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정하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 대표·하승아 한국맥주문화협회 이사

맥주를 마시는 여자는 많지만, ‘맥주 만드는 여자’는 소수다. ‘맥주 감평 전문가’도 여성은 드물다. 한국에서 활약하는 두 여성 맥주 전문가를 만났다.

 

김정하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정하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국내 1호 여성 브루마스터’ 김정하 대표

13년째 브루펍 경영·양조 책임지며 국제무대에서도 활약

“국제 맥주대회에 가면 사람들이 저를 신기해해요. 여자가 맥주를 만들어?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일인데, 젊은 동양인 여성이 브루마스터(brewmaster·맥주 양조과정을 총괄하는 전문가)? 브루어(brewer·양조가) 대부분은 40대 이상 남성 백인이거든요.” 

‘국내 1호 여성 브루마스터’ 김정하(37) 바네하임 대표는 서울 노원구 공릉동 주택가에 있는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을 운영하며 13년째 경영과 양조에 매진해온 맥주 전문가다. 독일의 대표 맥주 교육기관 ‘되멘스’의 비어소믈리에 과정도 국내 최초로 이수했다. 한국에서 브루펍(brewpub·맥주를 직접 빚어 파는 펍)을 운영하는 여성 대표는 두 명뿐이다. 2013년부터 ‘아시아맥주대회(Asia Beer Cup)’ 심사위원을, 2015년부터 ‘국제맥주대회(International Beer Cup)’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김정하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정하 ‘브로이하우스 바네하임’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3년도 못 버티고 사라지는 수제맥주 펍들이 즐비하지만, 바네하임은 13년째 성업 중이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와 단골이 되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서울 시내 펍·음식점 15곳에 납품 중이다. 국제무대에서도 명성이 높다. 지난해 9월 ‘국제맥주대회(IBC)’ 금메달을, 지난 4월 ‘아시아맥주대회(ABC)’ 아이리시 레드(Irish red) 부문 은메달을 받았다. 5월엔 세계 3대 맥주대회 중 하나인 ‘호주국제맥주대회(Australian International Beer Awards)’ 스타우트(Stout) 부문 동메달을 수상했다. 주문 물량이 점차 증가하면서 최근 캔입 맥주도 출시했다. 내년 초에는 자체 양조 공장을 설립할 목표를 세웠다. 공장이 세워지면 병입 맥주도 선보일 계획이다. 매출액 일부는 유니세프, 세이브더칠드런, 동물자유연대, 한국대중음악 등에 기부하고 있다.

본래 김 대표는 맥주에 관심이 없었다. 대학에서 전통조리를 전공했고, 언젠가 한식당을 차릴 생각이었다. 24세 때 처음 마신 수제맥주가 그의 진로를 바꿨다. 2002년, 국내에서도 소규모 맥주 제조·판매가 가능해지면서 수제맥주가 화제로 떠오르던 때였다. “참 부드럽고 맛있더라고요. 맥주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나도 맛있게 마셨는데, (수제맥주)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그렇게 “사업 경험 없는 20대 사장의 좌충우돌, 주먹구구” 경영이 시작됐다. 브루펍 경영자가 맥주 양조기술을 몰라선 안 된다는 생각에 초기부터 맥주 공부에 열을 올렸다. 양조설비에만 의지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제조사에서 준 레시피대로 맥주를 만들어보니 맛이 불안정했다. 레시피만 따르다가는 가게가 망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재료를 배합해 보고, 전문가들을 수소문해 조언을 구하면서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거듭했다. 

김 대표가 생각하는 좋은 맥주의 기준은 ‘음용성(drinkability)’이다. “맥주는 분위기 잡고 한 잔 먹는 술이 아니라 편안한 분위기에서 여러 잔씩 즐기는 술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개성 강한 맥주들이 인기지만, 바네하임 맥주는 기본적으로 부담 없는 편한 맥주, 늘 잘 관리해 품질이 균등한 맥주를 지향합니다.” 

바네하임의 대표 맥주도 모두 묵직하지 않아 편하게 마시기 좋은 맥주다. ‘프레아(Frea) 에일’은 천도복숭아와 자두를 첨가해 향긋한 향이 매력이다. 스타우트 계열의 ‘노트(Nott) 에일’은 조금 더 씁쓸한 풍미를 지녔다. 페일에일을 좋아한다면 향이 풍부하고 달콤한 ‘란드(Land)’ 에일도 있다. 다양한 시즌 맥주도 있다. 제주 자생 벚꽃을 첨가해 상큼하고 달콤한 ‘벚꽃라거’는 국내 최초 벚꽃 맥주로 매년 봄마다 인기다. 장미에일 ‘서울로7017’은 프랑스산 유기농 장미 꽃잎을 넣어 은은한 향과 풍미를 자랑한다. 서울관광마케팅의 의뢰로 개발해 지난 1일부터 ‘서울로 7017’ 내 음식점에 납품 중이다. 빨간쌀 홍국과 장미를 이용한 고제(Rose Gose) 맥주, 팬지나 무궁화를 이용한 맥주 등도 개발할 예정이다. 농촌진흥청의 도움으로 만든 현미쌀맥주, 코코아파우더, 카카오닙스, 블루베리, 크랜베리를 넣은 상큼달콤한 맥주 ‘다복이’도 있다.

김 대표가 보기에 수제맥주 시장은 편향적이다. “대다수의 브루어가 남성이에요. 거칠고 터프한 느낌이 강한 남성적인 맥주가 강세인 이유죠. 오히려 ‘여성성’이 수제 맥주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주류 양조는 본래 여성의 일이었어요. 미각, 재료를 선별하는 감각도 음식 만드는 일을 오랫동안 해온 여성들이 더 뛰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외국에도 ‘여성이 만드는 술이 더 맛있다’는 속설이 있죠.”

