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에서 강제 불임수술 당한

지적장애 장애인 15년간 66명

‘낙태죄’가 존재하는 한

정상성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재생산 건강·권리 위협 받아

 

지난해 9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 행사에 참석한 여성이 피켓을 들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해 9월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 행사에 참석한 여성이 피켓을 들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고대 그리스의 일화다. “사람들은 어린아이를 씻기고, 탯줄을 자르고 아버지에게 데려갈 것이다. 아버지는 홀 한가운데에 서 있을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 앞의 바닥에 눕혀질 것이다. 이 순간 몇 초 사이에 아주 오래된 고대의 의식에 따라서 어린아이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만약에 아버지가 몸을 굽혀 아이를 안아 올리고 모든 친척들의 이마 높이까지 아이를 들어 올린다면, 아이를 가족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반대로 아버지가 무표정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알베르토 안젤라, 『고대 로마인의 24시간』, 까치, 2012)

고대 그리스인들이 아이를 거부하는 이유는 다양했는데, 키워야 할 아이가 너무 많거나, 강간이나 간통으로 잉태됐거나, 분명한 장애를 안고 태어난 경우 등이다. 현대인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도 이런 경우엔 아이가 사회에 나오기까지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낙태’는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여성의 이기적인 선택이며 불법적인 행위로 여겨진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임신중절이 권유·허용된 역사와 사유를 살펴보면, 사회가 어떤 사람을 구성원으로 수용할지 배제할지 구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낙태죄’임을 알 수 있다. 

국가는 다양한 형태로 사회 구성원을 선별하고자 했다. 1960~70년대에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산아제한 정책이 진행됐고, 임신중절이 일종의 피임 방법으로 권유됐다. 장애인이라는 특정 집단에 한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강제적으로 임신중절 시술을 하기도 했다. 장애인 거주시설에서는 정부의 협조 아래에 시술이 시행됐다. 1999년 김홍식 한나라당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1983년부터 1997년까지 전국 68개 시설에서 강제 불임수술을 당한 지적장애인은 총 66명(남성 40명, 여성 26명)이었다. 강제 불임수술은 장애인 거주시설과 해당 행정기관, 보건소, 대한가족계획협회(현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등 정부의 공식 기관과의 협조를 통해 이뤄졌다. 

강제 불임수술, 강제 임신중절 등 극악한 형태로 이뤄지지 않을 뿐, 시설 거주 장애인들의 재생산권을 통제하는 일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장애인들은 ‘시설’이라는 고립적이고 통제적인 공간에서 살면서 자위도, 섹스도, 임신도, 출산도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건물 한두 채에서 100여 명이 단체생활을 한다. 규모 10평을 넘지 않는 방에서 5~10명이 모든 일상을 같이 보낸다. 개인공간이 없는 환경에서 성과 재생산 권리를 확보하고 실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는 비장애 중심 사회가 장애인을 공적 영역으로부터 배제, 격리함으로써 시민권을 박탈하고 재생산권을 통제하는 일종의 배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가 장애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동시에 그들의 재생산을 통제함으로써, 장애를 가진 시민이 이 사회에 더 생겨나지 않도록 선별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낙태죄가 존재하는 한, 장애인을 비롯해 정상성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성적 및 재생산 건강과 권리는 위협받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비장애 이성애 성인 남성 중심의 한국사회에서 장애여성, 청소녀, 비혼여성, 여성 노숙인, HIV 여성 감염인, 가난한 여성, 저학력 여성, 비이성애 관계에 있는 여성들의 성적 실천을 통제하고자 하며, 이들이 임신했을 때 쉽게 중절을 권한다. 이런 차별적인 행태는 이들의 안전하고 건강한 임신과 출산을 어렵게 하며, 이들이 ‘무책임한’, ‘낳지 말아야 할 사람을 낳는’ 사람들이라는 낙인을 강화한다. 국가가 낙태죄를 통해 태어나도 되는 존재 혹은 태어나선 안 되는 존재로 시민을 선별하는 한, 소수자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계속될 것이다. 

장애인에 대해 강제로 임신중절을 실시했던, 모자보건법 14조라는 예외 조항을 통해 우생학적 사유 또는 유전학적인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누군가에게만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낙태죄를 통해 정상적인 시민을 선별하여 탄생시키고자 하는 국가는 임신중절을 죄라고 말할 수 없다. ‘낙태’ 자체는 죄가 될 수 없다. 국가는 임신중절 범죄화를 멈추고, 사회 구성원들의 안전하고 건강한 성적 및 재생산 권리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