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구성원으로서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해야

성평등 사회는 나라다운

나라의 필요충분조건

 

 

지금 대통령께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셨고 성평등 사회를 약속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또 질문을 던진다. 성평등 사회가 뭔데?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미 성평등 사회가 된 거 아냐?

성평등 사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간단하게 찾기는 어렵다. 기회 보장 차원에서 볼 때와 실질적 결과의 차원에서 볼 때 성평등이 지향하는 방향은 크게 달라진다. 그래서 지향하는 성평등 사회의 모습을 놓고 이견이 생기고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 게다가 상당수 사람들은 한국이 이미 성평등 사회가 되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리고 “벌써 평등한 사회가 됐는데, 여자 살기 편한 세상 됐는데 뭐가 더 필요하다는 거지?”라는 생각까지 한다. 별 생각 없이 던진 말, 무심코 뻗은 손이 별 문제도 안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말 한마디 손동작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시대에 살기가 상당히 불편할 것이다.

지금 사회 모든 분야에서 한창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열심히 뛰고 있는 대다수 50·60대 남성들은 1980·90년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법적으로도 남성은 육아휴직을 할 수 없었던 시기이다. ‘출산한 여성 근로자’만 육아휴직을 할 수 있었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도 이른바 시집가면 당연히 그만둬야 했던 혹은 자발적으로 그만두던 시절이다. 그런 인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집밖에서 앞만 보며 뛰어온 ‘국제시장의 후예들’ 입장에서 지금 사회 각 분야에서 마주치는 여성들의 존재는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이 상황에서 또다시 무슨 성평등인가? 일단 이 정도하고 다른 급한 과제를 해결해야지!”

그런데 한번 물어보자. 지금 한국은 민주화된 사회인가? 부정선거가 사라지고 몇 년 주기로 높으신 분들한테 길거리에서 큰절 받게 되었다고 한국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대다수가 한때 착각을 했다. 자유롭게 투표하고 출마할 수 있는 기회 보장은 민주화의 첫걸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많은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성평등도 마찬가지다. 성평등을 여성정책의 한 분야 정도로 생각한다면 모르겠다. 그러나 성평등을 민주주의처럼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기본 가치로 받아들인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남성과 동등한 법적기회를 보장받고 성차별 관련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사회를 성평등 사회로 본다면, 참정권을 자유롭게 행사하게 되었으니 완전한 민주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나의 완성된 상태로서 성평등 사회를 묘사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역사는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무 능력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별개로 보는 사회가 성평등 사회는 분명히 아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아도 그 친구 일은 참 잘 해. 그러니 계속 일하게 둬야지.” 이런 말에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여전히 남자의 업무 능력과 여자를 대하는 태도를 별개로 보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아도 그 친구 일은 참 잘 해.” 이런 식이다. 그런데 이게 용납된다.

민주화를 토대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노력은 성평등이라는 기본 가치와 함께 어우러져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려면 우선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사람을 사람으로서 대접해야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을 술주정과 성적 판타지의 대상으로 만드는 행위가 남자다움으로서 용납 받는다면 이게 나라인가? ‘나라를 나라답게’를 실현하려면 여성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성평등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성평등 사회는 나라다운 나라의 필요충분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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