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결 춤의학교 대표는 “삶에서의 춤을 춰야 한다”며 “우리 모두에게는 춤출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최보결 춤의학교 대표는 “삶에서의 춤을 춰야 한다”며 “우리 모두에게는 춤출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인터뷰] 현대무용가 최보결  ‘최보결의 춤의 학교’ 대표

막춤 같아도 모든 몸짓에는

춤추는 이의 감정 고스란히

“누구에게나 춤출 권리 있다”

일반인 대상 아카데미 강의 

거리공연, 촛불집회 등 활약

‘최보결의 춤의 학교’에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춤을 가르친다. 그런데 춤의 기교나 정해진 동작은 가르치지 않는다. 학교를 이끄는 최보결 대표는 “나뭇잎이 흔들리고 새들이 움직이면 ‘나뭇잎이 춤춰요’ ‘새들이 춤춰요’ 이렇게 말하는데 사람이 살짝 움직이면 춤춘다는 표현을 잘 안 쓴다”고 말했다. “동작이 화려한 무대 위에서의 춤이 춤의 전부가 아니에요. 삶에서의 춤을 춰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춤출 권리가 있어요.”

최보결 대표는 현대무용가다. 경희대 무용과를 나와 중학교 무용 교사를 거쳐 무용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전문가다. 2010년 현대무용진흥회가 주최하는 ‘올해의 최고 무용가상’을 받았고 같은 해 제31회 서울무용제에서 ‘안무대상’을 받은 실력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가 가르치는 춤은 무대 위 화려한 춤들과 다른 모습이다. 일정한 형식이 없고 정해진 가이드라인도 없다. 언뜻 보면 막춤으로 보이지만 몸짓 하나하나는 모두 춤추는 사람의 감정으로부터 표현된다.

최 대표는 삶에서의 춤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일반인들에게 춤을 널리 전파하고 있다. 춤 연구소를 만들어 매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3년 전부터는 참여연대 부설 아카데미에서 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서울 성동구치소 재소자들, 참여연대나 민주노총 간부들에게도 춤을 가르친다. 최근엔 기업 대표들이나 공무원들 모임에도 참석해 춤을 가르치고 있다. 수업을 들은 사람들은 최 대표의 수업을 “치유의 춤”이라고 평한다.

 

최보결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최보결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춤추기 전 ‘나’를 탐구하다

최 박사의 춤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내면의 나’다. 테크닉이 아닌 나 자신이 추는 춤, 내가 자발적으로 추고 싶은 동작을 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최 박사의 춤에 대한 철학은 젊은 시절부터 시작됐다.

그는 1985년 경희대 무용과에 입학했다. 대학 때는 춤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에 천착했다. “어렸을 때부터 테크닉에 맞춰 열심히 하는 편이었어요.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따라 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기능, 방법만 우선시되는 수업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대학 4년 내내 수업 전 수행하듯 몸을 풀었습니다. 몸이 편할 때 창조성이 나올 것 같은데 창조성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때부터 ‘춤이 뭘까’ ‘왜 춤을 추는 걸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내 몸의 움직임, ‘나’를 찾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졸업 후에는 서울의 한 여중에서 무용 교사로 일했다. 설립 100년이 넘는 전통 있는 학교였다. 당시 학교에는 무용 수업이 있었다. “원래는 타이츠, 토슈즈를 신고 살짝 스텝 정도만 배우는 수업이었죠. 이 수업을 ‘창작무용’으로 바꿨어요. 어려워하던 아이들도 금세 재밌어하더라고요. 주제, 시나리오, 음악 모든 게 다 자유였죠. 낙엽이 떨어지면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뛰쳐나갔어요. 강당에서 팀별로 공연하면 서로 재밌어하고 선생님들도 웃고 그랬죠.”

하지만 춤에 대해 풀지 못한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좀 더 춤을 공부해 예술가로 살고 싶은 꿈도 현재진행형이었다. “선생님으로 계속 남은 인생을 살면 안정적일 수는 있지만 계속해서 변화하고 싶은 제 성향과는 맞지 않았어요. 춤에 대해 더 공부하고 춤을 추는 예술가로 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일한 지 10년 만에 사표를 쓰고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는 박사 과정을 시작하며 춤이 무엇인지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춤이 도대체 뭔데? 그래 나랑 한 번 해볼 대로 해보자.’ 뭐 이런 느낌이었어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공부이기도 했죠. 이걸 이해하지 않고는 예술가로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최보결 대표가 춤을 추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최보결 대표가 춤을 추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철학 통해 몸이 가진 전체 지성에 눈 떠”

최 대표는 2007년 동덕여대에서 무용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때 쓴 논문이 ‘춤 표현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이다. 그는 논문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춤의 재료가 몸인데 사실 무용하면서 몸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다”며 “공부하기 전까지 몸의 은유, 몸이 가진 이야기를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 대표는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를 언급했다. 메를로 퐁티의 신체 현상학은 인간을 육화된 정신으로 확립한다. 또한 정신이 떠받들어지고 몸이란 정신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거추장스러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데카르트적 이원론을 넘어선다. 퐁티에 따르면 몸은 곧 인간의 역사, 경험과 전부를 담고 있는 저장소다. 최 박사는 “이 철학을 공부하며 몸이 가진 전체 지성에 눈을 뜨게 됐다”고 했다.

