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을 할 권리’와

‘돌봄을 받을 권리

헌법에 명시해야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
존재는 그 자체로 인정되지 않는다.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관점이다. 현행 헌법 제32조 4항은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라고 명시하고 있다. 여성의 약자성은 사회적 조건과 맥락 속에서 위치 지워진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선 성별 집단 간 균형이 뒤틀린 이유는 축이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여성이라는 집단이 존재 자체로 약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나 존재를 특별한 보호의 대상으로 인지하게 되면 노동시장에서는 불완전한 노동자로 취급받는다. 동등한 출발선과 동등한 성장 경로를 박탈당하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여성노동은 ‘특별한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일상적 차별’의 대상이다. 여성들은 채용부터 시작된 차별에서 겨우 진입한 회사에서는 주요 업무에서 배제당한 채 경험과 기술을 쌓을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유리벽과 유리천정으로 구성된 노동 환경에서 여성이 성장하고 승진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여성노동을 특별한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평등’한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고용, 노동, 임금, 복지, 재정 등 모든 상황에서 성평등 실현을 명시해야 한다. 또한 남녀고용평등법에서만 규율하고 있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적극적 조치 등의 조항을 헌법에서부터 명시해 그 중요성을 부각하고 국가적 정책으로 가져와야 한다.

남녀고용평등법은 헌법에서 규정한 여성 노동에 대한 보호 논리를 근거로 여성이 남성과 다르게 가진 임신과 출산의 능력, 양육자로서의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법을 만들어 왔다. 국가가 정책으로 일·가정 양립을 여성에게만 요구해 왔던 편협했던 역사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호 논리는 이제는 모성권과 부성권이라는 권리의 측면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제는 이를 뛰어넘어 헌법에서부터 모든 사람에게 ‘일·생활 균형의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 이러한 ‘성평등 노동’의 보장은 헌법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인간은 평생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한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돌봄은 자연 상태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태어나자마자 한 시간 내에 걷고, 뛸 수 있는 동물의 새끼에 비해 인간의 어린아이는 24시간 돌봄을 요구한다. 식사와 청소, 빨래 등 모든 일상이 돌봄의 연속이다. 나이 들어 스스로 먹이를 찾지 못하는 동물은 도태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의 돌봄은 문명화 이후에 자연 상태에서는 생존할 수 없는 약한 존재들을 살 수 있게 하는 행위들이며, 많은 물건의 사용과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것들이다. 또한 우리가 구축한 기술과 문명의 발전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활동의 토대이다. 돌봄 없는 일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듯 중요한 돌봄이지만 항상 핵심적인 공적 논쟁의 장에 등장한 일이 없다. 대부분 이러한 돌봄은 사적 영역에서 이뤄져 왔으며 여성들이 담당해 왔기 때문이다. 공적 영역으로 진출하지 못한 돌봄은 그 가치가 저평가됐고, 숨겨진 그림자 노동이 돼 왔다. 지금껏 우리 사회는 여성이 단지 생물학적으로 출산과 수유 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에게 돌봄을 떠넘겨 왔다. 여성들에게 지워진 돌봄 책임은 그 무게만큼 인정받지 못했고 기록되지 못했다.

돌봄을 책임으로만 인식하지만 돌봄은 양면성을 가진다. 책임의 다른 면은 돌봄을 할 권리이다. 내 아이를 돌볼 권리를 박탈당한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가족으로부터 소외와 배제를 당한다. 책임은 권리의 이면이다. 책임을 수행한 만큼 유대와 가족 공동체 소속감은 증가한다. 그러나 어린 딸이 아버지에게 “아빠, 또 놀러 와요”라고 말하는 광고가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돌봄을 할 권리는 결국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만 이는 좀 더 확장된 논의를 불러온다. 헌법에서 돌봄의 권리와 평등한 책임을 말하는 것은 지금껏 사적 영역에서 배제되어 있던 돌봄을 공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는 큰 의미가 있다. 이는 다시 시장화된 돌봄 노동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돌봄을 할 권리’와 ‘돌봄을 받을 권리’를 헌법에 명시하는 것은 이렇듯 다양한 논의의 확장을 가져오며 우리 사회 전반의 변화를 이끌어올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 진전에 크게 기여할 것임이 명백하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