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경/아줌마페미니스트

배에 살이 붙어 있지 않은 적이 별로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때 만 빼고.

말랐을 때조차… 배에 약간의 지방질이 있었다. 그때 거의 육안으로도 표가 안나는 그 뱃살을 나는 몸서리치게 미워했었다. 심. 지. 어. 그 뱃살 때문에 섹스도 맘 편히 못하고 살았다. 내가 ‘어떻게 보여질까?’가 나의 즐거움, 나의 만족, 나의 쾌락을 압도했다.

지금 당시 사진을 보면 기가 막힌다.

이렇게 예쁘고 아름답고 사랑스런 존재가…자신의 얇은 뱃살 때문에 머리 속에 온통 “내 배를 보고 놀라면 어떡하지?”, “아 이렇게 누우면 배가 나와 보이는데” 이런 생각들로 복잡했다니. 가급적 배가 나와 보이지 않기 위해서 밥을 굶기도 하고, 특히 수영복을 입을 때는 며칠 전부터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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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배가 나온 것이 부끄럽지 않다. 다만 불편할 때가 있다. 바지 벨트 부위가 자꾸만 압박할 때. 그래서 고무줄 바지를 즐겨 입지만 말이다. 인도풍 옷가게에 가면 예쁜 고무줄 바지들이 많다. 때론 불룩 나온 내 배를 찬찬히 살펴보기까지 한다. 목욕탕에서. 약간 완만한 경사를 가진 배의 굴곡이 볼 만하다. 내 배 뿐이 아니다. 아줌마들의 뱃살 곡선을 ‘감상’한다.

있는 그대로. 여자들의 몸이 만들어 내는 곡선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날씬한 여자는 이쁘고, 뚱뚱한 여자는 밉다는 이상한 공식이 어느 나라 공식인지. 마른 여자가 다 이쁘지 않고 뚱뚱한 여자가 다 밉지 않으며, 모두다 제 나름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건만. 뱃살을 그냥 뱃살로 볼 게 아니라 어떤 모양의 뱃살인지 얼마나 우아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지. 어떤 피부색인지 그 나름의 생김새 대로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거의 90% 이상의 여자들 몸에 있는 뱃살이 이토록 미움받지 않아도 될텐데.

영자 씨가 살 빼기 전, 그 당당함이 좋았는데. 기자회견 때 울고 불고 하는 걸 보니까 ‘참담’ 그 자체였다. 세상이 우리 영자 씨의 뱃살을 미워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영자 씨 자신은 자기 몸을 이뻐했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나보다.

살을 뺄 때 빼더라도 붙어 있는 살을 밉게 보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한 때 배에 붙은 살 땜에 즐거움을 놓쳐 버린 시절이 있었다. 이젠 내 몸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 좋다. 목욕탕에서 만난 아줌마의 넉넉한 몸매가 아름다워 보여서 좋다.

구태여 몸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 ‘눈’을 바꾸면 된다. 사물을 보는 방식 역시 타고나는 건 아니다. ‘예쁜 것은 이런 거이야’라는 보이지 않는 강요. 이 세상엔 32-24-32 의 몸만이 아름답다는 공식이 존재한다. 이 공식에 눈을 맞추어 버리는 순간. 감옥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친구의 몸, 나의 몸, 엄마의 몸, 여자들의 몸을 이 사이즈로 재단하면서 보는 즐거움을 망치게 되는 거다. 눈에 새겨진 눈금을 지우고 편안하게 그녀의 몸을 보라. 당신의 몸을 보라. 거울에 어떤 여자가 서있나? 자꾸만 24-32-24의 눈금이 거울에 나타나면 지우라. 그녀가 갖고 있는 그녀의 사이즈를 그냥 즐기라.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여 열려라! 눈이 열리면 열릴수록 세상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아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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