 

브루마스터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그는 “무엇보다도 체력이 좋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맥주 양조는 강도 높은 육체노동입니다. 맥아 포대를 나르고, 수백 킬로그램 분량을 퍼내고, 25kg 맥주통을 운반하려면 기초체력이 튼튼해야 해요.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이지만, 기초체력이 된다면 여자도 충분히 일할 수 있어요. 점점 기계가 힘든 일을 대체하는 추세거든요.” 미각, 후각을 포함한 감각기관을 충분히 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양한 맥주의 특징을 비교하고 더 나은 풍미를 만들려면 테이스팅 훈련이 중요해요. 여성들이 유리한 분야죠. 여성이 어떤 면에선 남성보다 뛰어나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나는 여자지만 남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태도가 더 여성비하적이죠. 여성들이 수제맥주 업계에 들어온다면 다양하고 좋은 맥주를 많이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김 대표가 생각하는 좋은 맥주란?

분위기 있게 ‘한 잔’보다 여러 잔 마셔도 부담 없고 편한 맥주

꼼꼼하게 양조·관리해 언제 어디서나 품질이 균등한 맥주

국내엔 보기 드문 여성 비어 소믈리에·공인 시서론 하승아 이사

“한국 맥주가 쓰레기? 알고 마시면 더 맛있어”

 

맥주 소믈리에 하승아 한국맥주문화협회 이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맥주 소믈리에 하승아 한국맥주문화협회 이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맥주를 둘러싼 젠더 편견은 강고하다. 맥주 소비자는 남성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업계에 만연해 여성 ‘맥덕’(맥주덕후로 마니아를 가리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도수 낮은, 달콤한 맥주’를 말할 땐 ‘여성’이란 수사가 빠지지 않는다. 

한국 맥주 시장은 부쩍 성장했지만, “맥주를 표현하는 언어는 빈곤하고, 맥주를 제대로 즐기는 문화는 아직 뿌리내리지 못했다고 하승아 한국맥주문화협회 이사는 말했다. “물, 맥아, 홉, 효모라는 기본 요소와 다양한 맥주 스타일, 시음법을 이해한다면 무조건 ‘한국 맥주는 쓰레기’라며 무리하게 폄하하지도, 맥주가 ‘여성적’ ‘남성적’이라며 제한적으로만 표현하지도 않을 겁니다.”

하 이사는 국제 공인 자격을 갖춘 맥주 감평 전문가다. 독일 되멘스 아카데미의 디플롬 비어 소믈리에(DOEMENS Diplom-Biersommelier) 한국어 과정 1기 출신이자, 공인 시서론(Certified Cicerone)이다. 시서론이란 2007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국제공인 자격증으로, 맥주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맥주를 소개할 줄 아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제도다. 공인 맥주서버(Certified Beer Server), 공인 시서론(Certified Cicerone), 마스터 시서론(Master Cicerone)까지 3단계로 이뤄졌다. 국내에 공인 시서론 자격을 갖춘 이는 약 10명이며, 여성은 2명뿐이다.

하 이사와 8명의 국내 전문가들이 함께 만든 한국맥주문화협회(맥문협)는 맥주에 대한 명확한 지식과 정확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교육해 국내 맥주산업 발전과 문화정착을 도모하는 비영리단체다. 맥주에 관심 있는 일반인과 전문가를 위한 맥주 테이스팅 강의, 브루어리 투어 등을 열고 있다. 

비어소믈리에란 맥주 제조부터 테이스팅까지 전문 지식을 습득해 고객을 위한 최상의 맥주 제공·추천, 맥주에 어울리는 음식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전문 인력이다. 아직 대중에겐 생소한 직종이다. 미국·유럽에서도 비어 테이스팅이 세분화된 지는 10여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맥주 시장이 성장하면서 서울 유명 브루펍 직원들을 시작으로 되멘스디플롬 비어소믈리에, 시서론 등 공인 맥주 자격증 소지자가 점점 느는 추세다. 프리랜서로 여러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맡은 하 이사를 포함해, 대다수가 국내 주류·외식업계의 핵심 인력으로 활동 중이다. 

“그간 한국 맥주엔 다양성이 부족했어요. 2014년 주세법 개정 이후 수제맥주 시장이 급성장하며 변하기 시작했어요. 이제 맥주는 무척 캐주얼하고 흥미로운 술이 됐죠. 높은 주세, 대면 구매만 가능한 점 등 아직 제약은 많지만 앞으론 커피 못지않게 대중에게 친숙한 음료가 될 겁니다. 맥주를 제대로 즐기는 문화가 대형마트 맥주 코너에서 늘 같은 맥주만 고르는 게 지겨운 분들 도움이 될 거에요.”

 

맥주 소믈리에 하승아 한국맥주문화협회 이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맥주 소믈리에 하승아 한국맥주문화협회 이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비어 소믈리에는 “여성들이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감각이 뛰어나고 트렌드를 잘 읽는 여성들이 하기 좋은 일이에요. 양조, 마케팅, 영업 분야 모두 맥주의 기초와 테이스팅에 대한 이해를 갖춘 인력을 환영하죠. 맥주의 역사가 유구한 만큼, 인문학·예술과 접목해 할 수 있는 일도 많습니다. 한국음식과 맥주 페어링, 치즈와 맥주 페어링, 디저트와 맥주 페어링 등 전문적 푸드 페어링 연구도 흥미진진하죠.”

국내 되멘스디플롬 비어소믈리에 자격을 갖춘 20명 중 여성이 6명이다. 그는 “나도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여성들과 어울려 공부했다. 시장이 좁다 보니 여성 전문가들 간 연대가 아주 끈끈하다. 더 많은 여성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며 웃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