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세계여성의 날 올해의 여성운동상 수상자

르노삼성자동차 내 성희롱 피해자 박모씨

2013년 처음 피해 공론화하자

조력자도 불이익 조치한 회사

포기 않고 4년 6개월 소송 끝에

“성희롱 피해자·조력자 징계는 불법”

최초 대법원 판결 이끌어 내

박씨 “정부가 나서 제도 개선해야”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피해자 박모씨가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8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피해자 박모씨가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8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한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 르노삼성자동차에서 일하던 박모씨는 상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하고 2013년 사내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피해 사실을 공론화했지만 박씨에게 돌아온 것은 ‘보호’가 아닌 ‘징계’였다. 회사로부터 전문 업무에서 배제되고, 견책의 징계처분을 받았다. 직무정지·대기발령의 불리한 조치도 이어졌다. 퇴사 종용과 소위 ‘꽃뱀’이라는 악의적 소문이 뒤따랐고 조직 내에서 왕따까지 당해야 했다. 박씨를 도왔던 조력자(동료) 역시 정직 처분이라는 부당한 징계를 받았다. 박씨는 사비를 털어 회사에 다니면서 불의에 맞서기로 마음 먹었다. 성희롱 가해자, 회사 내에서 악의적 소문을 퍼트린 인사팀 직원, 퇴사를 종용한 임원, 수차례의 징계를 내린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박씨는 2017년 12월 22일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와 조력자에 대한 사용자의 불리한 조치의 판단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번 판결은 기업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게 행한 조치가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2항이 금지하는 불리한 조치로서 위법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대법원으로부터 최초로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2항은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해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회사 측이 성희롱 피해자를 도운 조력자에게 보복적 징계처분을 한 것이 불법 행위라고 인정한 것과 직장 내 성희롱을 조사했던 인사팀 직원의 의무 위반에 대해 사용자 책임도 이끌어 냈다.

이 판례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피해자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보복조치, 불이익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사측에 책임을 묻고 직장 내 성희롱을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피해 사실 신고 이후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5년여에 걸친 지난한 법정 싸움 중에도 박씨는 회사를 꿋꿋이 다니며 재판에 임했다. 박씨가 끈기 있고 용기 있게 대응한 것이 성평등한 노동환경과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와 조력자에게 가해지는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제도 구축의 출발점을 마련한 것이다.

박씨는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 주최 ‘2018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했다.

여성연합은 선정 배경에 대해 “우리 사회를 근본에서부터 뒤흔들고 있는 #미투(MeToo) 운동의 대열에 앞서 5년 전 직장 내 성희롱을 고발하고 싸워온 박씨의 용기있는 말하기가 있었다”며 “박씨의 말하기는 #MeToo 운동의 마중물이다. 박씨는 말하기에서 나아가 조직 내 여성을 압박하고 불리하게 대우함으로써 침묵시키고 배제하려는 회사를 상대로 투쟁해 회사의 책임을 묻고 직장 내 성희롱에서 피해자를 불리하게 대우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기준을 이끌어냈다”고 설명했다. 또 “박씨의 지치지 않는 싸움은 여성단체의 법 개정 투쟁의 중요한 계기가 됐고, 마침내 2017년 11월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사업주 의무를 강화하고 피해자 등의 보호조치를 의무화하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의 성과를 낳았다”고 했다.

박씨는 상을 받은 뒤 “제게 2차 가해를 했던 분들이 아직 회사에 건재하시기에 명예훼손으로 고소받고 징계받고 해고될까봐 말하기가 두렵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는 “두렵고 고통스러워서 그만두고 싶었는데, 저와 유사한 상황인 분들이 제 연락처를 수소문해 연락해왔다”며 “그분들이 이해됐다. 회사 내 성폭력을 신고한 뒤 만 5년동안 2차 피해를 당하면서도 도움을 요청할 국가기관이 단 한 곳도 없었다. 검찰, 고용노동부에 신고했지만 어찌된 이유인지 방관만 했고 2차 피해는 멈춰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쉽지 않을 것 같았지만 이 판례만 있으면 우리 같은 사람들도 국가기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이 악물고 버텼다”면서 “모두가 저를 피할 때 친구가 돼주고, 변호인과 대변인이 돼 주신 공대위 (르노삼성자동차 직장 내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 감사 드린다”고 소감을 말했다.

그는 전 사회로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에 대해서는 “피해자들이 힘을 내길 바란다”면서도 “무엇보다 구조를 바꿔야 더 많은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이 권력을 가진 이들에 맞서 싸우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든다”며 “정부가 나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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