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무용·오페라·뮤지컬

3000여개 공연 한자리서

즐기는 ‘에든버러 축제’

오전 9시부터 자정까지

쉴새 없이 공연 만끽

 

8월의 에든버러는 쾌청했다. 중앙역 노릇을 하는 웨이벌리 역에 내리니 하늘은 서울의 가을처럼 높고 파랬다. 공기는 싸아했다. 열흘 전 떠나온 아비뇽은 뜨거운 태양빛 아래 이글거렸는데 북위 55°56′58″ 북녘 도시 에든버러는 낮 최고 기온이 섭씨 12도에서 25도, 비가 뿌리다 맑게 개고, 한낮에도 가벼운 파카를 걸쳐야할 정도다. 2017년 에든버러 축제는 창설 70주년을 맞아 ‘47년 정신(Spirit of ’47)을 주제로 공식 부문에서 연극, 무용, 오페라, 클래식 음악회가 100여개, 비공식 부문인 에든버러 프린지(Fringe)에 3300개 공연이 참가하는 사상 최고 기록을 냈다.

에든버러는 아서왕 전설과 스코틀랜드인들의 저항의 역사, 문학이 한 데 곰삭은 문화도시다. 『롭 로이』 『아이반호』 같은 역사소설로 스코틀랜드 정신을 구축한 월터 스콧경, 『보물섬』의 로버트 스티븐슨, 「붉고 붉은 장미」 「올드 랭 사인」으로 이름난 시인 로버트 번스 등이 모두 이곳 출신. 요즘은 『해리 포터』의 조앤 롤링이 단연 최고 작가다.

웨이벌리 역은 에든버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프린세스(Princes) 스트리트와 에든버러 성에 이르는 유서 깊은 마켓 스트리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버진철도(Virgin Train)가 운행하는 쾌속 열차로 런던에서 약 650km, 4시간 반 정도 걸린다. 개막 첫 주에 웨이벌리 역을 통해 에든버러에 도착한 여행객이 34만명에 달했다고 현지 언론도 흥분했다. 인구 50만명의 에든버러가 페스티벌 기간에는 100만명 넘는 관객으로 북적인다.

숙소에 짐을 부린 뒤 바로 페스티벌 현장으로 달려갔다. 본부인 더 허브(The Hub)와 페스티벌 극장은 아비뇽에 비해 훨씬 화려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차분했다. 처음 보러간 작품은 올해 에든버러 페스티벌 공식 부문에서 가장 공들인 작품이라는 ‘디바이드’. 1~2부 합해 7시간이 넘는 공연이 장황한 대사와 밋밋한 연출로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그에 비해 호주 여가수 미우미우의 ‘인어공주’는 정말 재미있었다. 캐버레 쇼 형식으로 진행된 공연에 맞춰, 공연장도 술과 음료수를 가지고 들어가는 캐버레 스타일. 인어공주가 이상적인 남자-매혹적으로 프랑스어를 하는 육체파 남자-를 그리지만, 환상 속의 남자는 엉망진창이다. ‘여성 주체’가 뚜렷한, 그러나 표현 방식은 여성을 ‘볼 것’으로 여기는 모순이 더 큰 재미를 자아냈다.

