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음악인 오지은 씨 ⓒ유어썸머 제공
작가·음악인 오지은 씨 ⓒ유어썸머 제공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왜 맨날 사랑 얘기만 하세요?” 질문자는 중년의 남성 평론가였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만약 머틀리 크루(Mötley Crüe) 같은 밴드가 맥주 신나게 마시고 예쁜 여자들이랑 놀자! 이런 주제로 몇십년 간 음악을 한다면 어떻게 보시겠어요(머틀리 크루는 실제로 그런 음악을 쭉 해 온 밴드다)?” “아 그럼 멋있죠.” “왜 그건 멋있고, 제 음악의 주제는 의문거리가 되죠?”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창작자들에게는 각자 고유의 테마가 있다. 그것은 평화일 수도, 기쁨일 수도 있고 삶의 아이러니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엔 사랑이다. 사랑이 주는 다채로운 감정, 예를 들어 분노, 체념, 기쁨, 절망 같은 감정을 재료로 음악을 만들고 있다. 왜 사랑에 대해 노래하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쉽지 않다. 창작자가 테마를 선택한다기보다 가지고 태어나는 편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도 이런 질문을 받을까? 그의 작품은 내 기준으로는 대부분 사랑 노래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 심오한 질문이 갈 것 같고, 질문을 받는대도 이런(?) 뉘앙스는 아닐 것 같다. 

왜 같은 창작자의 테마 중에도 ‘여성’이 하는 ‘사랑’ 노래는 폄하 당하는 기분이 들까. 한때는 내가 예민한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많이 들으신 말이겠지만) 페미니즘을 알고부터 이는 전 세계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여성이 만든 창작품은 주제가 무엇이든, 어떤 결을 가졌든 ‘여자가 만든 것’으로 무리 지어지고 한계지어지고 폄하 당한다. 사랑 얘기도 남성이 하면 하나의 테마일 뿐인데, 여성이 하면 ‘여자가 하는 사랑 얘기’ 로 묶여 폄하 당한다. 예전에 문학계에서는 ‘여류’라는 분명한 멸칭을 썼다. 여류 소설가, 여류 시인이라는 말은 요즘 거의 쓰이지 않지만, 음악계에선 아직도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말이 쓰인다. 전국의 싱어송라이터들을 조사해 보면 여성이 더 많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전형적인 여자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이라는 이상한 기준으로 음악을 가른다. 한 스테레오타입을 떠올려보자. 긴 머리에 어쿠스틱 기타 하나 들고 일상의 소소함을 노래하는 여성 뮤지션. 실제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런 이미지로 이득을 보지 않나요?’ 하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마치 자애의 표상처럼 숭배되기도 한다. 단지 사람일 뿐인데 누군가의 어머니나 누이, 또는 여신으로 대상화된다. 혐오와 숭배는 맞닿아있다. 숭배되는 동시에 ‘진부한 타입’이라며 이해받을 기회를 박탈당하기도 한다. 

2000년대 후반 많은 여성 뮤지션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미디어는 그들에게 ‘홍대 여신’이라는 타이틀을 붙였고, 그 또한 은밀한 멸칭이 됐다. 록 음악계에서 여성의 등장을 ‘진정한 록의 정신을 해치는 일’로 받아들인 역사는 길다(쓰면서도 유치해서 못 견디겠다. 진정한 록이라니). 누군가는 ‘홍대가 오염됐다’고 했다. 여성 뮤지션들은 음악적으로 이해받기보다 외모나 화제성 등으로 소비됐다. 여성 뮤지션들 덕분에 한국 인디씬의 리스너는 늘었지만, 그 공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마녀’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너무나 전형적이다. 여신 또는 마녀의 프레임은 한국 사회가 여성 창작자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창작자 고유의 인간으로서의 개성을 똑바로 봐주지 않는 것이다. ‘홍대 여신’이라 불렸던 그들이 남성 뮤지션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세상은 그들이 여성이라 쉽게 주목받고 편하게 음악을 했을 것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내 생각은 반대다. 오해받고 숭배되고 내쳐지는 것은 뮤지션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지지가 아니다. 나도 ‘마녀라고 하시더니 음악이 그렇지 않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당연하다. 나는 마녀가 아닌 그냥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많은 경우 그냥 오해와 편견의 단계에서 끝이 난다. 

한국대중음악상이라는 시상식이 있다. 한 해 가장 주목할 만한 음악을 한 뮤지션을 뽑는 행사다. 어느 날 호기심에 2007년부터 2017년까지의 대상, 즉 종합분야의 올해의 음반을 찾아봤다. 

2007년 스왈로우

2008년 이적

2009년 언니네이발관

2010년 서울전자음악단

2011년 가리온

2012년 장기하와 얼굴들 

2013년 3호선버터플라이*

2014년 윤영배

2015년 로로스*

2016년 이센스 

2017년 조동진 

*표를 한 팀에만 여성 멤버가 있고 나머지는 전부 남성이다.

과연 여성이 남성보다 음악을 못해서 여성 수상자가 없는 걸까. 한국 대중 음악상 심사위원은 공교롭게도 대부분 남성이다. 여성의 목소리, 여성의 서사는 오해받고 왜곡된 채,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내 생각은 과연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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