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스키선수 양재림(왼쪽)과 가이드 러너 고운소리 ⓒ대한장애인체육회
시각장애인 스키선수 양재림(왼쪽)과 가이드 러너 고운소리 ⓒ대한장애인체육회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성황리에 막을 내린 가운데 전 세계 장애인 선수들의 축제인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이하 평창패럴림픽)이 오는 3월 9일부터 18일까지 10일간 열린다. ‘하나 된 열정’이라는 슬로건으로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49개국 570명의 선수들이 참가한다. 이들은 알파인스키와 스노보드, 바이애슬론, 크로스컨트리스키, 아이스하키, 휠체어 컬링 등 6개 종목에서 경쟁한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노린다. 한국은 2002년 솔트레이크 대회 때 알파인스키의 한상민이 은메달을, 2010년 밴쿠버대회 때 휠체어컬링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밴쿠버에서 거둔 종합 10위가 역대 최고 성적이다. 한국은 이번 대회 6개 전 종목에 참가해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 등 종합 10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메달 기대 종목은 장애인 크로스컨트리스키와 아이스하키, 휠체어 컬링 등이 거론된다.

한국에서는 총 36명의 선수가 대회에 참가한다. 이 중 여성은 4명에 불과하다. 알파인스키(시각)에 출전하는 양재림(30‧국민체육진흥공단)과 노르딕스키 서보라미(33‧하이원), 이도연(47‧대한장애인노르딕스키연맹), 휠체어컬링 대표팀의 방민자(57‧서울시청) 등이다. 수년간 각자의 자리에서 이번 대회 출전을 위해 묵묵히 노력해왔을 평창패럴림픽 여성 선수들을 주목해보고자 한다.

 

시각장애인 스키선수 양재림(왼쪽)과 가이드 러너 고운소리 ⓒ대한장애인체육회
시각장애인 스키선수 양재림(왼쪽)과 가이드 러너 고운소리 ⓒ대한장애인체육회

오감으로 달리는 시각장애인 스키선수, 양재림

앞이 보이지 않는데 스키를 탈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말끔히 씻어주는 선수가 있다. 양재림은 국내 유일의 시각장애인 스키선수다. 양재림은 미숙아 망막 병증을 앓고 태어나 왼쪽은 전맹, 오른쪽은 10분의 1만 보여 코앞에 있는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 다섯 살이 되던 해, 양쪽 눈의 균형을 위해 스키를 배우기 시작했다. 미술에도 소질을 보여 이화여대 동양학과를 졸업했지만 2010년 스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양재림의 승승장구에는 숨은 조력자의 역할이 컸다. 양재림과 함께 스키를 타며 호흡을 맞춘 ‘가이드 러너’ 고운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운소리와는 2015년 8월부터 호흡을 맞춰왔다. 시각장애 스키는 선수와 가이드 러너가 무선 헤드셋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내려온다. 먼저 달리는 가이드 러너가 순간마다 코스 상황을 알리는 식이다. 선수는 가이드 러너 신호에 따라 활강 속도와 움직임을 결정해 두 사람의 호흡이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2014 소치동계패럴림픽에서 4위로 안타깝게 메달을 놓친 양재림에게 이번 평창패럴림픽은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양재림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평창패럴림픽 기대주로도 손꼽히고 있다. 양재림은 2017 미국캐스퍼월드컵 BT middle 1위/BT 스프린트 1위, 2017 제14회 전국장애인동계체전 SL 1위/GS 1위를 기록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활강, 슈퍼대회전, 대회전, 회전, 슈퍼복합 등 5개 종목 출전권을 따내 메달 사냥에 나선다. 양재림은 “열심히 준비한 만큼 떨지 않고 즐겁게, 멋진 경기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양재림의 가장 첫 번째 경기인 알파인스키 남녀 슈퍼 대회전 부문을 11일 오전 9시 30분부터 볼 수 있다.

 

한국 휠체어컬링팀의 유일한 여성 선수인 방민자는 팀에서 첫 투구를 하는 리드 역할을 맡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한국 휠체어컬링팀의 유일한 여성 선수인 방민자는 팀에서 첫 투구를 하는 리드 역할을 맡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열풍 이어간다…휠체어컬링팀 유일한 여성 방민자

평창동계올림픽 동안 대한민국을 들썩인 컬링은 평창패럴림픽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종목이다. 백종철 감독이 이끄는 휠체어컬링 대표팀은 스킵 서순석, 리드 방민자, 세컨드 이동하, 차재관, 서드 정승원으로 이뤄져 있으며 방민자가 유일한 여성이다. 이들은 이번 대회 메달 유력 후보로 꼽힌다.