4월에 일찌감치 예약해뒀던 에어비앤비((Airbnb)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공연장이 몰려있는 시내에서 버스로 20분쯤 걸리는 주택가였는데, 옛 수녀원을 개조한 돌집과 새로 이어 지은 2층집이 잘 어울렸다. 혼자살고 있는 70대 여성 로즈마리가 2층 방 하나를 내줬다. 1층 부엌에 아침을 차려줘서 열흘 넘게 느긋한 아침을 즐겼다. 로즈마리는 자기도 손주들과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을 즐기고 있며, 프린지 공원을 꼭 가서 즐기라고 권했다. 우리 모녀는 진짜 괜찮은 손님이었을 것이다. 아침 9시면 집을 나가서 밤 12시에야 들어왔으니! 그런데 진짜 추웠다. 돌돌 말면 한 주먹 크기인 U사의 얇은 거위털 파카를 한 벌씩 가져갔는데, 그건 내가 두 벌 겹쳐 입고, 딸에겐 스코틀랜드 풍으로 두툼한 걸 한 벌 사줬다. 몸이 좀 따뜻해지니 비로소 프린지 공연장과 공원의 흥겨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자유 참가작이 뜨겁게 경쟁하는 프린지는 주민 센터, 교회, 카페, 술집, 식당, 대학 강의실 등 무대로 쓸 만한 곳이면 모두 극장으로 차출한다. 올해 프린지 공연에서 작품성으로 가장 호평 받은 공연은 마임극 ‘망각의 본질’(the nature of forgetting)이었다. 플레잔스 코트야드라는 조그만 블랙박스 극장에서 공연한 이 작품은 한 40대 남성의 희미해지는 기억과 혼돈을 늘어진 녹음테이프 같은 음악, 슬로우모션/고속모션 같은 마임으로 기막히게 표현했다. 최대 흥행작은 소극장 뮤지컬 ‘왕좌의 게임’(Thrones!)으로, 인기 TV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에 열광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마치 초등학교 학예회 하듯 드라마 주인공 역할 놀이를 하는 뮤지컬이다. 에든버러 대학 계단식 강의실을 이용한 300석 규모 공연장은 전석 매진. 밤 11시 특별 공연 역시 매진! 딸과 나는 기나긴 줄을 서서 이들 작품을 봤다. 사이사이 점심, 저녁은 극장 주변에 조성된 공원의 간이식당에서 때로는 와인을, 때로는 맥주를 곁들여 핫도그과 피시앤칩스로 때웠다.

자유롭게 축제를 즐기려면 프린지 공연장이 최고다. 에든버러 프린지는 페스티벌 첫해인 1947년 공식 참가작으로 초청받지 못한 연극인들이 “어디 누가 더 잘하나 보자!” 하고 따로 만든 비공식 축제다. 프린지는 철저히 ‘적자생존’ 원리가 작동하는 공연 시장이다. 어셈블리, 길디드 벌룬, 플레전스, 언더벨리 등 4개 메이저 공연기획사가 에든버러 전역에 공연장을 마련하고 전 세계에서 참가 신청을 받는다. 시내 곳곳에 페스티벌 공원을 만들어 공연 티켓도 팔고 맥주, 와인과 가벼운 음식을 판다. 인조잔디에 철퍼덕 누워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로 낮밤을 가리지 않고 들뜬 분위기다. 매표소 옆 칠판(때로는 전광판)에 ‘매진’ 작품 목록이 점점 길어지고, 입소문을 탄 작품 공연장 앞에는 말 그대로 장사진을 친다. 매진 끝에 밤 11시 특별 공연을 추가하는 것이 참가 극단들의 꿈이다.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 기간 중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태투(스코틀랜드식 군악대) 대회가 에든버러 성에서 열린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북 페스티벌도 함께 열린다. 올해는 1947년생 동갑내기로 미국 작가 폴 오스터를 초청해 토크쇼를 가졌다. 『빵굽는 타자기』를 썼던 청년이 70세 노작가가 되어 자신의 삶을 녹인 작품 『4321』을 소개했다. 한여름, 연극과 코메디, 뮤지컬 등 다양한 내용을 즐기고 싶으면 에든버러가 제격이다.

 

 

Tip. 에든버러 사람처럼 즐기기

‘라이다카드’ 만들면

버스·전차 무제한 이용

에든버러는 자그마한 도시다. 공항서 시내까지 전차로 20분 밖에 안걸린다. 그러나 에든버러는 한 달을 머물러도 다 볼 수 없는 문화도시다. 페스티벌 기간에 가도 좋지만, 봄도 좋다. 사흘 이상 있을 거라면 시내버스인 로디안(Lothian) 버스와 전차(Edinburgh Trams)를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라이다카드(Ridacard)를 만드는 것이 좋다. 36개 주간 시내 버스 노선과 12개 근교 익스프레스 버스, 12개 야간 버스, 6개 이스트코스트 버스, 공항을 오가는 전차를 무제한 탑승할 수 있다. 웨이벌리 역에서 나와 관광안내소 쪽으로 가면 로디안버스 카드 사무실이 있다. 우리나라 주민등록증 같이 생긴 라이다카드를 만들어주는데, 사진은 현장에서 촬영해준다. 성인 기준 1주일용이 18파운드, 4주용이 54파운드다. 카드제작비는 3파운드. 1회 탑승권은 1.5파운드. 하루 4번 타면 6파운드. 3일만 사용해도 1주일 패스 값이다. 매번 현금 준비할 필요 없어 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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