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빈발하던 촛불 속 여성들

정치세력화로 ‘여성=피해자’ 프레임 깨자

 

지난해 11월 26일, 제5차 민중총궐기 범국민행동에 앞서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페미존’ 집회가 열렸다. 페미당당, 강남역 십번출구, 불꽃페미액션, 정의당 여성주의자 모임 저스트 페미니스트(Just Feminist), 노동당 여성위원회, 우리는 서로의 용기당, 박하여행(박근혜 하야를 만드는 여성주의자 행동),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정의당 이화여대 학생위원회 등 단체와 시민들이 자유발언 시간을 가졌다.
지난해 11월 26일, 제5차 민중총궐기 범국민행동에 앞서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페미존’ 집회가 열렸다. 페미당당, 강남역 십번출구, 불꽃페미액션, 정의당 여성주의자 모임 저스트 페미니스트(Just' Feminist), 노동당 여성위원회, 우리는 서로의 용기당, 박하여행(박근혜 하야를 만드는 여성주의자 행동),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정의당 이화여대 학생위원회 등 단체와 시민들이 자유발언 시간을 가졌다. ⓒ이정실 사진기자

- 다양한 영역에서 따로따로 활동하던 페미니스트들이 세대와 의제를 뛰어넘어 한목소리를 낸 순간들이 있었다. 지난 촛불집회의 ‘페미존’이 그랬다.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연대하고, 꼭 필요한 성평등 의제를 이야기하며 새 정치의 담론을 형성했다.

심미섭(이하 심) : ‘페미당당’이 처음 페미니즘 깃발을 들고 시위에 참여한 날을 잊을 수 없다. 고작 한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여성혐오 사건이 발생했다. 술 취한 남성들이 시위 중인 여성들에게 대뜸 말을 걸고, 놀리고, 만지고, 밀치고... 대책이 필요했다. 다음 집회부터 스탭들이 ‘페미자경단’을 꾸렸다. 여성의 동의 없는 신체 접촉이나 폭언·폭력이 일어날 경우 스탭들이 나서서 가해자를 제지하고 참가자를 보호하기로 했다. 문제는 남성들이 여자들을 무서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페미니즘을 배우면서 ‘피해자의 위치에서 벗어나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 때 참 막막했다. 어떻게 해야 피해자의 위치를 벗어날 수 있지? 

그런데 갈수록 참가자가 늘어나니까 남자들이 우리를 못 건드리더라. 3~4차 때는 페미존 시위대가 200명에 달했다. 그러면서 DJ DOC가 여성혐오적인 노래를 촛불집회 무대에서 부르지 못하게 했고, 이와 관련해 주최 측 사과도 받아냈다. 그 때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통해서 피해자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12월 3일 열린 제6차 민중총궐기 범국민행동에 참가한 페미니스트들이 본 집회에 앞서 ‘페미존’을 조직해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강푸름 기자
지난해 12월 3일 열린 제6차 민중총궐기 범국민행동에 참가한 페미니스트들이 본 집회에 앞서 ‘페미존’을 조직해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강푸름 기자

 

지난해 12월 3일 제6차 민중총궐기 범국민행동에 앞서 열린 페미존 집회 참가자의 손팻말. ⓒ강푸름 기자
지난해 12월 3일 제6차 민중총궐기 범국민행동에 앞서 열린 페미존 집회 참가자의 손팻말. ⓒ강푸름 기자

 : ‘여성정치의 실패’라는 말이 거꾸로 ‘성평등 정치’ 담론을 끌어올렸다. 저희도 다른 단체들과 토론회 등을 열고 “박근혜 정부의 실패는 페미니즘의 실패가 아니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건 ‘페미니즘 정치’”란 얘기를 많이 했다. 

 : 페미니스트들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한 적 없다. 중요한 건 왜 ‘여성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는가다. 그만큼 정치 분야에선 여성의 활약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여성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생각 자체는 죄가 아니다. 박근혜-최순실 사태는 우리 사회가 다른 여성 대통령을 맞이하기 위한 경험이 됐다고 본다. 

조박 : 당시 박근혜의 대항마였던 문재인 후보의 ‘특전사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문재인 지지층인 진보 지식인 남성들도 믿을 수 없었다. ‘나른한 부르주아 페미니즘’이라며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했던 사람들이다. 

 : 우리도 그들도 똑같이 가진 게 없었다. 다만 페미니스트들에겐 ‘문화 자본’이 있었다. 가진 게 없는 노동자들은 앉아서 막걸리를 먹으며 돌을 던지는데, 가진 게 없는 페미니스트들은 우아하게 노래 부르고 그림 그리고... 1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어쩔 수 없이 유학파, ‘있는 집 자식들’이었다. 공부를 많이 해서 제 언어를 가진 여성들이 ‘부르주아’로 보였던 것 같다. 

조박 : 고학력 기혼여성들이 페미니즘을 논하면 ‘남편도 있고 먹고살 만하니까 나와서 저러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오해와 편견을 진보 지식인이라는 인간들이 악용한 거지. 

 : 페미당당도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다. 페미니스트 파티도 열고 굿즈도 만들어 팔려고 하는데, ‘힙스터(남들과 다른 것을 피상적으로 좇다가 결국 소비 지향으로 흐르는 현상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라는 말이 나온다.

조박 : 그래도 여성들이 끼와 에너지를 발산할 곳은 필요하다. 이프는 한강유람선에서도 파티를 열었다. 아티스트도 많이 왔다. 유영철 사건 때 한밤의 공원에서 ‘여성전용 파티’를 열었다. ‘오픈 마이크’(자유발언대)가 제일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은 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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