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기독교계 항의 이어지자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 

‘성평등’ 대신 ‘양성평등’ 쓰기로 한 여가부 

여성단체들 20일 광화문서 긴급 항의 기자회견

“국회와 정부, 흔들림 없이 성평등 개헌·정책 추진하라”

 

여성가족부가 보수 단체 등의 압력으로 ‘성평등’ 용어 대신 ‘양성평등’을 사용하기로 해 비난 여론이 이는 가운데, 20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성평등’ 정책 추진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은 한국여성단체연합 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 녹색당,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장애여성공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한국여성정치연구소가 공동 주최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제공
여성가족부가 보수 단체 등의 압력으로 ‘성평등’ 용어 대신 ‘양성평등’을 사용하기로 해 비난 여론이 이는 가운데, 20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성평등’ 정책 추진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은 한국여성단체연합 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 녹색당,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장애여성공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한국여성정치연구소가 공동 주최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제공

앞으로 5년간 시행될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18~2022)에서 여성가족부가 ‘성평등’ 용어 대신 ‘양성평등’을 사용한다. 새 정책 청사진을 짜면서 ‘성평등’을 전면에 내세웠던 정부가, 보수 기독교계의 반발에 결국 한발 뒤로 물러난 셈이다. 

여성·성소수자·인권단체의 항의가 빗발쳤다. ‘양성평등’ 용어는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차별을 용인하며, 성별고정관념과 여성과 남성 간 대결/대칭구도를 강화해 다양한 불평등을 외면함으로써 정책을 후퇴시킨다”는 비판이 높다. 

정부의 2차 기본계획 발표일인 20일, ‘성평등’ 정책 추진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도 열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 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 녹색당,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장애여성공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한국여성정치연구소가 공동 주최했다. 

 

여성가족부가 보수 단체 등의 압력으로 ‘성평등’ 용어 대신 ‘양성평등’을 사용하기로 해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여가부가 20일 발표한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18~2022)을 보면, ‘성평등’을 썼던 원안 대신 ‘여성과 남성’으로 수정됐다. ⓒ여성가족부
여성가족부가 보수 단체 등의 압력으로 ‘성평등’ 용어 대신 ‘양성평등’을 사용하기로 해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여가부가 20일 발표한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18~2022)을 보면, ‘성평등’을 썼던 원안 대신 ‘여성과 남성’으로 수정됐다. ⓒ여성가족부

여성계 인사들은 여가부에 대한 실망을 금치 못했다. “양성평등은 성평등과 절대 함께 갈 수 없다. 지난 10년간 꾸준히 성차별을 조장하는 ‘양성평등’을 ‘성차별’로 변경해야 한다고 여가부에 의견서를 냈다. 개념을 분명히 아는 사람들이 어떻게 혼용한다고 주장하는가?” (김영순 여연 공동대표) “혐오 세력 눈치 보기에 급급해 허무하게 성평등 가치를 부정한 여가부의 행태는 정의롭지 못하며 실망스럽다” (고미경 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이 문제를 성소수자 차별 문제만으로도 볼 수 없다. 성 불평등 해소 정책이, 성을 둘로 구분해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이미 효율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성’은 생물학적 성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소수자를 포함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낳는 사회적 조건들이 여성에 대한 차별을 낳는 조건들과 동떨어지지 않기에 문제”라고 지적했다. 

 

20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성평등’ 정책 추진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제공
20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성평등’ 정책 추진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제공

최근 국회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달 말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등 일부 의원들은 헌법 개정안의 ‘성평등’을 ‘양성평등’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한목소리로 “국회와 정부가 촛불 시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일부 혐오세력의 요구를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매우 우려스럽다”고 했다. 이종걸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성평등이 성별로 인한 혐오와 차별 해소에 꼭 필요하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상식이다. 한국은 이를 외면했다”며 “참여정부 때 차별금지법 제정에 실패한 책임으로부터 문재인 정부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나영 집행위원장은 2015년 여가부가 대전광역시의 성평등조례에서 성소수자 관련 조항을 삭제하도록 했던 사건을 언급하며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수준을 넘어서길 바랐지만 다를 바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아직 늦지 않았다. 촛불의 요구를 정치에 반영하고 페미니스트 대통령 선언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동성애 혐오를 선도하는 단체들에게 분명한 입장을 밝혀라. 그럴 때 박근혜 정부와 다른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 소속 이한본 변호사는 “하나의 차별을 용인하면 다른 차별을 용인하게 되며, 결국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가 된다”며 “민변 회원이셨던 문재인 대통령께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행동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20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성평등’ 정책 추진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제공
20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성평등’ 정책 추진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제공

소수자 혐오 논리로 무장한 보수 기독교계에 대한 날 선 비판도 제기됐다. 정영훈 한국여성연구소장은 “기독교인들은 성소수자를 악마화하는 방식으로 내부의 문제를 숨기려 한다. 세금부터 내고, 목사 세습 문제, 교회 내 성범죄, 여성목사 안수 문제 등부터 해결하라. 가부장제에 물든 교회부터 개혁하라. 그런 다음 양성평등을 얘기하라”고 일갈했다. 

정 소장은 “언제까지 ‘개독’ 조롱을 받으며 살 것인가. 차별과 배제라는 시대착오적 망상을 종교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을 언제까지 방관할 테냐”라고 반문하며 “타고난 성(sex)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생물학적 결정론이 인류 역사 내내 차별의 근거로 사용된 것을 왜 모르나. 아무 죄 없이 여자, 유색인, 동성애자로 태어난 사람들을 차별·혐오·배제함으로써 실천하는 당신들의 ‘양성평등’은 틀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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