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중심 벗어나려면 기형적인 영화시장 구조 개선해야

‘여자는 못할 것’이라는 지독한 고정관념이 여성 가로막는 장벽

극단적 시장구조 개선해야 여성 감독 기회 가질 수 있어”

 

50년대 박남옥 감독의 등장 이후 여성 감독은 그 명맥을 꾸준히 이어왔다. 특히 2000년대에 대거 등장한 이들은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명성을 유지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여성 감독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여성 감독에게 그 어느 때보다 척박한 시기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감독, 배우 할 것 없이 한국영화판이 전체적으로 남성화돼가고 있다”며 “제작자·감독 등의 남초 현상을 넘어 영화 장르까지도 남성화된 상태”라고 짚었다.

영화시장이 커지면서 자본이 대거 유입됐고 제작사는 본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관객 수요를 염두에 두다보니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작하게 됐고, 자연스레 남자들이 군집으로 나오는 액션영화나 시대극이 주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는 생산자, 소비자, 영화장르가 전체적으로 남성화되는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결과적으로 상업영화에서 소외된 여성 감독들은 독립영화 등을 제작하며 활동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게 됐다.

황 평론가는 “멜로·로맨틱 코미디 등 대규모 영화와 독립 영화 중간 규모의 영화가 거의 사라졌다”는 것을 문제로 꼽았다. 그는 “영화 시장구조가 천만 영화 아니면 저예산영화로 극명하게 나뉘게 됐다”며 “소위 말하는 ‘대박’ 영화는 느와르, 액션, 사극 등으로 제작되고, 대부분 남성 서사 위주로 흐르다보니 남성 이야기가 영화 시장을 장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여성은 대형 블록버스터를 찍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 또한 여성 감독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위험부담을 지기 싫어하는 제작자들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여성에게는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알탕문화’(남성연대) 속에서 남성 제작자-감독 간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지고, 여성 감독들의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이수연 감독도 이러한 현실을 이야기한 바 있다. 이 감독은 지난 3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성들을 가로막는 벽은 “투자자들의 편견”이라고 단언했다. 자본을 움직이는 이들이 여전히 여성 감독에 대해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남성화된 영화판의 변화를 꾀한다면 큰 틀에서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다. 여성감독 불모지, 영화시장 독과점, 기형적 시장 구조 형성, 다양성영화 감소 등 각종 폐해는 하나의 물줄기에서 파생됐다. 바로 제작-배급-상영으로 이어지는 대기업의 영화산업 수직계열화다. 극단으로 양극화된 시장 구조를 개선해야 남성 중심적인 영화산업 시장을 변화시킬 수 있고, 여성들이 나올 통로를 확보할 수 있으며 영화의 다양성이 보장된다. ‘여성들이 더 열심히 해야 된다’는 말은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한국영화계가 문제의식을 갖고 비로소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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