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인권조례 ‘존폐 위기’

조례폐지안 발의에 지방의회가 나선 것은 충남도가 처음

2월 2일 최종 결정

 

기독교단체 동성애반대, 충남인권조례 폐지 집회 ⓒ충남인권행동
기독교단체 동성애반대, 충남인권조례 폐지 집회 ⓒ충남인권행동

일부 종교단체에 도의회까지 가세

충청남도 도민 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이하 ‘충남인권조례’)의 존폐 논란으로 충남도(도지사 안희정)가 뜨겁다. 일부 기독교 단체는 인권조례에 대해 ‘에이즈의 주범, 가정파괴의 주범’으로 규정하고,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충남도의회(의장 윤석우)까지 가세하여 조례 폐지안을 발의했다. 도의회는 “충남인권선언문에 담긴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 등이 역차별을 낳을 수 있다. 도민 대표기관으로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조례를 그냥 놔둘 수 없다”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

2월 2일 본회의에서 폐지여부 결정

지난해 11월 일부 기독교 단체들은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옹호한다고 주장하며 약 7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 충남도에 인권조례폐지청구인 명부를 제출했다.

2018년 1월 15일에는 충남도의회 자유한국당 의원 23명을 포함한 25명이 인권조례 폐지안을 입법 예고한 상태이다.

충남도의회는 오늘(29일) 자유한국당 의원 6명과 더불어민주당 의원 2명으로 구성된 행정자치위원회에서 ‘충남인권조례폐지 조례안’의 본회의 상정 여부를 심의한다. 이날 상임위 통과가 결정되면 2월 2일 본회의를 통해 인권조례 폐지 여부가 결정된다. 본회의 의석 40석 중 27석이 자유한국당이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이성호)가 각 지방자치 단체에 인권조례 제정을 권고함에 따라 현재 충남도를 비롯해 전국17개 시․도 가운데 16곳이 인권조례를 제정 시행중이다. 종교단체에서 조례 폐지를 주장하는 지역은 있지만 지방의회까지 직접 나서서 조례폐지안을 발의한 것은 충남도의회가 처음이다.

인권조례 어디에도 ‘성적 지향’ 내용은 없다

충청남도 ‘충남인권조례’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조(목적) 이 조례는 충청남도 도민의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인권이 존중되는 지역사회의 실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정의) 이 조례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 “인권”이란 「대한민국헌법」 및 법률에서 보장하거나 대한민국이 가입ㆍ비준한 국제인권조약 및 국제관습법에서 인정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말한다. 2. “도민”이란 충청남도(이하 “도”라 한다)에 주소를 가진 사람과 거주를 목적으로 체류하는 사람 및 도 소재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근로하는 사람을 말한다. 3. “인권약자”란 어린이, 청소년, 노인, 장애인,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자 및 다문화가족 등 소외되기 쉬운 사람이나 인권침해 및 차별행위를 당한 집단의 구성원을 말한다.’ 충남인권조례의 내용을 살펴보면, 충남에서 헌법, 법률, 국제인권법에 따라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제도들이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논란의 요소인 ‘성적 지향’ 조항은 조례의 내용이 아니다. ‘성적 지향’관련 내용은 ‘충남도민 인권선언’ 안에 있다. 충남도민 인권선언문 제1조 1항 ‘충남도민은 성별, 나이, 외모, 장애, 인종, 종교, 병력, 사상, 신염, 출신 및 거지주역, 결혼 여부, 가족구성, 학력, 재산,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국적, 전과, 임신, 출산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가 그것이다. 그런데 왜 인권조례 폐지 주장이 나오는 것인가. 그것은 인권선언을 이행하는 것이 충남인권조례이기 때문에 조례 자체를 폐지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대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동성애를 조장할 위험이 있으며, ‘종교’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은 이슬람을 충남도가 보호․증진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충남인권행동 기자회견(2018.1.22) ⓒ충남인권행동
충남인권행동 기자회견(2018.1.22) ⓒ충남인권행동

