 새로 임명된 조계종 원로의원 7명도 다 남성이다. 여성은 남성을 보조하고, 남성이 만든 규범을 따르고 봉사하는 데 그친다. ‘여성은 열등하며 깨달을 수 없는 존재’라는 인식이 그 바탕에 있다. 여성 불자라는 이유로 무작정 반말을 듣거나, 무시당하거나, 남편에 대한 복종을 강요당고 남아선호사상 발언을 듣기도 한다. 불교여성개발원이 서울대 여성연구소와 함께한 ‘불교 신자의 성평등 의식 실태조사’ 결과다(2010). 

여성의 종교적 헌신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 신자의 다수가 여성이지만 비구니는 규정상 종단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조계종은 종단 헌법인 종헌에서 행정수장인 총무원장의 자격을 비구(남자 승려)로 한정한다. 비구니는 중앙종회의원, 총무원장 선출 시 투표권도 없다. ‘100세의 비구니라 할지라도 갓 출가한 비구에게 예를 갖춰 절을 해야 한다’는 규정도 대표적인 불평등 조항으로 꼽힌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불교계 안팎에서 꾸준히 이뤄졌다. 조계종에선 지난해 ‘비구니가 총무원장이 될 수 있는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같은 해 여성학자·경전학자 등이 펴낸 연구서 『불교와 섹슈얼리티』, 붓다 생전 활약한 인도 여성 불자들을 소개한 『붓다의 길을 걷는 여성』 등 불교 내 성평등 이슈를 다룬 서적도 나오면서 공개적인 논의의 장이 열렸다는 평가다. 올해 3월에는 불교계 내 성평등 문화를 확립하기 위한 불교계 연대체인 ‘성평등불교연대’가 출범했다. △불교계 내 성폭력 사건 대처 △긴급신고 전화 운영 △피해자 구제활동 △성평등 교육 △이웃종교·시민사회단체와 연대 △성평등 캠페인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법요식 날 조계사를 찾았다는 불자 김모(35·여성) 씨는 “여성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있지만, 모든 존재는 평등하다고 믿는 불교 안에서도 여성은 아직 ‘2등’이다. 조계종만이 아니라 불교계 전반의 성찰이 필요한 문제다. 그렇지 않으면 ‘차별 없는 세상’은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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