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변호사의 이러시면 안됩니다 - 7]

반복되는 ‘그 밥에 그 나물’ 사건들 속 피해자들의 목소리 반가워

폭력에 단호히 저항하고 피해자의 호소에 귀 기울이는

작은 노력이 결국 결실 맺을 것

 

현대판으로 재해석된 메두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의’ 한 장면.
현대판으로 재해석된 메두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의’ 한 장면.

새해가 밝았다. 정말이지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또 한 번 지나갔다. 언 몸을 촛불로 녹여야 했던 기나긴 겨울을 이겨내고 마침내 봄을 맞이했는가도 싶었지만, ‘한샘 성폭력’이니, ‘현대카드 성폭력’이니, 현직 판사의 몰카 범행이니, 여고 교사들의 성추행 사건이니 하는 당혹스런 소식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들려왔다. 참담한 마음을 감추고 장밋빛 새해를 이야기하고 싶지만, 아마 2018년 새해에도 우리는 기기묘묘하고도 기상천외한 성희롱·성폭력 뉴스들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냉정히 예상해 보건대 분명히 그러할 것이다. 과연 우리가 기꺼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새해를 기대할, 비록 많이 미흡하나마 자그마한 희망을 가져 볼 만한 자격이 우리들에게는 있다고 믿는다. 지난 한 해,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년이었지만 필자는 그 속에서 희망의 단초들을 분명히 보았다.

성희롱·성폭력 사안을 적절히 그리고 신속히 처리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분주하게 노력하며 진지하게 고민하던 현장 실무자들과 중간 관리자들을 만났다. 사건 발생 이후 그 기관 내 최고 결정권자인 기관장 주재 하에 전 직원을 대상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성희롱 진정 사건 실례를 토대로 성희롱·성폭력 재발방지를 위한 자체 교육자료까지 직접 만들어 배포하였단다. 교육자료 제작에 필자가 자문의견을 제공했었기에 단언할 수 있다. 시쳇말로 하자면, ‘이거 정말 실화다.’

이렇게까지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하려 하다보면 혹여 나중에 절차적 하자에 관한 다툼이 생길 소지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여, 오히려 필자를 속으로 애태우게 만들기도 했을 정도로 적극적인 문제해결 의지를 보였던 어떤 기관도 있었다. 다른 모든 일을 제쳐두고 열과 성을 다하여 며칠에 걸쳐 피해자, 가해자, 참고인들에 대한 진술조사를 진행하던 이 기관의 성희롱 고충상담원들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기관장의 적극적 관리·감독 없이는 성희롱·성폭력 등 폭력예방교육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며, 한 명의 이탈자도 없는 교육이수를 위해 기관장이 직접 현장에서 ‘진두지휘’ 하면서 100%의 고위직 교육 이수율을 달성해 낸 어느 기관의 예도 필자는 지난 해에 보았다. 그 멋진 열정에 갈채를!

종종 울리는 자문상담 전화와 전자우편들에, 어쩌면 이렇게도 비슷비슷할까 싶으리만치 정형적으로 반복되는 ‘그 밥에 그 나물’ 사건들 속에서 가끔은 짜증이 앞설 때도 있지만, 그래도 필자는 그 연락들이 너무나도 반갑다. 이토록 보석 같이 귀한 사람들의 선한 노력 하나하나가 우리들 사이에 숨어있음을 실증하기에 정말이지 반갑다. 확신하건대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질 자격이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의 괴물 메두사는 본래 괴물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테나 신전의 사제였던 메두사가 포세이돈과 정을 통했기에 아테나의 분노를 샀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포세이돈으로부터 강간을 당했는데 그로 말미암아 아테나로부터 저주를 받아 괴물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둘 다 이상하기는 매한가지지만, 두 번째 이야기에 더욱 눈길이 가고 마음이 못내 무거워진다. 기시감 때문일까? 성폭력 피해자가 도리어 괴물로 변해야만 했다고?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야기가 아닌가!

기억해야 마땅하다. 메두사는 괴물이어서는 안 되는 여성이었다. 메두사를 괴물로 만든 것은 결코 메두사 자신이 아니었다는 것. 만일 누군가가 반드시 괴물이 되어야 할 운명이었다면 그 누군가는 메두사가 아닌 가해자여야 했었다는 것. 2017년 한 해 동안만 해도, 이 사회 곳곳에서 또한 온 세상 도처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수의 메두사가 한을 품어야만 했을까.

새해, 우리 더는 슬프고도 안타까운 메두사 이야기를 우리 주변에서 다시 듣게 되지 않기만을 소망해 본다. 폭력에 단호히 저항하고 피해자의 호소에 귀 기울이는 귀하디 귀한 작은 노력 하나하나가 모이게 된다면 언젠가는 우리의 바람도 복된 결실을 맺게 되리라 믿는다. 판도라의 상자 속 마지막 남아있던 것이 작은 희망이었듯, 우리들의 새해 소망도 우리와 늘 함께 하기를.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