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미영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 회장

개도국 대상 지식재산권·발명 교육 

베트남여성연맹에서 공로훈장 받아 

“한국, 지식재산권 분야 세계 중심”

생활 속 불편함 해결, 발명의 첫걸음 

“여성 지재권 늘면 국가경제도 발전” 

 

한미영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 회장은 “한국이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세계의 중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미영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 회장은 “한국이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세계의 중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실리콘 재질로 누르기만 하면 꽁꽁 언 재료도 쏙 빠지는 냉동용기, 접시 기능이 있어 국물이 흐르는 것을 막고 식재료를 분리해 담을 수 있는 도마, 친환경 장갑과 수세미를 일체형으로 만들어 손의 피로를 덜어주는 실리콘 설거지용 수세미장갑…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WWIEA) 사무실 한쪽에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생활에 편리함을 주는 발명품들이 전시돼 있다. 대부분 협회 회원들이 개발한 발명품이다. 한미영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 회장(65)은 “스팀청소기, 음식물건조기 등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제품들이 바로 생활 속에서 찾아낸 스타 발명품”이라며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발명을 할 수 있다. 발명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한 회장이 이끄는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는 여성발명인들의 국제적 네트워크이자 협력기구다. 설립과 동시에 UN 지식재산기구(WIPO)의 후원을 받으며 세계적 단체로 발돋움했다. 현재 46개국 60개 단체가 가입해 12만명 이상의 회원을 두고 있다. 한국여성발명협회 회장을 지낸 한 회장은 2008년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를 창설해 현재까지 회장을 맡고 있다. 

“여성들의 발명은 생활 속 발명이라고 해요. 살면서 불편함을 참지 마세요. 좋은 생각이 나면 바로 메모하세요. 생활의 편리함을 찾아가는 길이 바로 발명의 첫걸음이거든요. 흔히 발명을 과학자, 기술자만 할 수 있는 거창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첨단기술이 아닌 일상 속 작은 변화에서 시작되는 ‘생활발명’도 아주 실용적인 발명입니다. 사업성만 있으면 생활 속 아이디어로 실용신안 등록이 가능하고, 이런 발명으로도 여성들의 경제력을 향상시킬 수 있어요.”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총회에 참석한 한미영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 회장과 회원국 대표들.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총회에 참석한 한미영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 회장과 회원국 대표들.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

한 회장은 상품화할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왔다. 여성 발명창의교실, 대한민국 세계여성발명대회, 지식재산권(이하 지재권) 전국 순회설명회와 등을 운영해 수많은 여성이 직접 창업을 하거나 지식재산권 취득 혹은 거래화 성공하는 데 기여했다. 실제로 여성의 지식재산권 출원 건수는 10년간 127%나 대폭 증가했다. 여성 발명인의 수도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한 회장이 처음 협회를 맡을 때인 2000년 초만 해도 150명에 불과했던 여성 발명인의 수는 2013년 기준 약 4700명에 달했다. 여성 대상 지식재산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그 저변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한 회장은 “국내에는 다른 국가들에 비교해 학력이나 능력 면에서 우수한 여성 인재들이 훨씬 많다”며 “이러한 여성들이 경제 분야에 많이 진출해야 국가 경쟁력도 더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허나 실용신안 등 지식재산권을 얻으면 굳이 창업하지 않더라도 여성경제인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여성들의 지식재산권이 국가 경제 발전과 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2008년 세계여성발명대회를 열었어요. 대회 첫날 협회를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있어 회의하는데 유럽 쪽에서 반대가 있더라고요. 유럽이 아닌 한국에서 왜 이 협회를 만드느냐는 의견이었죠. 이후 지속적인 협의와 다른 참가자들의 지지로 결국 한국에서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를 만들게 됐어요. 2012년도를 끝으로 한국여성발명협회를 그만두고 현재는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만 관리하고 있어요. 여성발명협회를 계속하게 되면 애정이 아닌 애착이 생길 것 같았거든요.”

한 회장은 “한국이 세계적인 지식재산권의 중심으로 우뚝 서길 바란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는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는 매년 개발도상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창의성 개발 교육을 진행한다. 올해 5월에는 아랍 여성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기도 했다. 세계청소년올림피아드도 개최한다. 청소년 대회 중 UN이 상을 주는 유일한 대회다.

