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는 아직도 여성에게 출산·양육과 직장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직장에서 대체인력 없이 업무적으로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간신히 산전후 휴가를 마치고 출근하면 놀고 온 사람쯤으로 취급하는 직장. 아이를 키우면서 영아를 맡아 보육하는 시설을 찾기 힘들고 게다가 밤늦게까지 보육하는 시설도 없어 직장여성은 발을 동동 구르기 일쑤다.

그러다 구조조정과정에선 우선적으로 퇴직을 종용받는다. 많은 기혼여성근로자들이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지만 현실은 무대책 상황이다.

정부가 지난해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입안한 모성보호 관련법안이 경제위기 운운하며 계속 국회통과가 미뤄지다가 4월 24일 여야 3당은 법 시행 2년 경과규정을 두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는 바로 정책결정자들과 정치인들의 모성보호에 대한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정부는 지난해 국제노동기구(ILO)에서 한층 강화된 모성보호협약이 개정 통과되고 국내 여성계와 노동계가 입법 청원한 데 영향을 받아 지난해 산전후 휴가기간을 60일에서 90일로 확대, 유급 유·사산 휴가를 법제화, 월 1일의 유급 태아검진휴가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연장되는 산전후 휴가 30일분에 대해서는 비용을 사회분담화하고 현재 무급으로 이용률이 저조한 육아휴직에 대해서는 급여의 30%를 분담하겠다며 노동부의 2001년 예산에 이미 일정부분을 반영하여 확정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되어 대부분의 국민들은 개정법이 올해 7월부터 시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것이 확실시되던 모성보호입법 개정안에 대해 자민련이 느닷없이 국가경쟁력이 회복될 때까지 유보하자는 입장을 밝히면서 이상스레 마지막 단계에서 표류하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안건에서 제외돼 처리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 열린 이번 4월 국회에서 벌어진 상황은 더욱 가관이었다.

경제5단체가 전면에 나서 터무니없는 모성보호관련 비용을 추산하여 이를 유포하면서 현실을 호도하고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런데 바로 이점에 근거해서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자민련, 민국당과 함께 시행 2년 유보를 거론하고 있다. 예산까지 확정지은 노동부도 갑자기 고용보험 파탄을 운운하며 태도를 바꾸고 있다.

모성보호 확대를 대표적인 여성공약으로 선정하고 오는 7월 시행을 수차례 발표하고서도 말을 바꾸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정부와 정당, 정치인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여성은 잊지 말고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모성보호정책을 강화하지 않으면 출산장려정책을 펴야 될 시대가 조만간 올 것이라는 이야기에 정치권이 진정으로 귀기울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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