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재판부, 박근혜·최순실 요구 거절 못했다 판단

“법리에만 몰두해 일반적인 상식 외면” 비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 판결을 두고 법원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3부는 지난 5일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던 원심을 깨고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해 이 부회장은 이날 석방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을 강요에 의한 피해자로 판단했다. 두 사람 사이에  ‘경영권 승계 현안’에 관한 ‘부정한 청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객관적· 구체적으로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1심과 정반대로 이 부회장이 단순히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결과라고 본 것이다.

1심 재판부가 승마지원(72억9427만원)·영재센터(16억2800만원)·재산국외도피(37억3484만원) 등에 대해 모두 유죄로 본 반면 항소심에서는 승마와 마필 차량 구매 대금 중 36억3483원만 뇌물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무죄로 봤다. 유죄로 인정된 뇌물 공여 범위를 마필 대여와 용역대금으로만 철저히 한정했다. 1심에서 무죄로 인정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부분도 그대로 유지됐다.

판결 이후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지나치게 법리에만 몰두해 일반적인 상식을 외면했다는 판결이라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 판단을 내린 법원의 결정에 매우 안타깝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뇌물 공여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킨 이번 판결에 국민들이 동의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한마디로 삼성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아무 대가 없이 수십억 상당을 지불한 것이라는 판결 내용”이라면서 “법 앞에는 만인은 평등해야 한다는 일반 국민의 법 감정으로서는 도저히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의당은 “재벌을 위해서라면 진흙투성이가 되는 것조차도 마다하지 않는 법원에게 국민들은 절망과 분노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평화당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민변·참여연대가 마련한 항소심 판결 규탄 긴급간담회에서 노종화 변호사는 “대한민국 전체에서 서울고법 형사13부만이 삼성그룹 승계작업의 존재를 몰랐다는 것이냐”며 “박영수 특검이 제시한 핵심 증거인 ‘포괄적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을 부정하기 위해 항소심 법원이 열거한 각종 논거들은 오로지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이번 판결 이후 많은 국민이 분노와 허탈을 넘어 충격과 고통을 받았다”며 “촛불혁명 이후에도 사법정의·경제정의가 실현되기는커녕 집요하고 조직적으로 적폐 청산을 방해하고 기득권을 수호하는 무리가 광범위하게 남아 있다는 것에 시민들이 공포감을 느낀 것 같다”고 강조했다.

반면 재판부의 판결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있다. 자유한국당은 “법원의 현명한 판결에 경의를 표한다”면서 “‘묵시적 청탁’이라는 억측과 예단으로 무리하게 혐의들을 끼워 맞추듯 만든 여론몰이 수사와 정치적 수사는 이 땅에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항소심 판결은 곧 있을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과 오는 13일 예정된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행위의 대부분이 무죄로 판단됐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죄도 책임이 경감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특검은 판결에 강력 반발하면서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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