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은 우리가 지금 왜

도덕이라는 문제에 관심 갖고

논쟁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정치권에도 ‘미투’(Metoo) 파문이 몰아치고 있다. 지난 5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정무 비서가 방송에서 지난달까지 8개월간 도지사에게 네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는 폭로가 기폭제가 됐다. 안희정 성폭행 의혹 사태는 그야말로 충격과 분노 그 자체다. 김모 비서의 폭로에 따르면, 작년 대선이 끝난 6월부터 성폭력이 시작됐다고 했다. 지난 대선에서 안 전 지사는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와 통합의 메시지를 앞세워 국민에게서 높은 호감과 지지를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57.0%)에 이어 2위(21.5%)를 차지했고,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충청 지역에서는 36.7%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대선 이후 여권의 유력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던 시점에 성폭력을 가했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큰 충격이다.

 

또 다른 충격은 미투 폭로가 이어지던 지난 2월 25일 안 지사가 김씨를 불러 ‘미투를 보며 너에게 상처가 됐다는 걸 알게 됐다’ ‘미안하다’고 하면서 그날도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안 지사의 성관계 요구를 왜 거절하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저와 지사님은 동등한 관계가 아니고 합의를 하는 사이가 아니다. 저는 지사님이 얘기하시는 것에 반문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했다. 안 전 지사는 평소 인권을 강조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비서의 인권을 이렇게 무참히 짓밟을 수 있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그런 의미에서 성폭력은 사회 구조만이 아니라 개인의 도덕에 관한 문제로 귀결된다. 김씨가 추가 피해자가 있다고 말 한 만큼 형법과 성폭력 특별법 등에 따라 철저하게 조사하고 엄중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다.

여하튼 안 전 지사가 인권과 정의의 가면을 쓰고 위선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것에 강한 분노를 느낀다. 안 전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그렇다면 안 전지사가 갖은 정치 역경을 극복하며 대권 주자로까지 성장했지만 하루아침에 몰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도덕을 무시한 채 너무 쉽게 권력에 도취했기 때문이다. 안 전 지사는 한국갤럽이 작년 하반기에 실시한 17개 시·도 광역단체장 업무 평가에서 최상위를 차지했다. ‘잘한다’는 긍정 평가가 77%였다. 전체 평균 53%보다 20% 포인트 이상 높았다. ‘잘 못한다’는 부정 평가는 전체 평균은 28%였지만 안 전 지사 10%에 불과했다.

안 전 지사는 작년 대선 투표 당일 광화문에서 열린 문재인 후보 당선 축하 장소에 나타나 앞으로 진보 세력이 10년, 20년 집권하자고 했다. 취임 이후 문 대통령의 지지도는 60%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보수 야당은 분열되어 지리멸렬하다. 자신의 높은 지지에 대한 교만과 차기 대선에 대한 장밋빛 착각 속에서 안 전 지사는 벌써 차기 대통령이 된 것처럼 무소불위의 힘을 추악하게 발휘한 것이다.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범죄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소 안 전 지사에게 “자네는 정치를 하지 말고 농사를 짓는 게 어떤가”라는 제안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이제 서야 왜 노 전 대통령이 이런 제안을 했는지 이해가 된다.

안희정 쇼크를 접하면서 고 이청준 작가가 쓴 『가면의 꿈』이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촉망받는 젊은 법관인 주인공 명식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지만 밤만 되면 가면을 쓰고 변장을 한 채 돌아다니는 기행을 일삼았다. 이런 기만적이고 허구적인 삶을 살았던 주인공은 결국 가면을 쓴 채 투신하고 만다. 어떻게 보면 가면의 꿈이 아니라 가면의 끝이 얼마나 비극적인 것인가를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우리는 평소 도덕의 가치를 너무도 쉽게 무시한다. 그런데,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도덕성이 살아야 정의도 살 수 있고, 무너진 원칙도 다시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투 운동은 우리가 지금 왜 도덕이라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분명,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 변화의 큰 변곡점이 될 것이다. 단언컨대 서모 검사, 김모 비서가 보여준 용기 있는 폭로는 되돌릴 수 없는 완전한 성평등 세상을 만드는 희망의 나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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