“20세기 문명은 이분법적인 사고로 살았어요. 육체와 정신을 두 개라고 보는 거예요. 반면 제가 접근하는 방식은 몸을 하나로 보는 일원론적인 방법론입니다. 몸은 머리를 포함한 더 큰 이성이라는 거죠. 남성 중심의 논리, 이성 중심의 세계에서는 경쟁하고 싸우는 에너지가 커요. 그런데 여성의 문화에서는 다시 회복하고 치유하고 창조하는 에너지가 있어요. 이게 바로 몸의 문화예요. 몸과 춤, 여성이 같은 순환구조에 서 있는 거죠. 달이 차면 기우는 것이 자연스럽듯 지성, 지식, 논리로 점철됐던 세상에 또 다른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는 논문에서 ‘춤이 이 시대의 문제를 풀 가장 부작용 없는 처방’이라고 썼다. “논문을 쓰면서 삶과 춤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춤이 세상 병폐에 대한 처방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요.” 2013년 미국으로 건너가 치유의 무용가 안나 핼프린(97)이 지도하는 표현예술 통합치료과정을 수료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이분을 만나기 전에는 내 인생의 ‘성장’이라는 단어가 없었던 것 같다”며 “이분의 철학이 집약된 책과 수업을 통해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라고 밝혔다.

2013년 미국에서 건너와 처음 시작한 워크숍은 현재의 ‘최보결의 춤의 학교’가 됐다. “처음에 서울문화재단 커뮤니티 댄스 프로젝트를 하면서 ‘여성예술기획’이라는 공동체를 맡아 수업을 진행했어요. 80년대 초창기 페미니스트로 활동하신 분들인데 나이가 들어 활동이 아주 드문 때였죠. 그분들은 춤을 통해 공동체 정신을 회복했다고 표현했어요. 굉장히 반응이 좋았죠. 자연스럽게 하나의 프로그램이 돼버렸어요.”

그는 1년 가까이 ‘월드컬처’라는 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 무료 오픈 강좌를 실시했다. 그러면서 수강생들로부터 “명상 춤 같다” “치유가 됐다”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들었다. 그는 “그때 ‘명상 춤’이 따로 있는지 처음 알았다”고 했다. 그는 지금 자신이 10년 전 논문에 쓴 것을 현실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라 처음으로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고 밝혔다.

이후 그는 작품에 일반인들을 실험적으로 출연시키기 시작했다. 무용수와 일반인이 혼합된 형태다. “실험 삼아 해보는 거였죠. 좋은 작품이 나오고 안 나오고, 인정받고 안 받고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실험하는 느낌이었어요.”

 

최보결의 춤의 학교 수강생들이 공연하고 있는 모습. ⓒ여성신문
최보결의 춤의 학교 수강생들이 공연하고 있는 모습. ⓒ여성신문

춤은 쉽고 간결한 것 “누구나 춤 출 권리가 있다”

“우리한테는 춤출 권리가 있어요. 춤은 저 너머의 것, 무대 위의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춤도 안 춰보고 대부분 몸치라고 생각해요. 수업에서 몸으로 표현하는 인사를 시키면 ‘못 한다’며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요. 그러면 저는 그것도 표현이고 춤이라고 말해줍니다. 외향적으로 남들처럼 표현하는 것만이 춤이 아니에요.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내면 됩니다.”

최 박사는 현대인들에게 춤에 대한 선입견과 억압이 있다고 했다. “‘나는 못 해’ 이런 선입견을 없애주고 싶어요. ‘자기가 가진 것을 드러내거나 표현하지 못하면 그것이 너를 죽일 것’이라는 성경 말씀도 있잖아요. 사실 표현을 하지 못해서 현대인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부분도 있거든요.”

최 박사에 따르면 춤을 춘다는 것은 표현, 감정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행위다. 그때 표현은 ‘배설’의 차원을 넘어선다. 해소된 것이 아니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는 “춤을 통해 이유 없는 불안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며 “그렇게 어렵게 찾아나가지 않아도 된다. 특별한 지성인이나 구도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깨닫고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춤을 통해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를 변화시키는 꿈을 꾸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춤을 추러 왔으면 좋겠어요. 한반도가 춤으로서 ‘평화의 땅’이 되는 거죠. 한국은 특유의 신명의 에너지가 있어요. 이 신명의 문화를 더욱 살려야 해요. 춤은 이 시대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평화적인 방법입니다.”  

최보결 대표 약력 △1966년생 △1989 경희대 무용과 학사 졸업 △1993 경희대 무용과 석사 졸업 △1990~2001 숙명여중 무용과 교사 △2001~2007 경희대 강사 △2007 동덕여대 무용학 박사 수료 △2007 공연과 리뷰 ‘PAF 올해의 안무상’ △2008~2011 동덕여대 무용과 강사 △2010 현대무용진흥회 주최 ‘올해의 최고 무용가상’ △2010 제31회 서울무용제 ‘안무대상’ △2013 미국 표현예술통합치료 과정 수료 △2014~2017 최보결의 춤의 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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