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현지 시간) 멕시코시티에서 여성살해(femicide) 규탄 시위가 열렸다. ⓒ유튜브 영상 캡처
지난 17일(현지 시간) 멕시코시티에서 여성살해(femicide) 규탄 시위가 열렸다. ⓒ유튜브 영상 캡처

여성살해 계속되는 멕시코...매일 7명 사망하나 정부는 소극적 대응

“여성이 밤늦게 나가 논 탓” 황당한 ‘피해자 책임론’도

전국에서 수천명 시위 나서 정부에 대책 마련 촉구

‘한 사람도 잃을 수 없다(Ni Una Más)’, ‘마라에게 정의를(Justicia Para Mara)’, ‘당신 잘못이 아니다(No Fue Tu Culpa)’... 

지난 17일(현지 시간), 분노한 멕시코 여성들이 거리로 나섰다. 수도 멕시코시티, 푸에블라, 치화화, 몬테레이, 과달라하라 등 멕시코 전역에서 여성살해(femicide) 규탄 시위가 열렸다. 멕시코시티의 조칼로 광장에만 수천 명이 모여 위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멕시코의 심각한 여성폭력·여성혐오를 고발하고,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과 정부의 적극적인 재발 방지 조처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였다. 

 

피해자 마라 페르난다 카스티야의 생전 모습. ⓒ피해자 페이스북 캡처
피해자 마라 페르난다 카스티야의 생전 모습. ⓒ피해자 페이스북 캡처

한 젊은 여성의 죽음이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놓았다. 멕시코 푸에블라 주에 사는 19세 대학생 마라 페르난다 카스티야(Mara Fernanda Castilla)는 이달 초 클럽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새벽 5시께 스마트폰 앱 ‘Cabify(‘우버’와 유사한 서비스)’로 집에 가는 택시를 불러 탑승한 후 실종됐다. 마라의 시신은 실종 약 일주일 후인 15일 지역 내 한 구덩이에서 발견됐다. 멕시코 검찰은 호텔 CCTV 영상 등을 확인한 결과, 택시 운전사가 마라를 호텔로 끌고 가 성폭행한 후, 목을 졸라 살해하고는 시신을 부근에 유기했다고 밝혔다. 

멕시코 여성·인권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멕시코의 심각한 젠더폭력 실태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 멕시코지부 등 인권단체에 따르면, 올해 푸에블라에서 발생한 여성살해 사건은 이번이 83번째다. 멕시코 법무부의 통계에 따르면 59번째다. 2015년부터 이달 17일까지 멕시코에서 살해당한 여성이 128명에 달한다. 

UN 통계에 따르면 멕시코는 매년 여성 2500명, 매일 여성 7명이 살해당하는 나라다. 가해자가 징역형 이상의 처벌을 받은 경우는 2%에 불과하다. 앞서 2003년 국제앰네스티는 멕시코 정부가 젠더폭력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참을 수 없는 정부의 무관심의 전형”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국제앰네스티 멕시코지부는 “멕시코 검찰은 신뢰할 만한 여성살해 관련 통계를 보유하고 있지 않고, 많은 경우 단순 살인사건으로 치부해 버린다”고 비판했다. 

여성 대상 강력범죄의 ‘피해자 책임론’은 보수적 멕시코 사회에서 흔히 등장하는 논리다. 푸에블라 마데로 대학의 홉 세자르 로메로 총장도 살해당한 마라 페르난다 카스티야에게 일부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비난을 받았다. “사회가 파편화된 오늘날 젊은 여성들이 누리는 자유”, 예컨대 “늦은 밤까지 나가 놀다가 귀가할 수 있고, 자동차 등을 타고 이동할 수 있는 자유” 때문에 이번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이었다. 온라인상에서도 피해자가 평소 밤늦게까지 파티와 음주를 즐겼다는 사실을 두고 “피해자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여성정책을 담당하는 멕시코 정부기관 국립여성연구소(INMUJERES)는 17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사건을 강력히 비난하며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애도를 전”하는 한편, 가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을 요구했다. 또 “이 나라의 모든 여성이 (젠더)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를 지녀야 한다”며, “지방 정부와 기업은 여성이 폭력·위험 없이 이동할 권리를 즉시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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