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스타인 폭로로 시작

문화·예술·정치 전반으로

유명인 증언·SNS 확대 견인

트럼프 대통령 탄핵 주장도

 

미국 사회 전반을 뒤흔든 ‘미투(#MeToo)’ 캠페인은 타임 선정 ‘2017 올해의 인물’ 최종 후보 중 하나로 선정됐다. ‘2017 올해의 인물’ 최종 후보 홍보영상 캡처. ⓒtime.com
미국 사회 전반을 뒤흔든 ‘미투(#MeToo)’ 캠페인은 타임 선정 ‘2017 올해의 인물’ 최종 후보 중 하나로 선정됐다. ‘2017 올해의 인물’ 최종 후보 홍보영상 캡처. ⓒtime.com

할리우드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에 대한 성추행 폭로로 시작된 ‘미투(#MeToo)’ 캠페인이 미국 사회 전 분야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 9월 5일 뉴욕타임스가 웨인스타인의 성추행 혐의를 폭로한 이후 애슐리 주드, 기네스 펠트로, 안젤리나 졸리 등 유명 배우들이 자신도 피해를 입었다고 밝히면서 사건은 확대됐다. 웨인스타인 사건 이후 소셜 미디어에서 ‘미투(#MeToo)’ 캠페인은 성추행 고발이 전 분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가해자의 이름을 고발한 후에 닥칠 역풍과 남성 중심의 권력구조 속에서 침묵하던 많은 여성들이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문화예술, 언론, 정치, 경제, 법조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웨인스타인 사건 이후 여성들의 폭로 이후 문화 예술 전반에서 많은 유명 인사들의 과거가 속속 드러났다. 배우 케빈 스페이시는 1986년 당시 14세였던 배우 안소니 랩을 성추행한 사실이 폭로된 후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하며 무마하려다 더 큰 논란을 낳았고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새 시즌에서 퇴출됐다. ‘토이스토리’ 등 유명 애니메이션의 제작자로 알려진 픽사·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수석창작책임자 존 앨런 라세트도 성추문에 휘말리며 6개월 휴직이라는 회사 측의 징계를 받았다.

코미디언 루이스 C.K는 5명의 여성으로부터 성추행 의혹을 받은 후 이를 시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TV쇼 진행자인 맷 라우어와 찰리 로즈는 사내 성추행이 폭로된 후 진행 중이던 방송에서 해고되었으며 뉴욕타임스 소속 백악관 출입기자인 글렌 트러쉬도 과거 후배 기자들을 성추행했다는 의속이 제기된 후 사임했다.

최근엔 1990년대 인기 보이그룹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멤버 닉 카터의 과거 걸그룹 멤버 성추행 의혹과 미국 클래식의 거장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제임스 레바인 명예 음악감독이 오랜 기간 남성들에게 지속적인 성추행을 해왔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또 다른 충격을 안겨줬다. 카터와 레바인은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레바인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측으로부터 정직 처분을 받았다.

 

할리우드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 지난 9월 뉴욕타임스가 웨인스타인의 성추행 혐의를 폭로한 이후 애슐리 주드, 기네스 펠트로, 안젤리나 졸리 등 유명 배우들이 자신도 피해를 입었다고 밝히면서 사건은 확대됐다. ⓒAP/뉴시스
할리우드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 지난 9월 뉴욕타임스가 웨인스타인의 성추행 혐의를 폭로한 이후 애슐리 주드, 기네스 펠트로, 안젤리나 졸리 등 유명 배우들이 자신도 피해를 입었다고 밝히면서 사건은 확대됐다. ⓒAP/뉴시스

정가도 성추행 스캔들을 피해가지 못했다. 국회의원에서 전직 대통령까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정치계 성추행 스캔들은 국가적인 이슈로 부상했다.

