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EBS ‘까칠남녀’, 반동성애 세력 압박에 굴복하나

페미니즘 이슈와 논쟁 다루는 시도 계속되길

오래 운동하려면 페미니즘으로 먹고살 방법 찾아야

 

지난달 25일부터 두 편 연속 방영된 EBS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 방송의 한 장면. 성소수자들이 직접 출연해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EBS ‘까칠남녀’ 영상 캡쳐
지난달 25일부터 두 편 연속 방영된 EBS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 방송의 한 장면. 성소수자들이 직접 출연해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EBS ‘까칠남녀’ 영상 캡쳐

이현재 교수는 EBS 젠더 토크쇼 ‘까칠남녀’의 고정 패널이다. 페미니스트·성소수자 등 다양한 출연자들이 젠더 이슈를 논하는 ‘까칠남녀’는 시작부터 반향을 일으켰다. 최근 성소수자 특집 방송을 선보여 반동성애 세력의 거센 항의에 시달리고 있다. 프로그램 폐지·EBS 사장 퇴진 요구 시위가 2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까칠남녀’ CP(Chief Producer)가 고정 패널인 은하선 작가에게 지난 14일 일방적으로 하차를 통보했다. 구체적인 사유는 밝히지 않아 문제가 됐다. 은 씨는 양성애자로 성소수자 특집 방송에도 출연한 바 있다. SNS에선 “EBS가 반동성애 세력의 공격에 굴복하는 거냐” “혐오 공격이 공영방송에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한 전례로 남을 것”이라는 우려와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이 교수도 같은 우려를 표했다.

- ‘까칠남녀’ CP가 은하선 작가에게 갑작스러운 하차를 통보해 파장이 거센데요.

“구체적인 하차 이유를 말하지 않는 한 ‘외압에 굴복했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녹화 2회 분량만을 남겨두고 모호한 사유로 하차를 요구한다? 그것도 정영진 씨와 같은 날 하차?(편집자주: 정 씨는 지난해 11월 한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까칠남녀’ 출연진을 비난해 시청자들의 하차 요구를 받았다. 이 교수에 따르면 ‘까칠남녀’ 제작진은 정 씨를 하차시키기로 했다.) 우스운 모양이 돼 버렸죠. 완전히 실수한 거예요.”

- 프로그램이 다음 달 종영하는 것도 사실 외압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는데요.

“워낙 시끄러우니까 시즌1을 끝낸 후 약간 쉬어가려 했던 거예요. 조금 쉬고 바로 시즌 2를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있었습니다. 이런 방송이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고 봐요. 특히 성소수자 특집은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고, 제작진이 많은 것을 걸고 밀어붙인 방송이었어요. 우리 PD, 작가들은 다같이 싸워왔고 끝까지 (방송을) 지키려고 했는데.... 지금 상황은 굉장히 당황스럽습니다.”

 

지난 2일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이현재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2일 여성신문과 인터뷰 중인 이현재 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현재 교수는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의 대표로도 종횡무진 활동하고 있다. 여이연은 여성들의 역사를 다시 쓰고 대안문화를 만들며 페미니즘 시각에서 새로운 시대의 이론적 패러다임을 만들어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여성연구자들의 모임이다. 지난해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회원은 150여 명이고 해마다 두 번 저널 ‘여/성이론’을 발간한다. 매년 여름과 겨울 강좌를 연다. 학술대회와 콜로키움도 연다.

 

- 여이연이 올해 21돌을 맞았습니다. 장수 비결이 뭔가요.

“여이연은 원칙적으로 학력,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에요. 제도권 밖 목소리들을 대변하거나 담아왔고, 현장에 근거한 이론을 펼치는 게 우리의 특징이죠. 성노동 담론처럼, 주류 학계·활동가들과 대립각을 세우는 이야기도 펼칠 수 있고, 과감한 이론도 실험할 수 있는 곳이죠. 혹자는 여이연이 통일된 입장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내부의 목소리는 다양합니다. 역설적으로 그게 여태 명맥을 유지한 비결입니다. 여이연이 활발히 활동하는 단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다른 재야 학술단체들은 다 우리보다 열심히 해서 망한 거에요(웃음).”

- 여이연이 이론적 논의를 교환하는 장을 넘어, 최신 이슈와 논쟁을 적극적으로 분석하고 방향을 제시해주길 바란다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그렇습니다. 그동안 여러 행사에서 최신 이슈와 논쟁을 최대한 반영하고자 했습니다. 가령 이번 20주년 학술행사에서는 한우리와 홍혜은이 최신 페미니즘 논쟁을 분석해서 발표했어요. 겨울에는 교차성 페미니즘에 대한 강좌도 합니다. 감사하게도 여이연을 도와주시고 찾아 주시는 분들이 적지 않아요. 지난달 연 학술대회엔 130명 정도가 참석했고, 20주년 기념 크라우드 펀딩과 후원금을 합해 2000만원 정도를 모았어요. 

후속세대 양성이 힘들어서 고민입니다. 이론을 생성하는 지난한 과정에 참여할 이들이 매우 적어요. 2030 세대들은 이게 참 가난한 직업이라는 걸 알거든요. 취업도 힘든데 이것까지 한다는 건 목숨 건 행위일 수도 있고요. 그래도 참여하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여이연이 ‘판’을 깔아드립니다.”

- “가난”해도 “목숨 걸고” 활동을 이어가는 뉴 페미니스트들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멀리 보고 가시길,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인류 역사 내내 이어진 억압이 하루아침에 없어질까요? 법을 만든다고 사라질까요? 버티려면 자금이 문제인데, 페미니즘으로 먹고 살 방법을 모색하고 시도할 필요도 있어요. 희생정신 운운하며 구성원들을 갈아 넣어선 안 되잖아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여야죠. 순수성에 너무 매몰되지 않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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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womennews.co.kr/news/129036

이현재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인정 이론과 페미니즘을 접목시킨 논문으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HK 교수로 재직 중이며,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여성혐오 그 후, 우리가 만난 비체들』(들녘), 『여성의 정체성』(책세상), 『사랑 이후의 도시』(라움)(공저), 『현대 페미니즘의 테제들』 (사월의 책)(공저) 등이 있다. 공역서로 악셀 호네트『인정투쟁』, 깁슨-그레엄『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여성주의 정치경제 비판』, 낸시 프레이저 외『불평등과 모욕을 넘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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