2012년 새누리당 주도로 제정, 2018 자유한국당 주도로 폐지 시도

충남인권조례는 도민 인권이 존중되는 지역사회 실현을 위해 2012년에 제정되었다. 이 조례는 2012년 자유선진당의 송덕빈 의원과 새누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제정되었다. 이 두 당은 같은 해 총선을 기점으로 통합되었으니, 사실상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주도하여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조례는 2015년 개정 당시, 거의 만장일치 찬성으로 의결되었다. 조례는 도민의 인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인권증진에 관한 도지사의 책무와 인권증진을 위한 지원근거를 명시하고, 충청남도 도민 인권증진위원회의 설치․운영에 대한 사항을 규정하는 내용 등이 담겨있다. 당시 도 의원들은 도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했고, 당시 새누리당 소속의 김기영 도의회 의장은 “차별없는 사회를 위한 최소한의 기본 가치들을 배우고 지켜나가는 사회가 바로 우리가 지향하는 것”이라며 “도의회가 앞장서 인권 관련 조례들의 제정에 나서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2018년 현재, 자유한국당 도의원들은 인권조례를 폐지하려고 한다. 이들은 인권조례가 진정한 인권증진보다 도민들 간에 역차별과 부작용 우려에 따른 이견으로 갈등관계가 지속되고 있으며, 충남도민의 인권보호 및 증진에 관한 정책은 헌법과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처리되어야 할 사항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참고로 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자유한국당 윤리강령과 윤리규칙에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와 소외계층을 배려하고 보호한다(윤리강령)'고 명시되어 있으며, ‘당원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나이, 종교, 출신지, 국적, 인종, 피부색, 학력, 병력(病歷), 신체조건, 혼인․임신 또는 출산 여부,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정치적 견해, 실효된 전과, 성적(性的) 지향 등을 이유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어떠한 차별도 하지 아니한다’(윤리규칙 제20조 차별금지)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폐지 반대의견 표명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회는 2017년 4월 6일 충남도의 일부 시민단체가 낸 ‘충남인권조례’폐지 청구에 대하여, 같은 해 6월 8일 ‘충청남도의회 의장과 충청남도지사에게 성적지향․성별정체성을 이유로 하는 차별금지를 포함한다는 이유로 ’충남인권조례‘를 폐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충남도가 발의한 인권조례 폐지안에 대해서도 지난 25일에 인권위 상임위는 도의회 의장과 충남도지사에게 다음과 같이 반대의견을 표명했다. “충남 인권조례 폐지 추진은 지방자치단체의 인권보호 의무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자 여성·장애인·어린이·노인·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인권보장 체계를 후퇴시키는 것이다.”

폐지하려는 측과 지켜내려는 측

국가인권위원회의 폐지반대표명에도 불구하고 충남도는 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측과 이를 저지하여 인권조례를 지켜내려는 측이 팽팽하다.

천안바른인권위원회(대책위원장 한익상) 우리아이지키기학부모연대 등을 비롯한 일부 종교단체들은 동성애 조장 방지를 주장하며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 28일(일)에는 충청남도기독교총연합회가 주관하고 천안․아산․예산기독교연합회가 공동주관하는 ‘충남인권조례폐지를 위한 도민 시국 집회 및 기도회’가 천안삼거리공원에서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건강한 사회를 위한 국민연대 충남지부, 에이즈리서치코리아 충남본부, 아산시 학부모인권연대 등 36개 단체에서 경찰추산 5,000여 명이 참가했다. 충남기독교총연합회는 ‘충남도의원 40명 중 25명이 충남인권 조례 폐지안을 공동 발의한 것을 적극 환영하고, 찬성하지 않은 도의원들도 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아 폐지 찬성에 투표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하여 인권조례 폐지를 반대하는 측도 단호하다. 충남지역 40여 곳의 시민․인권 단체로 구성된 충남인권조례지키기공동행동(이하 ‘충남인권행동’, 공동대표 김혜영, 이연경)은 1월 22일 충남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충남인권조례안 폐지를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충남인권행동은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에게 형제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는 세계인권선언의 내용가치를 설명하며, ‘이러한 가치를 담아 제정된 인권조례가 폐지된다면, 이는 수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로 일궈낸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역사를 거스르는 것이며, 국민의 눈과 입을 가리던 독재정권의 우민화 정책을 되살리는 것을 의미한다’며 인권조례폐지반대를 위해 끝까지 맞설 것을 다짐했다. 특히 김혜영 공동대표는 ‘충남인권조례 폐지반대를 위해 전국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전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도 24일 오전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충남도 인권조례 폐지안 발의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충남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측과 지켜내려는 측 모두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오늘 행정자치위원회에서 본회의 상정이 통과된다면, 2월 2일 본회의에서의 결정만이 남는다. 인권조례에 관한 충남에서의 결정은 단지 충남이라는 지자체의 중대 사항만이 아니다. 비록 지방의회 차원은 아니지만 인권조례폐지 의견이 나오고 있는 다른 지차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일 수 있다. 이는 곧 우리의 인권기준선을 다시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에 더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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