휠체어컬링은 일반 컬링과 약간 다르다. 혼성으로 진행되고 브룸으로 얼음판을 닦는 스위핑이 없다. 빙질을 고려한 스톤 투구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유다. 따라서 선수들은 더 신중하게 투구를 한다. 첫 스톤을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 경기의 흐름이 좌우된다. 방민자는 팀에서 첫 투구를 하는 ‘리드’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빠른 속도와 섬세한 기술력이 특징이다. 방민자는 컬링 입문 4년 만인 2009년 한국 국가대표 선수가 됐다. 이후 미국 유티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2위에 올랐고 이후에도 여러 국제대회에서 기량을 뽐냈다. 이번 대회가 첫 번째 패럴림픽 출전이다.

25년 전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후, 10년 동안 세상과 단절했던 방민자는 망가져 가는 언니를 지켜볼 수 없었던 여동생의 권유로 장애인복지관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동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찾았다. 방민자는 “힘든 시간, 곁에서 언제나 힘이 되어 준 가족을 위해 꼭 메달을 따고 싶다”며 “평생을 노심초사하며 딸 때문에 눈물짓던 어머니에게 빛나는 메달을 걸어주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밝혔다.

 

국내 1호 크로스컨트리 좌식 선수 서보라미 ⓒ대한장애인체육회
국내 1호 크로스컨트리 좌식 선수 서보라미 ⓒ대한장애인체육회

국내 1호 크로스컨트리 선수, 서보라미

거친 설원 위 마라톤과 사격이 동시에 진행되는 노르딕스키는 끝까지 집중력을 놓지 않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서보라미는 스태프 모두가 인정하는 악바리 선수다. 학창 시절 무용을 했던 서보라미는 고3이 되던 2004년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사고를 겪은 뒤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절망감에 1년 넘게 방황했지만 눈물짓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후 서보라미는 휠체어럭비, 휠체어 육상 등 생활체육 스포츠의 재미에 빠졌다. 대학 입학 후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어울림 스키캠프를 통해 처음 스키에 발을 들였다. 크로스컨트리 좌식 스키 선수가 없던 2007년 서보라미는 국내 1호 장애인 크로스컨트리 선수로 제2의 인생을 맞이한다. 장애인 스키에 입문한 지 2년 만에 2010년 밴쿠버 대회에 출전했다. 이외에도 2011 IPC 뉴질랜드 환태평양컵 우승, 2017 미국 월드컵 크로스컨트리 스프린트 부문 2위, 쇼트 부문 2위의 성적을 거뒀다.

이번 대회는 동계패럴림픽 세 번째 도전이다. 서보라미는 “매 경기 이번이 마지막인 것처럼 각오를 다진다”며 “묵묵히 곁을 지켜준 가족에게 지난 세월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싶다. 또 국내 1호 선수로서 후배들에게 잘 닦인 길을 선사해주고 싶은 바람이 크다”고 말했다. 

 

이도연 ⓒ대한장애인체육회
이도연 ⓒ대한장애인체육회

한국 최초 동‧하계 메달 도전, 최고령 스키선수 이도연

이도연은 국내외 통틀어 스키 선수로는 가장 나이가 많다. 이도연은 재활운동으로 육상을 시작하며 그해 2012 장애인전국체전에서 창, 원반, 포환던지기 3관왕을 차지했다. 2013년에는 핸드사이클에 입문해 2014년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사이클 금메달 2관왕 등 그 해에만 7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제26회 대한민국 여성체육대상 장애인 체육상을 받기도 했다. 2014년 이탈리아 장애인 도로월드컵 아시아 선수 최초 우승, 2016 리우패럴림픽 은메달 등 다양한 기록이 있는 선수다.

핸드 사이클로 하계패럴림픽에서 이름을 알린 이도연이 동계 종목 ‘신인 국가대표’가 됐다. 지도자의 제안으로 노르딕스키를 시작한 지 이제 일 년이 됐다. 노르딕 좌식스키는 핸드사이클처럼 어깨와 팔, 손의 힘이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이미 훈련이 돼 있는 이도연에게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극복해야 할 부분도 많았다. 설원 위 추위를 참는 것부터가 시련이었다. 하지만 타고난 운동 감각과 열정으로 동계올림픽 첫 메달을 목표로 개인 기록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도연은 하계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캐나다 전지훈련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도연은 이번 대회 크로스컨트리 좌식 장거리 12km, 스프린트 바이애슬론 좌식 스프린트 6km, 중거리 10km, 개인 12.5km 등에 출전할 예정이다. 이도연은 “운동하느라 제대로 신경 써주지 못한 세 딸에게 평창패럴림픽 첫 메달로 자랑스러운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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