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 강한 반대에

‘양성평등’ 쓰기로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017년이 가고 2018년을 맞는 이 시점에 성평등정책의 새로운 청사진이 제시됐다. ‘페미니스트’를 자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으로 새롭게 선보일 성평등정책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젠더폭력 근절’을 정책 전면에 내세우고 ‘여성 장관 30%’ 약속을 지킨 대통령 아니던가. 하지만 향후 5년간 추진될 ‘성평등’정책의 방향은 ‘양성평등’정책으로 결론 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여성가족부가 종교계의 반발에 무릎을 꿇었다.’ 20일 발표된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18~2022년)을 두고 여성계에서 나오는 말이다. 2차 기본계획은 11월 16일 열린 공청회에서 발표한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안과는 방향부터 달랐다. 당초 여가부는 2차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양성평등’ 대신 ‘성평등’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기본계획의 방향이 담긴 비전은 ‘함께 하는 성평등, 지속가능한 민주사회’였다. 공청회에 참여한 대다수 전문가들은 1차 기본계획에 담겼던 ‘여성과 남성’이라는 서술을 삭제하고 ‘양성평등’ 대신 ‘성평등’이라는 용어로 포괄적으로 기술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최종 확정된 비전은 ‘여성과 남성이 함께 만드는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민주사회’다. 여가부는 ‘성평등’을 포기하고 ‘여성과 남성’을 택한 것이다.

여가부가 다시 ‘양성평등’으로 용어를 바꾼 이유는 종교계 거센 반발 때문이다. 이들은 ‘성평등’ 용어 사용을 저지해야 한다며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공청회를 무산시켰고, 앞서 성평등 개헌에 반대하며 헌법개정 국민대토론회장에서 토론회 진행을 방해했다. 이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성평등’ 용어 사용은 동성애·동성혼을 합법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가부는 ‘성평등’과 ‘양성평등’ 모두 젠더 이퀄리티(gender equality)를 번역한 것이기에 두 용어에 별 차이가 없다면서, ‘성평등’과 ‘양성평등’을 동시에 쓰겠다고 밝혔다. 용어 정의가 다르지 않다면 정책 전문가와 여성단체가 요구해온 ‘성평등’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여가부는 비전부터 기본계획 목표와 대과제에 썼던 ‘성평등’을 지우고 그 자리에 ‘여성과 남성’을 채워 넣었다.

여가부가 말한대로 법률상 ‘양성평등’과 ‘성평등’ 용어의 뜻이 다르지 않더라도 문제는 남아 있다. 일부에선 ‘양성평등’을 특정 집단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 담긴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양성평등’은 2014년 5월 ‘여성발전기본법’이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전면 개정되면서 정책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여성정책이 양성평등정책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남성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왔고 실제로 정책 현장에선 여성과 남성의 양적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식으로 오용했다. 성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한 성평등정책이 오히려 성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여기서 나온다.

성평등정책은 우리사회의 성별로 인한 불평등과 차별, 혐오와 배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수단이다. 성평등정책 총괄 부서인 여성가족부의 제1 책무가 성별로 인한 불평등과 차별, 혐오와 배제를 해결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가부는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왜곡하고 ‘양성평등’ 용어를 오용하며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이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했다. 대선 공약이던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는 점점 미뤄지고, 성평등 개헌도 기본계획과 마찬가지로 ‘여성과 남성 개헌’으로 후퇴할 것이라는 말이 들린다. 시민 촛불로 탄생한 정부가 여성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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