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보호시설 침입한 남성

무대응으로 일관한 경찰 

‘#경찰이라니_가해자인줄’

해시태그 20만여건 확산

 

여성폭력 범죄에 대한 경찰의 무지와 안일한 대처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여성의전화(이하 여성의전화)는 지난 9일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에 침입한 가해자에 무대응으로 일관한 경찰을 강력 규탄한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단체는 지난 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경찰이라니_가해자인줄’이라는 해시태그를 생성해 캠페인을 펼쳤다. 가정폭력·성폭력 등 여성폭력 범죄에 대한 경찰의 문제적 대응사례를 고발하는 운동이었다. 해시태그가 만들어지자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성의전화는 해시태그 운동을 시작한 뒤 20만여건 이상(지난 13일 기준)의 트윗이 게시됐다고 밝혔다. 

여성들의 증언은 경찰의 후진적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경찰은 가정폭력을 ‘사소한 일’ ‘개인이 해결해야 할 일’로 여기거나 성폭력 피해자를 성적 대상화하고 ‘꽃뱀’으로 몰아가는 등 2차 가해를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가해남성의 입장을 대변하고 옹호하는 듯한 태도까지 취했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경찰이 도리어 2차 가해를 한 셈이다. 이에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감정이입하지 않는 경찰’ ‘폭력을 방관하지 않는 경찰’을 원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일 오후 7시 50분께 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에 가정폭력 가해자가 갑자기 침입했다. 그는 “자녀를 보기 전까지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며 버텼다. 이에 시설장과 활동가들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가해자가 위해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해자를 격리조치 하지 않았다. 또 여성청소년계 경찰관은 오히려 활동가들에게 가해자를 대면해 설득할 것을 종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성의전화는 “특히 경찰은 ‘나도 자녀가 있는 아빠다’ ‘자녀만 보면 돌아갈 사람이다’라고 말하며 보호시설과 가정폭력 사건에 대한 무지를 여실히 ㄷㅈ드러냈다”며 “가해자가 활동가들의 사진을 찍으며 모욕하는 사이에도 경찰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여성의전화는 지난 20일부터 “나는 OO한 경찰을 원한다” 손글씨 인증샷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경찰을 대상으로 한 가정폭력, 성폭력 인식 재교육과 부적절한 대응의 처벌강화를 청원한다’는 국민청원도 진행 중이다. 28일 기준으로 9546명이 참여했다. 이에 힘입어 단체는 오는 30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여성폭력에 대한 경찰의 부당대응을 강력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한 번 더 연다. 이날 현장에서는 참가자의 자유발언도 진행된다.

경찰의 안이한 인식, 언제까지?

여성폭력에 대한 경찰의 안이한 인식과 미흡한 대처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의 안일한 초동대처는 실제로 무고한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2015년 1월, 한 남성은 별거중인 피해여성이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의 전 남편과 자녀들을 인질로 삼아 하루 동안 감금하다 결국 살해했다. 사건 발생 4일 전부터 여성은 경찰서를 찾았다. ‘가해자 A씨에게 흉기로 허벅지를 찔렸고 예전부터 폭행을 당해왔는데 남편을 구속시킬 수 있느냐’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민원상담관은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 안일하게 처리했고 결국 여성의 전 남편과 자녀는 목숨을 잃었다.

해당사건 이후 여성의전화를 비롯한 여성단체는 “잘못된 초동대응으로 인한 가정폭력 살인사건이 대체 몇 번째인가”라며 가정폭력 가해자 체포우선주의 즉각 도입 등을 촉구했다. 아울러 이들은 △가정폭력사건에 미흡하게 대처한 관련 경찰과 책임자 처벌 △상담 조건부 기소유예 폐지 △경찰의 가정폭력 업무체계 전면 쇄신 △정부의 실효성 있는 가정폭력근절 대책 수립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2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과 대처는 그대로라는 지적이다. 

여성의전화가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지난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 등과 같은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이 최소 82명이었으며, 살인미수로 살아남은 여성은 105명에 달했다. 1년 간 적어도 187명이 남편·애인에게 살해당하거나 살해위협을 받은 것이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거나 경찰서에 접수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여성살해 현상은 더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남편이나 애인 등에 의한 여성살해 실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지만 경찰은 여전히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여성의전화는 “여성들이 경험하는 폭력은 친밀하고 일상적인 관계와 공간에서 발생한다”며 “성차별적 규범과 여성에 대한 혐오와 낙인이 여성살해의 핵심이지만, 여전히 사적이고 사소한 다툼이나 피해자의 잘못, 우발적 범죄로, 이도 안 되면 가해자를 ‘괴물’로 만들어 이해·소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성폭력 범죄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통계시스템을 구축하고 ‘여성폭력근절기본법’ 제정 등을 통해 젠더폭력 근절정책의 기본부터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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