민주당 내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현역 최다선 27선 의원인 존 코니어스(미시간) 의원은 과거 사무실 여직원을 성추행하고 해고한 후 2만7000달러의 합의금을 주고 무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파문이 커지자 낸시 펠로시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 등 당 안팎에서 사퇴 요청이 일었고 결국 코니어스는 법사위원회 간사직에서 사임하고 은퇴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버즈피드는 이번 사건처럼 의회 내에서 성추행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은밀하게 합의가 이뤄진다며 “지난 20년간 미 의회가 성추행 합의에 사용한 돈이 총 1천700만 달러(약 185억8100만 원)에 달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12월 12일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로이 무어(앨라배마)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도 10대 소녀 성추행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9명의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무어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지지 선언에 힘입은 해 일체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캘리포니아주 의회 민주당 원내총무인 라울 보카네그라 의원은 2009년 동료 여직원에게 성추행한 사실이 들어나면서 내년 선거 불출마와 원내총무직 사임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아버지 부시’로 알려진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사진 촬영 때 엉덩이를 움켜잡았다는 다수 여성들의 증언이 공개되며 논란을 빚었다. 부시 전 대통령은 고의로 한 일은 아니었다고 변명하며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처럼 정치권의 성추행 스캔들이 이어지면서 이미 다수의 여성들에게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설도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진행한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 출연자인 섬머 제르보스를 비롯해 트럼프를 고소한 여성은 13명에 달하며 이에 대한 뉴욕주 대법원의 심리가 진행 중이다.

 

미국 사회 전반을 뒤흔든 ‘미투(#MeToo)’ 캠페인은 타임 선정 ‘2017 올해의 인물’ 최종 후보 중 하나로 선정됐다. ‘2017 올해의 인물’ 최종 후보 홍보영상 캡처. ⓒtime.com
미국 사회 전반을 뒤흔든 ‘미투(#MeToo)’ 캠페인은 타임 선정 ‘2017 올해의 인물’ 최종 후보 중 하나로 선정됐다. ‘2017 올해의 인물’ 최종 후보 홍보영상 캡처. ⓒtime.com

예전과 달라진 성추행 스캔들 반응

‘사회적 정의’ 시대의 도래인가

이와 같은 남성들의 폭력적 행동에 대한 여성들의 집단 분노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00년대 초 거리 남성들의 성추행에 맞선 ‘스매시 더 매셔(Smash the Masher)’ 운동과 1970년대 여성운동가들에 의한 ‘성추행’(sexual harassment)이라는 용어의 범위 정의와 함께 직장 내 성추행 고발 운동이 그 대표적인 예다.

여성들의 반성희롱 집단행동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은 1990년대 아이타 힐 지지운동이다. 1991년 아니타 힐은 대법관 지명자 클레런스 토머스가 자신을 수년 동안 성추행했다고 증언했으나 공화당 측의 전략으로 인해 힐의 증언의 신뢰성은 공격당하고 토머스는 인준을 통과하고 말았다. 힐의 증언은 여성들에게 양성평등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고 다음 해 평등고용기회위원회에 제출된 고발장의 숫자는 6126건에서 1만578건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선거에서 하원 여성 당선자도 역사상 최대를 기록하게 됐다. 당시 여성들은 ‘나는 아니타 힐을 믿어요(I Believe Anita Hill)’이라는 문구가 쓰인 배지를 달면서 지지를 표시했고 이는 현재의 ‘미투’ 해시태그와도 이어진다.

하지만 최근의 폭로 운동은 과거와 다르다는 분석이 대두되고 있다. 에밀리 마틴 전미여성법률센터(NWLC) 부회장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개인들이 자신의 사연을 공유하는 힘이 엄청나게 커지면서 여성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능해졌고 성추행의 경험으로 인한 외로움이나 소외감도 덜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는 유명 인사들이 목소리를 낸 것도 유명인 가해자와 무명의 피해자라는 과거의 공식을 파괴하고 대중들이 이들의 증언을 신뢰하며 응원하게 된 계기가 됐다. 여기에 여성들의 정치·경제적 권한이 과거보다 강화됐고 기업들이 브랜드 평판에 신경을 쓰면서 물의를 일으킨 인물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가 이뤄진 점도 변화의 한 양상으로 볼 수 있다.

현재의 상황이 성차별을 성평등과 존중으로 대체하는 ‘사회적 정의’의 실현을 이뤄낼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라고 보는 것은 시기상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웨인스타인 사건과 미투 캠페인이 성추행·성폭력 투쟁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을 기록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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