 

한미영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 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미영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 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씨드 프로젝트’(Seed Project)는 개발도상국 여성을 대상으로 지식재산권 교육과 발명 교육 등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고위공무원, 대학 총장, 오피니언 리더 등이 참여하는 일종의 정책 제안 프로젝트다. 2주간의 교육을 통해 아이디어·발명·혁신·지식재산권을 뜻하는 ‘4I‘의 씨앗을 전하고, 이들은 각 나라로 돌아가 국가 정책 수립에 주요 역할을 한다. 지식재산권은 일반적으로 특허권·실용신안권·상표권·디자인·저작권 등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국제 워크숍의 하나라고 볼 수 있죠. 2012년도에 WIPO에서 같이 하자고 손을 내밀었어요. 한국은 지식재산권 5대 강국 중 하나입니다. 그중에서도 여성발명에 대해서는 체계성이나 적극적인 면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고요. 우리 협회가 이 분야에서 공신력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교육을 제공한다면 국가 간 지식재산권 격차도 감소할 수 있다고 봤고요. 나아가 이를 통해 개발도상국 경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이 분야에서 세계의 중심이 되길 바랍니다.”

개발도상국 리더들에게 제안한 지식재산권 교육을 구현하는 단계인 ‘호프 프로젝트’(Hope project)도 진행한다. 지난 5월 한 회장이 이집트 카이로에 위치한 아랍연맹 본부에 방문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랍 여성을 위한 교육의 길을 최초로 열어준 기념비적인 행사였다. 그는 호프 프로젝트에 대해 “우리 협회가 해당 국가에 가서 2박 3일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라며 “정책 수립에 앞선 포럼이다. 보통 400명 이상의 인원이 참여한다”고 말했다.

지난 10월에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베트남여성연맹으로부터 ‘베트남여성 진흥 공로훈장’을 받았다. 베트남과는 10년 이상의 인연을 이어 왔다. “2003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갔을 때 당시 베트남 국가주석을 만나 여러 제안을 했어요. 주로 ‘여성의 창의력을 계발하라’는 내용이었죠. 이후 고위층과 협의해 ‘여성혁신의 날’을 만들었더라고요. 2년에 한 번 전국 행사를 진행하는데, 베트남여성연맹 회원들의 발명품을 전시하고 상을 주는 대회예요. 현재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요.” 여성부가 없는 베트남에서는 여성연맹이 그 일을 대신한다. 헌법기관으로 전국 지방 곳곳까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한미영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 회장과 2016 세계 청소년올림피아드 그랑프리 수상자.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
한미영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 회장과 2016 세계 청소년올림피아드 그랑프리 수상자. ⓒ세계여성발명·기업인협회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추진은 “누구나 발명을 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됐다. 이화여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주부로 지내다 금속회사인 가업을 이어받은 그 또한 흔히 생각하는 발명가다운 이력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 “처음 여성발명협회 회장을 맡았을 때 인터뷰를 하면 기자분들이 어떤 발명을 해봤냐고 묻더라고요. 특별한 게 없어 부끄러웠죠. 이후에 제 생각을 바탕으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등록을 진행했죠. 실용시안을 받고 특허 출원도 하고요.” 그의 발명품 또한 주로 생활발명에 속한다. 렌즈, 안경테 등을 선택해서 만드는 ‘조립식 안경’ 좁은 싱크대에 걸쳐 사용하는 설거지 망, 먼지 안 나는 티슈 곽 등이다.

그는 오빠 넷을 둔 막내딸로 살아왔다. “어릴 땐 오빠랑 놀아야 되니까 공도 차고 그랬죠. 오빠들이 시키는 일이 있으면 군말 없이 바로 하고요. 그런 제가 여자중학교에 입학하니 적응도 잘 못 하고 어색했죠. 남자 학생 한 명을 여자중학교에 데려다 놓았다고 할까요? 한 친구는 저더러 ”얘, 너는 왜 우리를 부를 때 얘라고 안하고 야라고 하니?“하더라고요. 같은 여성인데도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할지 어려웠어요. 그런 제가 50년이 흘러 여성단체 회장을 맡고 있으니 신기한 일이죠.“

한 회장은 “우연한 계기로 여성과 발명을 업으로 삼는 단체에 발을 들이게 됐지만 이제는 평생의 소명이 됐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예전에는 단순히 여성에 집중해왔다면, 이제는 국내 나아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어떻게 창의적인 인재를 발굴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한 사람으로 태어나 세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면 그보다 더 뜻깊은 일이 있을까요? 여성들의 지식재산권 향상과 국가별 경제 발전에도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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