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옥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대표

‘유리천장’ 깬 여성임원 1세대

네 번의 경력단절에도

40여년간 경력 이어가

후배 앞길 터주기로 유명

여성 인재 DB 구축해

각 기업에 추천하고

이사회 여성할당제도 추진

“불가능한 꿈을 꾸고

절대 포기 말라” 조언

 

손병옥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대표는 “기업 이사회에 여성이 늘어나려면 ‘임계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여성 할당제를 통한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손병옥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대표는 “기업 이사회에 여성이 늘어나려면 ‘임계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여성 할당제를 통한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조금만 기다리면 여성 임원도 자연스럽게 늘어날 거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데 그러면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해요. 기업 이사회에 여성이 늘어나려면 ‘임계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여성 할당제를 통한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 여성과 남성들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어요.”

손병옥 세계여성이사협회(Women Corporate Directors, WCD) 한국지부 대표는 여성들이 조직에서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임계점을 ‘30%’라고 제시했다. 기업의 주요한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에 여성이 늘어나면 다양성 확보와 함께 실질적인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세계여성이사협회는 기업 이사회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여성 리더들로 구성된 단체로 전 세계 80여개 지부에 회원 350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손 대표가 이끄는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는 74번째 지부로 지난해 9월 설립돼 창립 1주년을 맞았다. 임수경 한전KDN 대표, 이수영 코오롱워터앤에너지 대표, 김주연 한국P&G 대표, 김옥정 우리프라이빗에퀴티 대표이사, 강심숙 수협 상임이사, 이은형 SC제일은행 사외이사(국민대 교수) 등 국내 대기업과 공기업의 여성 등기·사외이사들 60여명이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손 대표는 한국지부 창립을 준비해오던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가 “다른 적임자는 없다”는 설득에 참여하게 됐다. 지난 40여년 간 직장생활을 이어온 그는 보수적인 금융계의 ‘유리천장’을 뚫은 대표적인 여성임원 1세대다. 1974년 체이스맨해튼 은행에 입사하며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그는 네 번의 경력단절을 겪어야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경력을 이어갔다. 96년 푸르덴셜생명보험 인사부장으로 스카우트된 뒤 생명보험업계 최초의 여성 사장을 거쳐 회장에 올랐다. 그는 지난 6월 정년퇴임하기까지 43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최초’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유리천장을 뚫은 선배로서 여성 후배들의 앞 길을 터주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해까지 10년간 기업 여성 임원들로 구성된 사단법인 WIN(Women in INnovation)을 이끈 것도 후배들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포기하지 않도록 독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손병옥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손병옥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WCD 대표를 맡은 것도 정년퇴임 후에 보다 적극적으로 여성 후배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나와 같은 길을 걷는 두 딸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마음이 더 커졌다”고 했다.

“두 딸 모두 일을 하며 아이들을 키워요. 남편들이 도와주기는 하지만 야근이 많다보니 주도적으로 가사 일을 하는 건 딸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될 수 있어요.”

손 대표는 일본 사례를 예로 들며 정부가 앞장서 사회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아베 신조 총리가 기업에 여성 인력 확대를 주문하며 대기업 여성 임원 비율이 2%에서 6.9%로 늘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내각의 여성 비율을 30%로 끌어올린 것처럼 정부가 민간의 변화도 이끌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WCD는 잠재력 있는 여성 인재들이 이사회에서 역할을 있도록 교육과 네트워킹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이사회 여성 임원 추천을 위한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공공기관과 상장기업의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관·기업이 ‘여성이사 할당제’ 도입하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10월 24일에는 WCD 한국지부 설립 1주년을 맞아 ‘여성의 경영참여 확대를 위한 가치투자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로 기념포럼을 개최한다. 미즈노 히로미치 일본공적연금(GPIF) CIO(최고투자책임자)가 연사로 나서 ‘일본에서의 WESG(Women, Environment, Social Responsibility, Governance)투자, 그 성과와 과제’에 대해 발표하며, 이은형 한국여성경제학회장의 사회로 한국의 WESG투자를 위해 선결돼야할 조건과 실천방안 등에 대해 토론할 계획이다.

손 대표는 “여성의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대우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통해 기업가치를 올리고 여성의 지위향상도 이루자는 취지로 마련했다”며 “ESG투자가 한국에 도입되길 바라며, 여성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WESG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밝혔다.

그는 여성 후배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했다. ‘용기를 가져라’ ‘불가능한 꿈을 꿔라’ ‘절대 포기하지 마라’. 40여년간 직장생활을 이어온 선배의 경험이 녹아있는 진정한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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