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 ‘취미’로 시작했던 운동 통해 성장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평창올림픽의 한국 국가대표 여성 컬링팀 ⓒ뉴시스·여성신문
평창올림픽의 한국 국가대표 여성 컬링팀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한달 동안 대중매체에서 접한 가장 멋진 여성의 이미지는, 두말할 것 없이 평창 동계올림픽의 한국 국가대표 여성 컬링팀이었다. 일명 ‘팀 킴’, 혹은 ‘컬벤져스’. 그들에 대한 전국적인 열광의 이유에 대해선 이미 많은 매체들이 분석했기 때문에, 나는 다소 민망하지만 개인적인 기억을 통해서 왜 이들에게 반했는가를 고백하고 싶다.

얼마 전 어머니가 나의 아기 시절 얘기를 꺼내시며, 또래들보다 훨씬 빠르게 몸을 뒤집고 기어 다니고 걷고 뛰었던 나 때문에 깜짝 놀랐던 적이 많았다고 회상하셨다. 서랍이 조금만 열려있으면 그걸 발판 삼아 서랍장 꼭대기로 순식간에 기어 올라가 자랑스러운 듯 우뚝 서 있는 나를 볼 때마다, ‘얘한테 운동을 시켜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하셨다. 초등학생 시절의 나에 대해서는 나 역시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경쟁심이 강해서 어지간한 분야에선 다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안달했었고, 체육 시간에도 달리기와 던지기, 제자리멀리뛰기, 줄넘기, 구르기 등을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해내어 ‘수’를 받아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다가 11~12살 무렵부터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50m 달리기를 할 때 예전처럼 이를 악물고 달리는데, 같은 반 남학생들이 “쟤 가슴 흔들리는 거 봐라”라고 웃어대는 게 들렸다. 또래보다 발육이 빨랐던 편이어서 가슴이 확 커진 게 부끄러웠다. 그걸 의식한 순간부터 팔을 어색하게 가슴 앞쪽으로 위치시키며 최대한 가리려고 애를 썼다. 당연히 전력 질주하는 자세가 나올 수 없었다. 

그다음으로는 피구가 있다. 사실 나는 피구 자체를 싫어하지 않았다. 날아오는 공을 멋지게 잡아채서 빠르게 다른 사람에게 던질 때의 쾌감을 좋아했다. 하지만 여자애들에게는 좀처럼 공을 던질 기회를 주지 않았다. 여자애들은 남자애들만큼 세게 공을 던져 상대방이 공을 놓치고 결국 ‘죽어서’ 나가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자애들은 그저 남자애들 뒤에 숨어 보호받거나(일종의 ‘흑기사’ 역할), 아니면 인정사정 보지 않고 세게 던진 공에 맞아 빨리 ‘죽음’으로써, 남자애들끼리의 완력 자랑이 된 공싸움에서 빨리 비겨줘야 했다. 어느 쪽도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한 다음에는 체육 교사들의 성추행이 시작됐다. 90년대 초반엔 성추행의 개념 자체가 아예 없었기 때문에, 그냥 ‘선생님이 나를 귀여워하나보다’하고 참고 넘겼던 어떤 언행들이 존재했다. 어느 날은 아예 “다른 애들은 알아서 줄넘기하라고 하고, 너는 여기 내 옆에 앉아라”라며 나를 한 시간 내내 벤치 옆 자기 자리에 앉히곤 했다(그리고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들어줘야 했다). ‘수’라는 성적에 필요한 최소한의 노력을 빼고는, ‘움직이는 것’보다 ‘내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너를 특별 대접해주는 것’이라는 암시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당시 유행하던 애니메이션 ‘피구왕 통키’ 때문에 한동안 반 친구들끼리 점심시간마다 뛰어나가 피구를 했다. 모조리 여자들이었고, 서로 소리를 꽥꽥 질러가며 공을 열심히 던지고 받고 뛰었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피구가 이렇게 재미있었던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몸을, 근육을 사용하는 게 이렇게 즐거웠던가? 하지만 90년대의 고등학생에게는 체육 시간이 더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 체육 시간은 곧 ‘자습시간’이 되었고, 운동장에 나가는 대신 교실에서 다음 수업 예습을 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복학한 선배들과 함께 족구를 해보거나 당구장에 따라가서 큐대를 잡는 것부터 배웠지만, 남자들끼리 노는데 여자가 끼어있다는 것에서부터 마뜩잖아하거나 귀찮아하는 시선을 매번 느껴야 했다. 아니면 만화 ‘슬램덩크’의 등장인물 이름을 별명으로 붙인 과 남자 동기들의 농구시합을 꺅꺅거리며 응원하는 역할만 하거나. 결국 나는 “운동에 취미 없고 내가 하는 유일한 운동은 숨쉬기뿐이다”라고 스스로 선언하며 어떤 종류의 운동도 시도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20대 후반에 이르러서 비로소 주변에서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것 중, 수강료를 내가 지불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을 조금씩 시도해볼 수 있었다. 다만 선택의 폭은 아주 좁았다. 

처음으로 돌아와서, 올림픽 내내 팀 킴의 컬링 경기를 보면서 벅차고 감동 받은 한편,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키며 조금 억울해졌다. 팀 킴은 방과 후 수업으로 지역 내 컬링장에서 컬링을 배우면서 자신들의 장점을 깨우쳤고, 각자에게 잘 맞는 팀 내 포지션을 찾아 단단한 신뢰를 바탕으로 팀을 결성하여 함께 성장해왔다. 설령 평생의 직업으로 체육인을 택하지 않더라도, 이 같은 과정은 살아가면서 중요한 덕목이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꼭 필요한 자세를 깨우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이런 신뢰와 협동(을 통해 멋진 승리를 거둘 수 있는)을 통해 팀을 유지해나가는 과정을, 학창 시절 내내 경험해본 적이 없다. 공부만 잘하면 돼, 여자애가 얼굴 타게 왜 바깥에서 뛰어다니냐, 여자애답지 않다… 라는 이야기만 줄곧 들었다. 심지어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특정 운동 종목의 명문으로 꼽히는 학교였는데도 말이다.

10대 시절 ‘취미’로 시작했던 운동을 통해 성장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나에게는 만화 ‘슬램덩크’를 ‘읽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모르는 사이에 팀 킴이 바로 그렇게 성장했다. 남자들만 등장하는 가상의 스포츠 성장물이 아닌, 현실 속의 멋진 여자들이 올림픽 무대에서 당당한 승리를 거두며 수많은 여자들을 감동시켰다. 2주 동안 올림픽을 보며, 팀 킴을 보며 행복했다. 그리고 나도 컬링을 배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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